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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삼성 판결'이 두려운가

대법관들 결정 무시, '삼성관련 사건' 전원합의체에서 소부로

대법관들이 내린 결론을 대법원 스스로 깨버린 일이 생겼다. 25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을 심리하던 대법관들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지난달 중순께 결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근 소부를 개편하면서 담당 대법관을 바꾼 뒤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법조인 및 법학교수들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법학 교수는 "법원의 자율성을 법원 스스로 허문 일"이라며, 과거 삼성에버랜드 사건 변호를 맡았던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책임을 돌렸다.

특정 대법관을 삼성 사건에서 배제하기 위한 소부 개편?

대법원에는 대법관 4명씩으로 구성된 3개의 소부가 있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소부를 개편해 1부에는 김영란·이홍훈·김능환·차한성 대법관, 2부에는 양승태·김지형·전수안·양창수 대법관, 3부에는 박시환·박일환·안대희·신영철 대법관이 배치되도록 했다.

당시 개편으로 삼성특검이 기소한 사건 주심이던 김지형 대법관이 1부에서 2부로 자리를 옮겼고, 삼성 에버랜드 CB 헐값발행 사건 주심이던 김능환 대법관은 2부에서 1부로 이동했다. 이로써 대법원 1부가 삼성 에버랜드 사건을, 대법원 2부가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이 기소된 삼성특검 사건을 맡게 됐다.

이런 개편을 놓고, 특정 대법관을 삼성 관련 사건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그리고 25일 <한겨레>보도로 인해 이런 비판에 힘이 실리게 됐다.

대법원, 에버랜드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 무시…묵살당한 대법관 재판권

대법원 4명이 심리하는 소부에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은 대법관 전원이 참가하는 전원합의체에 넘겨진다. 소부에서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이 내려지면 주심 대법관이 수석 대법관에게 보고하고, 수석 대법관은 전원합의체용 보고서 작성을 재판연구관들에게 지시하게 된다.

하지만, 소부에서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이 내려진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이런 보고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으며, 대법원은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소부에서 원점부터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는 게 이날 <한겨레>보도 내용이다.

이런 보도대로라면, 대법원은 대법관의 재판권을 정면으로 무시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한 법학 교수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대법관들이 내린 결정이 행정적인 조치에 의해 묵살당한다면, 사법부의 독립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왜 에버랜드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를 꺼리나

삼성에버랜드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면,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이 기소된 삼성특검 사건 역시 전원합의체 회부가 불가피하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삼성특검 사건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소된 까닭에 심리가 더 많이 진행돼 있는 삼성에버랜드 사건의 처리 방향은 삼성 특검 사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대법원이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에서 심리하기로 한 것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이 삼성 특검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기지 않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대법관 전원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것.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판결, 권위있는 입장 정리가 필수

삼성에버랜드 사건으로 기소된 허태학, 박노빈은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삼성특검 사건으로 기소된 이건희 등은 같은 혐의에 대해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사안에 대한 법원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린 셈이어서, 최종심인 대법원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최근 행보는 대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를 꺼린다는 인상을 준다. 이에 대해 국민적 관심사인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이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벌 비리와 관계 있는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판결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재판에 대한 신뢰가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최근 이뤄진 소부 개편이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견해가 다수 대법관 및 대법원장과 다른 대법관을 삼성 관련 사건에서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대법원장의 진퇴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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