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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장관, 음악인 죽이고 공연장 짓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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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장관, 음악인 죽이고 공연장 짓겠다구요?"

[기자의 눈] 한국대중음악상 지원 중단 논란 유감

홍대입구는 번화했나. 외피로만 한정하면 '예스'다. 홍대 부근 가게들이 가졌던 독특한 아우라와 세련된 자본이 합체해 '주차장길'로 설명되는 홍대인근 지역은 서울 서부권을 대표하는 유흥지로 성장했다.

내실로 보면 '노'에 가깝다. 땅값이 오르면서 홍대 살롱 문화를 일으켰던 미술가들은 외부로 빠져나간 지 오래다. 자생적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음악클럽은 법적 한계와 맞서 싸우다 자본에 두들겨 맞고 외부로 밀려났다. 주차장길을 차지한 클럽 대다수는 2000년대 초반 강력하게 침투하기 시작한 댄스클럽이지, 인디신을 일으킨 뮤지션이 연주하는 클럽은 아니다. 자본이 밀려들면서 다양성은 퇴보했다.

상업예술에 자본 논리가 스며드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자본이 유입돼야 상업예술은 살찐다. '자본 유입'은 깊게 보면 소비자 증가, 예술가 삶의 질 향상, 관련 산업 발달, 지역성장이라는 다양한 줄기로 뻗어나가는 확장성을 가진다.

하지만 자본 만능논리는 상업예술을 죽인다. 90년대 초반, 재벌이 영화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생산에서부터 유통,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장악한 후 한국영화는 죽었다. 상업영화는 난무했으되, 영화의 본질인 예술성과 다양성은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뜨거운 맛을 본 재벌자본이 철수한 후 한국영화가 살아나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같은 이유로, 대중음악에도 자본논리만을 평가의 유일 잣대로 내세우는 것은 대중음악을 고사시킬 가능성이 높다. '산업화'의 이름으로 거행되는 가지치기가 자칫 대중음악의 기둥이자 젖줄인 음악적 다양성을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주류음악 시장은 그렇게 재편된 지 오래다. 한국에서 대안으로 버티던 움직임은 단 하나 있었다.

주류와 비주류의 가교 역할을 하던 한국대중음악상

지난 2004년 <문화일보>와 문화연대가 씨를 뿌린 한국대중음악상은 자본논리만이 횡행하는 대중음악시장에 새로운 논리, 곧 다양성을 유입시켰다. 주류음악가이지만 음악시장 주 소비자인 십대의 관심권 밖에 머물던 이적(5회 시상식 '올해의 음반' 수상), 이소라(2회 시상식 '올해의 여자음악인' 수상) 등의 성과를 재평가하고 원더걸스(5회 시상식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노래' 수상), 엄정화(4회 시상식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 수상) 등 주류뮤지션을 비평의 범주에 끌어안은 게 바로 한국대중음악상이다. 물론 비주류라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조명도 받지 못했던 인디음악인의 창작물을 예술성의 잣대로 끌어안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대표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의미에 대해 "(한국대중음악상) 이전에는 오직 음악평론가 개인의 이름으로만 신인 발굴과 중견가수 재조명이 이뤄졌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여기에 공신력을 부여했다. 가수들의 인지도와 소속사의 기획력에만 의존하던 시상식의 잣대를 흔들고 앨범 자체로 음악인을 평가해 왔다. 한국대중음악상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 확립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린 지난해 3월 5일, 그룹 에픽하이가 '최우수힙합음반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류와 비주류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뉴시스

오는 26일 열릴 예정인 6회 시상식을 불과 일주일 남기고 지원금 3000만 원 지급 철회 방침을 일방 통보한 문화체육관광부 결정은 그래서 불만이다. 단순히 인디신이 자라날 토양을 뭉개버려서가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 확립을 위한 유일한 물줄기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연일 비상회의를 열던 사무국은 23일 저녁 "26일 시상식은 기자회견으로 대체하고 다음 달 중 기념행사를 따로 가질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문체부 전략콘텐츠산업과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대해 "민간 시상식의 자립성 강화를 위해 정부 지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선정위가 다양한 협찬을 받아 스스로 시상식을 개최하는 게 시상식의 권위를 세우는 데도 더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해명했다.

이지선 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장은 문체부 주장에 대해 "재정자립을 해야한다는 말은 분명 맞다. 하지만 우리는 예산확보가 안돼서 항상 3월이 다 돼서야 시상식을 연다. 스폰서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방송에 나가기 위해서는 중계비도 위원회가 방송사에 지급해야 할 정도"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문체부 말만 놓고 보자면 맞을 수도 있다. 정부산하 기관도 아닌 독립단체가 정부지원금으로 시상식을 운영한다는 사실은 골든디스크·서울가요대상·MKMF 등 다른 시상식과 비교할 경우 형평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사태에서 보듯 한국대중음악상이 정부 지원이 없다면 개최가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이며 이 시상식의 '사망'은 다시금 대중음악을 비평의 범주에서 놓아버리는 일이 될 것이라는 데 있다.

