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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11년만에 공적자금 조성…구조조정 계획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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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11년만에 공적자금 조성…구조조정 계획 발표

이참에 금산분리 완화 추진…"알맹이 없는 구조조정안"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을 내놨다. 핵심 메시지는 세 가지. 채권단이 주도하는 종전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 주된 가운데 한편으로는 사실상 정부 주도의 공적자금 조성안을 포함시켰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논란의 핵심인 사모투자전문회사(PEF) 관련 제도 개선 방안도 구조조정 계획에 집어넣었다.

요약하면 아직 실물기업 위기가 본격화한 것은 아닌 만큼 '평상시 구조조정' 방식을 이어가겠지만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신속한 구조조정을 집행할 가능성을 살짝 내비친 것이다.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정부 경제철학 중 하나인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19일 오전 여의도 금융위원회에서 기업 구조조정 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부 발표로 당초 오전 10시 정무위에 참석하려던 각 언론사 기자 중 상당수가 정무위 대신 금융위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연합

기본 뼈대는 '채권단이 알아서'…대기업 구조조정 대비

19일 정부는 시장과 학계에서 꾸준히 요구한 구조조정에 대한 화답 차원에서 구조조정 실행계획(Action Plan)을 발표했다.

주된 골격은 기존 정부 입장인 '시장 주도, 정부 지원'을 되풀이 한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구조조정 3원칙은 △채권금융기관이 구조조정의 중심이고 △기업의 자율적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시장형 구조조정 방식'도 병행하며 △정부는 지원자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먼저 채권단 주도 구조조정은 지난달 1일 구조조정 기준이 발표된 건설·조선업의 경우 다음 달 말까지 경영정상화 계획을 확정키로 했다. 1차 평가에서 제외된 건설·조선사에 대해서는 다음 달 말부터 2차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키로 했다.

오는 4월 말에는 채권은행이 44개 대기업그룹에 대한 재무구조평가를 실시키로 했다. 불합격 계열사를 발견할 경우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다는 방침이다. 대기업부문에 대한 조사도 본격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처음 내비친 셈이다.

건설·조선업에 이어 해운업 구조조정도 조만간 실시하겠다고 정부는 밝혔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해운업은 경기변화에 민감한 탓에 어려움이 큰 업종"이라며 "상시 평가를 실시할 것인지 등 전체적인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주무부서와 협의 중이다. 조금 있으면 아웃라인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 방식의 실효성이 과연 있느냐는 일각의 우려는 끊이지 않고 있다. 당장 은행(채권단)부터가 제 코가 석자인 마당에 과감히 부실채권을 떠안도록 하는 정책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고위간부는 "지금이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는 정부 말은 맞다. 당시는 기업이 다 문을 닫았고 지금은 아직 정상 경영이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멀쩡히 잘 굴러가는 회사보고 은행이 나서서 '문 닫으라'고 하면 누가 말을 듣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또 "당장 은행이 기업을 부실처리 해버릴 경우 안 그래도 자금 사정이 빡빡한 상태에서 부실채권만 더 떠안는다"며 "우리나라의 채권단이 과연 이를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우려에 대해 정부는 기존에 마련된 20조 원 규모의 은행자본확충펀드 지원 방침을 다시금 강조했다. 일단 펀드로 은행 자본을 늘리고 이 돈이 궁극적으로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쓰이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정부, 11년 만에 공적자금 조성 결정

그런데 이번 발표 내용을 보면 새로운 내용도 하나 추가됐다. 다음 달 말까지 자산관리공사(KAMCO)에 '구조조정기금(가칭)'을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새로 설치될 구조조정기금의 재원은 정부가 보증하는 구조조정기금채 발행으로 조성하고 세제지원도 강구키로 했다. 캠코의 부실채권 인수 여력 확충을 위해 정부는 현행 6000억 원인 자본금을 3조 원으로 늘리겠다는 방침도 전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캠코가 1조3000억 원 규모의 저축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채권 매입을 다음 달 말까지 끝내고 4월부터는 은행의 PF 부실채권 인수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는 사실상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을 계획했음을 뜻한다. 구조조정기금채 발행을 위해서는 정부가 국회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 자본확충과 신보·기보 추가보증 등 사실상 공적자금이면서도 관치금융 논란을 일으켰던 '유사 공적자금'과는 질이 다르다. 97년 당시 정부는 국회 동의절차를 거쳐 총 38조 원 규모의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조성한 바 있다.

진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기금이 할 일은 금융기관이 가진 부실채권을 사주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와 같이 생각하면 된다"며 "기금 규모는 금융회사의 부실채권 증가 추세 등을 감안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논란을 의식한 듯 기금의 성격이 어디까지나 '예방' 차원에 있음을 강조했다. 진 위원장은 "구조조정기금은 경기 악화에 따라 발행할 수 있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 확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도 이번 경제위기는 '비상사태'다. 재계에서는 금산분리 완화 방침이 통과된다면 새 '성장동력'을 찾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사진제공 : 전경련) ⓒ뉴시스

PEF 필요성 강조, 금산분리 완화 위한 여론전?

한편 정부는 '시장 친화적 구조조정 병행 추진'을 위해 구조조정펀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 필요할 경우 PEF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전했다.

방안의 핵심에는 사모투자펀드(PEF)가 자리하고 있다. 곧 구조조정의 한 축으로 민간자금을 이용하겠다는 소리다. 산업은행의 경우 1000억 원 규모의 PEF를 설립해 부실기업 주식 인수에 나서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한편으로 '민간자본 도움 없이는 경기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공론화를 조성해 금산분리 완화의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PEF가 부실기업 인수를 위해 자금 동원시 현실적으로 가장 튼실한 자금유입 루트는 재벌그룹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정부 구조조정 계획안 발표 30분 후인 오전 10시 시작된 정무위 은행법 및 금융지주회사법 공청회를 보면 여당은 산업자본계열PEF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공정거래법 11조와 소유제한 방침이 적용된 금산법 24조를 적용해제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산업자본계열PEF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금융사를 인수 가능하다.

물론 제한조항이 자본시장통합법에 마련돼 있다. 자통법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집단이 조성한 PEF는 인수한 회사의 주식을 10년 내로 매각해야 하며 매각시 계열사 인수가 불가능하다. 만약 삼성그룹이 PEF를 조성해 부실 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하더라도 10년 내에 그룹이 아닌 다른 회사로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 제한조항도 실효성은 없다는 지적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주식매각을 막아놓았다고 하지만 핵심자산이나 주요 사업영역 양수도는 제한이 없다. 얼마든지 재벌이 금융사 핵심역량을 떼 가는 것이 가능하다"며 "결국 이번 정부 발표의 핵심은 경제위기 상황을 빌미로 PEF라는 매개고리를 통해서 금산결합을 진행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날 정부가 발표한 구조조정 계획의 핵심내용은 "구조조정은 민간이 주도한다. 필요하다면 금산결합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사태가 정말 심각한 만큼 언제고 정부가 곧바로 구조조정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구조조정기금을 미리 조성한다는 복안을 깔아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정부가 완전히 구조조정에서 빠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공적자금 조성을 계획했다면 사용방식과 관리방법 등 전반적인 계획이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없다"며 "반면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면 파산법 등 관련 제도 정비에 정부가 나서야 하고 벌처펀드 등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 역시 부족하다"며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았으되 알맹이는 없는 이번 발표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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