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어느 나라나 사람들에게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불만과 불평이 만족스럽다는 의견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인민이 아예 불만을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겁을 집어먹었거나 세뇌당한 사회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민 사이에는 정치 현실에 대해 많은 불만이 있고 정치인에 대해 많은 불신이 있다.
정치를 간단한 산수처럼 생각하면, 이러한 불만은 진보 세력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진보 세력을 어떻게 정의하든지 일단 사회 구조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표방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현실에 불만을 가지는 유권자라면 변화를 표방하는 세력에게 표를 주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변화란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예컨대 노무현이 대통령이던 2007년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 후보 이명박이 "변화"를 구호로 외치면서 당선되었다.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 인기가 떨어진 상태에서 치러진 2008년 미국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 매케인조차 "변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공화당이 비록 일반적으로는 보수지만, 기존 부시의 노선으로부터는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표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다른 의미의 "변화"를 내건 민주당 오바마를 선택했다.
미국보다 며칠 뒤에 있었던 뉴질랜드 선거에서는 보수 국민당이 "변화"를 표방함으로써, 9년 동안 집권해 오던 노동당에게서 권력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패배한 노동당의 수상 클라크(Helen Clarke)는 특별히 실정이랄 것은 없었지만, "9년이면 충분히 길었다"는 말로써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받아들이고, 즉각 당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새로운 노동당을 건설해서 재집권을 준비하라고 촉구했다.
이명박이나 뉴질랜드 국민당이 "변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나아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정치에서 구호와 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선명한 사례이다. "변화"라는 기치는 진보 세력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구호로서, 그 의미는 뭔가 사회 질서 중에 보다 깊은 곳에 위치하는 병소를 고치겠다는 뜻이 보통이다. 그래서 진보 세력이 추구하는 변화는 "질적", "근본적", 또는 "발본적", "구조적" 변화라고 하는 한정사들이 덧붙거나, 생략될지라도 의미상으로는 함축된다.
반면에 보수 세력이 "변화"를 들고 나올 때에는 보통 진보 세력이 집권하고 있을 때로서,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뜻일 때가 많다. 어떤 경우에 "변화"라는 구호는 유권자들에게 대단한 매력을 가지지만, 어떤 경우에는 식상하고 피곤한 소리로 배척당한다. 그러므로 정치에서는 정책의 실질과 관련된 논쟁만큼, 매력적인 수사와 구호를 선점하고 나아가 상대방에게는 식상하고 피곤한 낙인을 고착시키는지도 중요하다. 이와 같은 매력적인 수사와 피곤한 낙인을 둘러싼 경쟁을 담론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
▲ "노무현이 대통령이던 2007년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 후보 이명박이 "변화"를 구호로 외치면서 당선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왜 인기가 그렇게 없었을까? 국민은 왜 겨우 3년 남짓 만에 그를 그토록 저버리게 되었을까?" ⓒ프레시안 |
한국 정치에서 "변화"란 1997년 김대중의 당선 때까지 줄곧 진보 세력이 표방하는 가치였다. 정치사회의 질적 변화라는 가치는 "민주화"라는 표어로 대변되었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적 정권 교체"가 민주화 운동가들 사이에는 하나의 이상으로까지 격상되어 숭상되는 경우도 있었다. 노무현도 더 많은 민주화와 더 많은 변화를 바라는 인민의 열망에 힘입어 당선되었다. 하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을 당선시켰던 40%대의 지지율은 2007년 선거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까마득한 흔적만이 남았다. 잠시 구체적인 수치들을 한 번 살펴보자.
이명박은 2002년 노무현이 얻었던 1201만 표보다 52만여 표가 적은 1149만 표만을 얻었는데, 이는 2002년에 이회창의 득표보다 불과 4만 9천표가 많을 뿐이다. 득표율에서도 노무현의 48.9%에 못 미치는 48.7%일 뿐만 아니라, 2007년 선거 투표율이 2002년보다 8%포인트 가까이 낮았기 때문에, 전체 유권자로 나눈 득표율로 계산하면 30.5%로서 역대 당선자 중에서 최저치일 뿐 아니라 2002년에 낙선한 이회창의 32.7%에도 미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이 워낙 표를 적게 얻은 탓에 사상 최다표차의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다. 노무현 때문에 진보 세력이 지리멸렬 와해되었고, 노무현이 워낙 인기가 없어서 전체 유권자 대비 최저 득표율을 올린 보수 후보가 사상 최다표차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노무현이 인기가 없었고, 그 때문에 진보 세력 전체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다는 말은 노무현의 열성 지지자라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맞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왜 인기가 그렇게 없었을까?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1987년 이전 독재시대를 제외하면 유효투표 대비 득표율도 최고를 기록하며 당선된 노무현이 왜 인기를 그렇게 잃었을까? 그를 탄핵소추한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에 분노하여 불과 47석짜리 군소정당에 불과하던 열린우리당을 152석의 과반수 정당으로 만들어줬던 국민은 왜 겨우 3년 남짓 만에 그를 그토록 저버리게 되었을까?
