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정조에게 인삼 처방한 어의가 맞아 죽은 까닭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정조에게 인삼 처방한 어의가 맞아 죽은 까닭은?"

[이인화·이덕일에게 답한다] 이상곤 원장 "정조 독살설은 '허구'다"

조선 정조의 독살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정조가 그간 소설, 영화 등을 통해 독살의 배후로 지목된 노론 벽파(辟派)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편지 299통이 공개돼 이런 독살설은 근거가 희박함이 밝혀졌다. 그러나 대중에게 정조 독살설을 퍼뜨리는 데 기여한 이인화, 이덕일 씨 등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계속 각종 언론을 통해서 정조 독살설을 재차 제기하고 있다.

<조선왕 독살 사건> 등에서 정조 독살설을 정면으로 제기한 이덕일 씨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 "심환지가 정조와 편지를 주고 받았으니 독살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박정희를 죽인 김재규,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 등 항상 최측근이 배신한 역사를 보라"고 반박했다.

소설 <영원한 제국>을 쓴 이인화 씨의 주장도 대동소이하다. 특히 그는 22일 문화방송(MBC) <시사매거진 2580>과의 인터뷰에서도 "심환지가 정조의 지시를 무시하고 편지를 남겨놓은 것 자체가 사후에 독살을 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다시 한 번 정조 독살설을 강조했다.

심환지 친척이 처방한 수은은 '독'이 아니라 '약'

이미 정조의 편지가 공개되기 전부터 이런 정조 독살설을 "근거가 없다"고 반박해온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 교수)은 최근 <주간동아>에 기고한 글을 통해 한 번 더 정조 독살설이 왜 근거가 없는지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원장은 정조의 사망일(1800년 6월 28일) 전후의 급박한 상황을 재구성하면서 이인화, 이덕일 씨의 주장을 통박했다.

이 원장은 "정조 독살설의 뿌리가 된 것은 수은이 든 연훈방 사용을 심환지의 친척뻘인 '심인'이 건의한 데서 시작했다"며 "연훈방이 정조의 직접적인 사인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훈방 사용 뒤 정조는 오히려 병세가 호전했다"고 설명했다. 즉 연훈방을 독살과 연결하는 견해는 한의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것.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연훈방을 쓰자 정조의 종기에 고여 있던 피고름이 많이 빠져나와 옷, 이불을 적셨다. 이 원장은 "(피고름이 빠져나온 것을 두고) '호전이냐 악화냐' 하는 논쟁이 있는데 이는 실록의 혜경궁 홍 씨의 기록을 보면 답을 알 수 있다"며 "'홍 씨가 종기로 고생을 했는데, 종기에서 많은 피고름이 나오면서 나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연훈방은 수은을 태운 것으로 유해한 약물임에 틀림없지만 단 한 번의 소량 사용은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도 있다"며 "한의학사를 살펴보면 소량의 수은을 사용해 병을 치료한 예는 아주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조 사망 이틀 전인 6월 26일 정조의 진료 전 과정을 책임지던 도제조 이시수는 연훈방을 정조에게 사용한 결과를 놓고 이렇게 보고한다.

"조금 전 연훈방을 사용한 뒤 심인과 여러 의관이 하는 말은 모두 종기 부위가 어제보다 눈에 띄게 좋아져 며칠 지나지 않아 나머지 독도 없어질 거라 하였습니다. 의관뿐만 아니라 아침 연석에서 신들이 본 것으로도 (정조의 상태가) 어제보다 아주 좋아졌습니다."

정조에게 인삼 처방한 어의 맞아 죽어

이상곤 원장은 "정조의 죽음은 이 연훈방을 사용한 뒤에 복용한 인삼이 든 경옥고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이어서 "그러나 정조에게 인삼이 든 약물을 극구 권유한 강명길은 정조를 독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강명길은 정조가 죽자마자 극형에 처해졌지만, 그나마 고문을 견디지 못해 바로 죽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강명길은 정조의 총애를 받던 어의였다. 정조와 강명길의 각별한 관계는, 정조가 강명길과 공동으로 <제중신편>이라는 책을 공동 집필한 데서도 알 수 있다(정조 23년). 심지어 이런 정조의 강명길 편애를 보다 못한 정약용이 그의 치부를 고발했음에도, 정조는 그를 귀양 보내는 척하다 한 달 후 바로 어의로 복직시켰다.

이상곤 원장은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정조가 죽으면 자신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던 강명길이 평정심을 잃고 악수(惡手)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강명길은 정조의 몸을 보신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에 인삼을 처방했고, 평생 이 처방을 피했던 정조는 강명길의 추천이라는 말에 이런 받아들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최근 발견된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로 독살설은 허구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일부 인사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인간의 죽음은 정치적 추론이 아니라 의학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옳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그들은 독살설을 말하면서도 정작 사망일 전후의 사실관계는 외면하고 있다"고 이렇게 반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