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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히는 '대상'을 넘어 카메라를 압도하는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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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히는 '대상'을 넘어 카메라를 압도하는 '주체'로

[뷰포인트] 위안부 송신도 할머니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리뷰

비극적인 역사의 진실이 마침내 폭로되는 순간은 우리에게 놀람과 충격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죄책감을 선사한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책과,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 그럼에도 이런 죄책감은 당치도 않을 '피로감'을 선사하는 게 사실이다. "...또야?" 또긴, 고작 몇 편이나 나왔다고, 뻔한 삼각관계 연애물은 평생에 걸쳐 몇백 편이고 보면서.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할 뻔했다는 비겁함, 피해 당사자의 상처와 고통에는 근처도 가지 못하는데도 그 역사를 알았을 때의 고통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무력감과 좌절감 탓일 것이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일본에 살고있는 종군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는 소리에, 많은 이들에게 제일 먼저 어떤 생각과 느낌이 들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스스로 죄책감을 얼마나 가질지도. 그런데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참 신기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지레 가졌던 피로감과 부담감과 죄책감이 영화를 보면서 모두 사라진다. 거기다 놀랍게도, 관객이 영화의 주인공인 할머니로부터 오히려 위로와 치유를 받고 극장 문을 나서게 된다. 대체 어떻게?

▲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거나 섣불리 상상하는, '역사적 비극의 희생자'의 전형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다. 거칠고 까칠하기 짝이 없는 성격의 송신도 할머니는 거침없는 욕쟁이 할머니다. 오죽하면 일본에서 그녀의 재판을 도왔던 지원모임의 자원활동가들이 송할머니와 처음 만났던 순간에 대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았다"거나 "과연 내가 이 할머니와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두려웠다"고 회상할까. 보상 따윈 필요없고 일본정부의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재판을 시작하면서, 할머니는 지원모임 활동가들과 함께 일본 전역을 돌며 증언 집회를 가진다. 지방법원과 중앙법원의 기각을 거쳐 최고재판소에 상고하기까지, 무려 10년에 걸친 시간 동안 이들은 함께 울고 웃었다. 이 와중에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그녀의 상처와 투쟁의 고단함과 패배의 무력감이 아니다. 함께 울고 웃으며 보듬고 다독이는 연대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는 할머니의 삶에 대한 증언 이외에도, 할머니와 증언을 듣는 이들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비롯해 송할머니가 커다란 함박웃음을 짓거나 춤을 추는 장면이 많다. 더욱이 할머니는 그들에게 그저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울지 않는다. "자기 일처럼 100% 헌신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할머니의 이런 태도 때문에, 연대하는 이들을 그저 '돕는 이들'이 아니라 '동지'가 된다.

과거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시리즈가 거둔 성취와 한계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시대적 상황이나 미디어의 본질적 성격 자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침묵을 강요당한 진실에 목소리를 돌려주어 폭로하고 기록을 만들어내는 성취를 이루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유독 여성의 성에 있어서만큼은 가해자가 아니라 도리어 피해자를 탓하는 게 일반적이었던 만큼, 할머니들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어 증언을 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큰일이었다. 이를 기록하는 것 역시 그랬다. 하지만 필름에 할머니들의 증언이 기록으로 남아 관객에게 전시되는 순간, 할머니들은 또다시 동정과 연민과 죄책감이 투영되는 '대상으로 타자화되는' 딜레마에 갇힌다. 미디어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한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증언' 이후의 목소리가 갇힌 한계를 뚫고 우리가 어떻게 '그들'이 아닌 '우리'의 목소리로 껴안고 나갈 것인가에 대해 하나의 답을 제시하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애초 10년 투쟁의 기록영상물 더미를 국장 상영용의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하면서, 안해룡 감독은 최대한 뒤로 빠지는 대신 할머니와 자원활동가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은 다큐멘터리 감독의 의도에 짜맞춰지는 '대상'이 아니라 카메라를 압도하는 주체로 자리를 잡는다. 분노와 슬픔과 회한의 순간도 있지만, 과거의 상처에 종속당하기보다는 '오늘'의 삶을 치열하게 사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10년 싸움과 연대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 집중하면서, 할머니와 자원활동가들 모두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에는 졌지만 "내 마음은 결코 지지 않았다"는 할머니의 선언과 웃음은, 패배의 순간을 오히려 승리의 역사로 바꾸어버리는 놀라운 전복이 된다. 나아가 매 증언집회마다 송할머니가 반복해서 당부하는 "절대로 전쟁은 다시는 안 된다"는 메시지는 더욱 특별한 울림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말하자면 할머니는 '절대로 다시는 전쟁을 해서는 안 되는' 살아있는 이유이자 증거인 셈이다. 그런 할머니가 개인의 아픔을 넘어서서, 조선인과 일본인 할 것 없이 후대의 모든 이들에게 진심어린 염려와 걱정을 전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터뜨리고, 오히려 관객이 할머니에게 위로를 받고 나올 수 있는 진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픔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껴안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이 영화는 그걸 조금은 수월하게 해준다. 다큐멘터리의 진짜 힘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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