공연장 짓는다고 대중음악이 발전하나

문체부 결정이 문제가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정부부처마저 음악산업에 자본만을 유일 잣대로 들이댄다는 혐의가 매우 짙어서다. 문체부 관계자가 통화에서 가장 자주 쓴 단어는 '협찬'과 '공연장 인프라', '예산', '업계' 등 산업적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것들 뿐이었다. 대중문화산업이 가지는 예술적 성과나 다양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게 통화 후 느껴진 솔직한 심정이다. 이 관계자는 "대중음악상 지원 예정이던 예산은 어디에 쓰게 되느냐", "인디뮤지션을 다른 식으로 지원한다는데 지원방안은 어떤 게 있느냐"는 등의 질문에 말끝을 흐리기 바빴다.

당장 인디레이블 제작지원제도 폐지가 대표적이다. 처음 4억 원 지원으로 시작한 이 제도는 점차 지원액수가 줄어들다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다. 대부분이 생계 문제에 큰 어려움을 겪는 비주류 음악인들에게 이 제도가 가지는 의미는 컸다. 문체부가 내놓은 대중음악 박물관 건립 등 인프라 구축 제도도 마찬가지다. 박준흠 대표는 "대중음악 100년사를 논하면서도 과거 성과를 정리한 관련 박물관도 없고 음향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전문음악공연장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런데 정부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결론은 결국 한류문화관과 같은 다목적홀이었다. 정말 제대로 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 지나치게 '실용주의 노선'으로 집중하는 듯하다"고 아쉬워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4일 한 대형 기획사 소유의 노래방에서 음악산업진흥 중기계획을 발표했다. 6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후보자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는 날이었다. 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파행운영이 결정됐다. ⓒ뉴시스
주무부처가 이처럼 근시안적인 산업적 관점만을 강조할 경우 결과는 뻔하다. 유인촌 장관이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내건 '한국의 그래미상' 신설이나 '케이팝차트' 등은 뚜렷이 산업적 잣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새로운 시상식은 또 하나의 '주류음악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고 케이팝차트의 선정기준을 둔 논란은 잊을만하면 다시 불거질 것이다. 유 장관이 관련 계획 발표일로 6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후보 발표 기자회견날을 잡은 일은 상징적이다. 모든 언론은 유 장관에만 초점을 맞췄다.

음악인 역시 이런 우려를 제기한다. 허클베리핀(5회 시상식 '최우수 모던록 음반' 수상)의 리더 이기용(기타, 보컬) 씨는 "산업적으로 대중음악상이 매력적이지 않아서 정부가 지원을 돌연 취소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 음악시장에서 비주류 음악인은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주류가 될 수 없다. 이 현실을 정부가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주류적 잣대만을 더 강화해서는 안 된다. 주류만 살아남는 것이 문화 다양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은 산업이기 전에 '꿈'과 '욕망'

결국 음악인들은 이번 정부 결정으로 산업논리가 일종의 신념처럼 굳어져버린 대중문화시장의 현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음악을 온전히 완성도만으로 평가하는 이는 음악하는 사람들 뿐"이라는 푸념이 쏟아진다.

이기용 씨는 "음악은 산업이기 이전에 '꿈'이고 '욕망'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무시하고 산업논리만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 문화 다양성을 지켜주고 이를 소중하게 다뤄 산업적 결실을 맺는 게 선진국 아닌가. 단순히 보기에 비주류라고 해서 경쟁력이 없다고 무시해버린다면 한국 대중음악이 가진 커다란 잠재력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대수 씨의 말은 더욱 의미가 있다. "그래미상을 만들려면 현재 난립한 시상식을 통일하고 제대로 된 시상식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래도 한국대중음악상을 발전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대중문화까지 삼켜버린 자본주의의 행진을 바라보며 슬프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던 주류 자본주의가 경고를 받은 이때, 한국대중음악상 파행 사건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논리가 극에 달한 한국의 오늘을 온전히 내리비추고 있다.

"음악인으로서 음악적인 것이 가장 우선시돼야 해. 그렇지? 그런데 봐봐. 온 세계의 모든 것이 자본주의화됐어. 자본주의가 횡행하니 음악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렸어. 음악만 그런가? 영화도 그렇고 미술도 그래. (한 인기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예로 들면서 흥얼거리다) 물론 '이 노래도 사람의 마음을 캐치하는 게 있으니까 사람이 사는 건데 왜 그러느냐'는 말도 맞아. 하지만 음악의 기본은 음악이야. 극단적인 상업주의화는 결론적으로 진정한 아티스트를 죽여. 아티스트가 창작을 위해 온갖 고통을 겪고 노심초사해서 만든 작품을, 그 작품에 녹아난 아티스트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이제 없어지지 않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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