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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지금 하늘에서 웃고 계실까?"

[기자의 눈] 강호순, 김수환 그리고 용산 참사

생명은 고귀하다.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소식은 언제나 충격적이고 관심이 쏠린다.

지난 1월 강호순이 검거된 이후 세간은 아직도 그의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많은 이들은 십수명을 연쇄 살인했다고 자백한 강호순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언론이 일제히 이 사건을 크게 다룬 이유도 그가 존엄한 생명을 마구 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경찰에 "강호순 사건을 크게 보도하게 해서 용산 참사를 덮으라"고 지시한 순간, 끔찍한 범죄는 정권의 여론몰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연일 강호순 사건을 1면 기사로 내걸었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청와대의 이같은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청와대 홍보지침이 보도되고 이틀 후인 지난 16일, 김수환 추기경이 향년 87세로 선종했다. 1969년 우리나라의 첫 추기경으로 임명돼 활발한 사회 활동을 벌였던 원로의 죽음에 많은 이들은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모든 언론이 일제히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김 추기경에 얽힌 일화 등 다양한 기사를 실었다. 20일 그의 장례 미사가 치러질 때까지 보수와 진보, 신문과 방송을 막론하고 김 추기경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 특히 보수 언론의 반응은 훨씬 더 유난스러웠다.

유난스러웠던 그들의 1면

선종 다음 날인 17일에 대부분 매체에서 일제히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톱기사로 다뤘다.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부터다.

다음날인 18일, <조선일보>는 "오늘, 빛을 보았습니다…김수환 추기경이 각막 기증…2명 눈 떠"라는 제목의 톱기사를 실었다. 김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했고, 이날 두 명의 실명 환자가 각막을 이식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현행법상 각막을 비롯한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과 기증받는 사람의 신원은 공개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장기 이식 수술을 받은 두 환자의 구체적인 일화를 통해 이들이 김 추기경의 각막을 기증받은 환자임을 짐작케 했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1면 톱기사에 "인공 호흡기 절대 안 돼…약속해 달라"·"의식 회복 뒤엔 웃으며 '나 부활했어'"라는 제목으로 김 추기경에 관한 일화를 실었다.

다음날인 19일도 보수 언론의 릴레이는 이어졌다. <동아일보>는 이날 "'사랑합시다'의 힘! 이틀새 23만 명 조문…사실상 '국민장'"이라는 제목으로 명동성당을 찾는 조문객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 역시 "명·동·기·적…김수환 추기경 추모…새벽부터 한밤까지 15만 행렬"라는 제목으로 같은 내용의 기사를 톱으로 내걸었다.

릴레이는 20일도 계속됐다. <동아일보>는 "추기경의 마지막 선물 '김수환 재단'"이라는 제목으로 오웅진 신부가 추진하는 '김수환 재단' 소식을 1면 기사로 실었다. 특히 지난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기사에 '단독'이라는 제목을 붙여 내보냈던 <동아일보>는 이후 김 추기경과 관련된 수십 개의 기사를 온·오프라인으로 쏟아냈다.

다른 언론 역시 김 추기경에 얽긴 일화와 덕담, 추모사 등으로 그의 선종을 애도했다. 그러나 선종 다음날인 지난 17일 이후부터는 대부분 다른 소식과 함께 김 추기경의 소식을 전했다.

유독 보수 언론들만이 '김수환 릴레이'를 이어갈 때 다른 매체의 1면을 채운 기사들은 다시 흔들리는 금융시장(18일자 <서울신문>·<세계일보>), 전북 임실의 학업 성취도 평가 성적 조작 의혹(19일자 <경향신문>·<한겨레>) 등이었다.

정말 추기경의 뜻 되새긴다면…

기사를 본 시민들이 발길을 서두른 덕일까. 명동성당에는 지난 19일까지 모두 38만7420명이 찾아 김 추기경을 추모했다. 또 각막 기증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예인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각막 기증 서약 문의가 빗발친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세요"라는 김 추기경의 말씀을 가장 많이 기억한다. 실제로 지난 17일 대부분 신문은 김 추기경의 이 말을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그랬나보다.

이 대통령은 20일 장례 미사에서 발표한 고별사를 통해 "추기경님이 말씀과 행동으로 이 세상에 남긴 메시지는 감사, 사랑, 그리고 나눔이었다"며 "빈손으로 와 사랑을 남기고 간 추기경님은 이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현재에 감사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 것을 바라시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우리 모두 뜻을 받들어 서로 사랑합시다"라고도 덧붙였다.

그렇다. 20일은 지난 1월 20일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그들은 무조건 쫒아내지 말고, 적절한 생계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외치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농성 하루만에 경찰 특공대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경찰관 1명을 비롯해 6명이 죽었다.

그리고 지난 9일, 검찰은 어떻게, 왜 불이 났는지를 밝히지 못했다면서도 농성자 20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 혐의로 구속·불구속 기소했다. 그 중에는 부상이 낫지도 않은 채 구속돼 치료조차 못 받는 이도 있다. 5명 희생자의 유족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병원 영안실을 지키고 있다.

"서로 사랑하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별사가 진심이라면,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참사를 당한 고인과 유족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자살'하려고 망루에 올랐던 '테러리스트'로 치부하며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서 어떻게 '사랑'을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김수환 추기경은 하늘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선종한 지 닷새만에 오늘(20일) 흙으로 돌아가신 김 추기경은 벌써 한 달째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싸늘한 병원 냉동실에 누워 있는 용산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가여워 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자신에 대한 찬양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용산 참사 희생자에 대해서는 관심은커녕 도시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태도를 불편해 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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