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극동방송을 중심으로 홍대 인디신이 펼쳐집니다. 이 거리는 지난 수년 간 묵묵히 실력을 쌓아온 한국 인디 뮤지션들의 성지이자 삶의 터전입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씨는 이들의 삶에 가장 깊숙이 침투한 이 중 하나입니다. 군생활을 제외하면 마포구에서 태어나 홍대 일대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홍대인근 곳곳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술집, 카페,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그를 보고 많은 뮤지션이 "형" 하며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지난해 촛불집회로 홍대를 넘어 전국구 스타(?) 평론가가 된 김작가 씨가 <프레시안>에 특유의 '쩍~달라붙는' 글솜씨로 음악 얘기, 세상사는 얘기를 한보따리 풀어드립니다. <편집자> |
불경기의 여파를 실로 몸서리처질만큼 체감하는 요즘, 미친 짓을 시작했다.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왕 하는 거 형편 내에서 맥시멈으로 질러보자, 그리고 깔끔하게 이 세계에서 데뷔와 동시에 떠나보자 해서 예산을 나름 넉넉히 잡았다. 홀로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주변에 은근히 서식하는 오디오파일들의 부추김도 있었다. "그래도 음악 듣는 게 업인데 이왕이면 제대로 된 소리로 들어야할 것 아니냐"라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좋은 오디오로 들으면 달리 들린다는 거야 누구나 아는 얘기. 허나 그 광활하고 추상적이며 형이상학적 세계를 가이드도 없이 홀로 발 디딘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마침,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은인이 나타났다. 은인의 도움으로 이런 저런 기기들을 살펴봤다. 결국 '질렀다'.
우선 스피커부터 시작했다. 청음을 하러 갔다가 소리가 주는 상상력의 실체를 먼발치에서나마 체감했다. 누구라도 경탄할 수밖에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은인은 속삭였다. "여긴 너무 넓어서 소리가 썩 좋다고 할 수 있는 편이 아니에요. 작업실에서 들으면 더 좋을 걸?" 여기에 앰프를 물리고 CD플레이어와 DA컨버터(CD에 기록된 디지털 신호를 소리로 바꾸는 장치)를 달기로 했다. 그렇게 오디오를 구축하면 그동안 모았던 음반들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 듣게 될 것만 같다. 혼자만 듣기에는 아까울 것 같아 활용법을 고민 중이다. 친한 뮤지션이 앨범을 내면, 갖고 오게 하여 들어본다거나, 좀 더 좋은 소리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반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작업실로 초대하여 청음회를 가지거나, 하는 그런 방법들.
취미의 막장이라 일컬어지는 오디오는 음악이 아니라 소리에 대한 집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극히 미세한 소리 차이를 위해 오디오파일들은 억 단위의 돈을 쓴다. 어떤 이는 마이너스 통장도 모자라 사채에도 손을 댄다. 경제적,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의무이자 필연이다. 보다 좋은 소리에 대한 쾌감이 그들에게서 이성을 앗아가는 셈이다. 좋은 디지털 카메라는 누군가를 찍어줄 수 있고, 초고가의 스포츠카는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거나 포장할 수도 있지만 오디오는 돈을 쓰면 쓸수록 기껏해야 '미친 놈' 소리만 듣기 딱 좋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다. 사회적으로 어떤 이점도 주지 못하는 이 고약한 취미에, 품질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투자 대비 효용성은 곤두박질치는 이 비경제적 행위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김창완의 말로 대신한다. 지난 1월 중순, 어느 커피집에서 나눴던 대화의 일부다. 그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굉장히 좋은 오디오로 음악을 듣고 왔다고 했다.
"우리 음반도 듣고, 레코딩 잘 된 음반도 듣고. 소리가 주는 상상력에 대해서 경험을 했지. '음악 이전에 소리가 있었구나'하는 충격을 받았을 거야. 우리가 경외롭게 생각하는 게, 처음에 천둥소리나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다들 기절초풍을 할 거에요. 동네에서 개 짖는 거나 소가 우는 것과 호랑이가 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에요. 호랑이 입에서는 천둥이 나오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니 너무 놀라잖아. 그런 경험과 비슷한 걸 좋은 소리를 들으면 느껴요. '우리 상상력이 너무 트랜지스터에 위축되어 있구나. MP3에 갇혀 있구나.'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되죠. 그건 경험해봐야 해요. 천둥소리 듣고 파도 소리 듣던 귀가 어디간거야. 안돼요. 우리는 2집에 '어느 날 피었네'를 녹음하면서 움트는 소리를 만들어 보려고 했어요. 그걸 녹음하려고, 그 사운드를 만들려고 수십 가지를 해봤죠. 물론 그런 소리는 없겠죠. 하지만 상상에는 있어요. 처음 시작은 유리가 금이 가는 소리로 시작해서 솜털이 삐져나오는 소리, 그래서 꽃이 확 웃는 소리를 재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못했죠."
존재하지 않는 소리는 재현할 수 없어도, 숨어 있는 소리는 들리게 하는 것, 그리고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사람과 직접 마주하고 있는 착각을 주는 건 좋은 오디오만이 주는 기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소리의 상상력 아닐까.
태아가 외부와 소통하는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수단은 듣기다. 태아는 달팽이관이 형성되는 4개월 반이 되기 전부터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양수의 진동을 통해서 말이다. 자궁에 빛이 없으므로 10개월 내내 보지 못한다. 탯줄로 영양을 공급 받기에 먹지 못한다. 태아가 만질 수 있는 건 고작 태반의 벽일 뿐이다. 오직 듣는다. 그래서 옛 인디언 임산부들은 끊임없이 자연의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고 인디언의 이야기를 노래 가락으로 불러줬다. 소리로 상상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렇게 10개월 내내 소리로 태교를 받은 인디언 아이는 태어나서도 칭얼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듣는다는 것은 그리도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영화 <워낭소리>를 관람하러 갔다. 이 대통령은 이충렬 감독에게 "관객이 얼마나 들어왔느냐"고 묻는 등 수익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연합 |
<워낭소리>를 봤다. 보는 내내 힘들었다. 눈물은 참을 수 있었지만 속에서 북받치는 어떤 감정을 억누르느라 횡경막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꺼이꺼이 울 수는 없지 않은가. 부모님이 함께 보자고 했을 때, 그러지 않기를 잘했다는 안도감이 극장에서 나오며 들었다. 영화에 대해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건 몫이 아니다. 한가지, 영화에서는 내내 늙은 소의 종소리, 즉 워낭소리가 딸랑 거린다. 할머니의 말을 제대로 못들을 정도로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는 그 소리만 듣고도 소의 기분을 알아차린다. 불편한 몸을 지탱해주었고 자식들을 키워준 소와 내면으로 소통한다. 소리는 그만큼 원초적이다.
소리가 주는 그런 원초적인 소통은 뒤로 한 채, 돈소리에만 관심을 보인 분이 계신 모양이다. 그 분께서는 몸소 극장을 찾아 감독에게 흥행과 제작비에 지대한 호기심을 보였다고 한다. 아마 그런 분은 제 아무리 좋은 오디오를 선물하더라도 우선 가격부터 물을 게 틀림없다. 그런 분이 대통령 뿐은 아닌가 보다. <워낭소리>의 제작자가 호소하지 않았나. 도대체 얼마를 벌었냐는 전화 뿐이라고.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보고 감동하자마자, CF로 얼마를 벌어들이는지를 앞 다퉈 보도한다. 돈부터 보이고 돈부터 들린다. 눈먼 자, 귀먼 자들의 도시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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