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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의회정치는 사양산업, 해법은?"

"촛불 때 물먹은 곳은 MB 아닌 국회"

국회 각 상임위별 전투가 개시된 19일 김부겸, 남경필, 원희룡, 정장선 4명의 여야 중진의원들이 모여 '의회정치의 위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정보화 사회에서 의회정치는 사양산업"이라는 진단 속에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제도적 원인: 정보사회 의회는 사양산업

이날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박재창 교수(숙명여대)는 "위기의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의회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라는 점"이라며 제도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의회정치는 과거 시간과 공간적 제약이 있던 산업사회에서 의회는 국민의 의견을 대변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간접 민주주의 체제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져 순식간에 전국적 이슈가 되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가 발달해 의회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정보사회가 심화되며 의회정치가 작동을 하지 않은 대표적 예가 2008년 촛불시위"라며 "촛불시위 때 물을 먹은 곳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행정부와 국민들이 직접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며 "의회는 대표성을 잃어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사회 갈등을 해결하지 못 한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

상황적 원인: 신뢰 상실 심각

제도 개선에 앞서 당장 시급한 과제는 '신뢰 회복'이라는 지적이다. 고성국 박사(시사평론가)는 "홍준표 원내지도부는 청와대에 의해 브레이크가 걸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원혜영 원내지도부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며 "이런 상태면 국민들이 원내지도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 박사는 "연말 입법전쟁이 어떻게든 여야 합의에 의해 종결됐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며 "여야 원내지도부는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려주는 노하우와 균형점을 찾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한 결단력을 갖고 당내 반발로 사퇴를 하더라도 합의를 지키는 담대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 박사는 "비선거철에는 무당층이 40% 정도일 수 있지만 무당층이 60%가 넘었다는 것은 의회 정치가 축소되는 심각한 위기로 경계해야 한다"며 "시류에 편승하는 포퓰리즘에 빠지지 말고 합의는 무조건 지키는 관행이 정착돼야 제도 개선도 의미 있다"고 말했다.

정치 분야 '조직' 문화 너무 강해

'신뢰'의 위기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더욱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체력단련실에서 같은 당 의원과 얘기를 하다가도 다른 당 의원이 들어오면 대화 주제를 바꿀 정도로 신뢰가 없는 상태"라며 "국회가 사회 갈등을 조정해야지 사회 갈등을 배포만 하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17대 국회 수석부대표를 하던 시절 법사위 점거를 진두지휘 했는데 이번에 서갑원 수석이 본회의장 점거하는 것을 보면서 데자뷰를 느꼈다"면서 "17대 국회에서 김부겸 의원과 수석부대표로 협상 하던 시절에는 5분이면 협상이 끝났는데, 신뢰가 효율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남 의원은 "대통령제도 위기, 의회도 위기, 민주노총도 위기, 재벌도 위기 등 과거 권위있던 기관과 단체들이 모두 위기에 처하며 '그라운드 제로'로 가고 있다"면서 "우선 정치적으로는 3권 분립이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원희룡 의원은 "정국 주도권 공방전이 벌어지면 집단적 분위기가 생겨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고 말했고, 민주당 정장선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은 법안 통과를 위해 공화당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협조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0표가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야당 지도자에게는 전화 한 통 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정 의원은 "청와대와 여당은 '경제살리기'라며 무조건 따라오라고만 하니 야당 입장에서는 반발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조직 논리가 너무 강하고 당론에 의한 규제가 너무 강하다"고 말했다.

대안: 직접민주주의 강화, 3권 분립 강화, 의원 독립성 강화….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이 있는가. '의회는 사양산업'이라고 진단했던 박재창 교수는 "대의정치에 의해 국회가 갖는 권리의 상당 부분을 국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국민발안 △국민소환 △옴부즈만 제도 등 직접 민주주의 확대를 제안했다.

원희룡 의원은 수시로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스위스를 예로 들며 "정치권에서 합의되지 않는 안건들에 대해서도 한 달 동안 토론하고 국민들이 직접 투표를 하는데, 전자투표와 모바일 투표가 이미 법제화돼 있다"고 거들었다. 스위스는 최근 EU 노동협약 연장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제1당인 보수 성향의 스위스국민당이 반대했으나 60%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박 교수는 "유럽에서는 2000년대 들어 정보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직접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국민들의 '교양있는 참여', '훈련된 참여' 등 기본적 역량 증진을 위한 민주시민 교육 투자를 탑 아젠다로 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밖에 "국회가 여의도에만 갇혀 있는데 지구당을 복원하고 국회의원 사무실을 국회 파견사무소화해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돼 있는데, 어느 한 쪽으로 일원화해 기관 대립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교섭단체를 없애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당장의 국회 경색을 풀기 위해서는 '작은 것, 공통점부터 찾아가자'는 대안이 제시됐다. 김부겸 의원은 "쟁점을 최대한 잘게 나눠 '스몰딜'부터 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고, 참관하던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은 "같은 점을 먼저 찾아가면 접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한나라당 남경필, 원희룡 민주당 김부겸, 정장선 의원. ⓒ프레시안

중도 성향 중심 정계개편?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가볍게나마 '정계개편'이 언급된 점도 흥미롭다. 박 교수는 원희룡, 남경필, 김부겸, 정장선 의원에게 "'소속 당에서 언제든 쫓겨날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농담으로 운을 뗀 뒤 "국민들이 여의도에 입성하기 직전인데 정치권 내부에서 정계개편이라는 뇌관을 쏴주는 자기 혁신의 결단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원로로 초대된 인명진 목사(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는 "억지로라도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 교섭단체 틀에 들어가 (조정과 중재를 하는 것을) 의미 있게 봤다"고 말했다.

인 목사는 "나도 충청도 사람이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교섭단체가 아니었으면 좋았겠다"면서 "18대 국회에 (그런 역할 할) 국회의원 20명이 없을까"라고 '새로운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정계개편을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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