노무현이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금융 개방과 자유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침으로써 지지자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민주노동당 후보 권영길의 득표도 2002년의 95만7148(3.9%)표에 비해 2007년에는 71만2121(3.0%)표로 감소한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문국현이 얻은 137만5498표는 어쩌면 노무현에게 실망한 자유주의 좌파의 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동영, 이인제, 문국현의 표를 다 합해도 2002년에 노무현이 얻은 표에 430만 표나 모자라며, 득표율로도 32.7%로서 노무현의 48.9%에 비할 수 없다. 그러나 이명박이 얻은 1149만 표에 이회창이 얻은 356만 표(15.1%)를 합해서 생각하면 표의 이동 상황이 쉽게 드러난다. 두 차례의 선거에서 투표율이 꽤 차이가 있기 때문에, 득표수보다는 득표율로 살펴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2002년 선거에서 이회창 지지표를 보수주의로, 노무현 지지표를 자유주의로, 그리고 권영길 지지표를 사회주의로 대략 명명해보자. 그리고 2007년 선거에서는 이회창과 이명박을 보수주의로, 이인제, 정동영, 문국현을 자유주의로, 권영길을 사회주의로 묶을 수 있다. 그렇게 묶어 보면 사회주의 지지표는 3.9%에서 3.1%로 약간 감소한 반면에, 보수주의는 46.6%에서 63.8%로 증가했고 자유주의는 48.9%에서 32.6%로 축소되었음을 볼 수 있다. 보수주의의 증가분 17.2%포인트는 대략 자유주의의 감소분 16,3%포인트와 맞먹는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표 가운데 대략 16%포인트 정도가 자유주의에서 보수주의로 이동한 셈이다.
이들 가운데 노무현이 기대만큼 진보적이 아니라서 실망한 결과 아예 노무현보다 더 오른쪽으로 이동해버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노무현이 생각보다 급진적이라서 보다 보수적인 이명박 또는 이회창 쪽으로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즉, 노무현 임기 동안 도처에서 불거진 논쟁과 갈등들이 평범한 일상인들에게 부담스러웠고, 우익 신문들의 색깔 공세가 부분적으로 먹혀든 데다, 정권 핵심부 인사들의 과격하면서 불안정한 언사들이 겹쳐서 급격히 대중적인 신뢰를 상실한 것이다.
한국에서 진보 세력을 자임하는 사람 중에는 물론 노무현을 진보에 포함시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노무현을 "빨갱이"라고 공격한 보수 세력이 한국에는 엄연히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따라서 착각 때문이든 무지 때문이든 노무현을 "너무 진보적"이라고 자리매김하는 시각에서 정치 세계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있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진보가 무엇인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이 글에서 그런 단어들을 어떤 뜻으로 사용할지 등에 관해서는 조금 뒤에서 좀 더 자세하게 따져서 정리할 필요가 있지만, 현 단계에서 간략하게 말하더라도 노무현이 드러내는 성향 중에서 사회주의와 연결을 지을 만한 요소란 사실 박정희나 이명박의 가치관과 발상 가운데 사회주의로 연결시킬 수 있는 요소보다도 특별히 많지는 않다. 즉, 사회주의 또는 "빨갱이"와 관련해서 노무현을 너무 진보적이라고 판정하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착각이거나, 아니면 실상과는 무관한 전술적 수사 내지 색칠에 불과하다.
노무현에게 "친북좌파"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담론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사람들은 한국의 전형적인 기득권층이고 보수 또는 극우 정치 세력에 해당한다. 지금 이 연재는 그런 사람들을 주제로 삼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읽기를 예상하거나 기대하지도 않는다. 내가 논의하고 싶은 주제는 그와 같은 담론 투쟁에서 보수 세력의 의도가 왜 어떻게 통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내가 기대하는 독자는 이 땅의 골수 우익이나 골수 좌익을 제외하고, 나름대로 이치와 양식에 입각해서 선택하고 판단할 능력을 가진 시민 개개인이다. 노무현에게서 2002년에 희망을 봤던 사람들이 그의 집권기 동안 설사 실망을 했더라도, 왜 그 대신에 더욱 진보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권영길이나 문국현을 지지하지 않고, 이명박 또는 이회창을 지지하는 쪽으로 대거 이동했을까?
다시 말해 노무현을 "너무 진보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관점이 어떻게 적어도 300만 내지 400만 명의 유권자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한국 사회 부동층의 우경화가 왜 이렇게 급속하게 일어났을까?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진보"에 관하여 몇 가지 사항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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