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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전두환의 마지막'에서 배워라"

[홍성태의 '세상 읽기'] '연쇄 살인 홍보 지침'과 시민의 자유

2009년 1월 20일의 '용산 참사'는 이승만에서 노태우까지 44년에 걸쳐 전개된 기나긴 독재시대에도 일어난 적이 없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철거를 당한 시민들은 갑자기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저항하다가 '용역'이라는 이름의 폭력 집단의 폭력을 피해 농성을 벌이게 되었다. 그런데 폭력 집단을 막고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들은 오히려 용역이라는 폭력 집단과 합심해서 시민들을 공격했고, 급기야 어쩐 연유인지 인화물이 잔뜩 쌓인 곳으로 대테러 특공대를 서둘러 투입했다가 엄청난 참변을 빚고 말았다.

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는 실체적 진실은 고사하고 그야말로 참변을 당한 시민들을 가해자요 테러범으로 낙인찍는 것이었다. 검찰이 무능해서인지 과욕해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억울한 죽음을 당한 시민들의 명예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위해서도 반드시 특검이 구성되어야 한다. 나아가 특검의 상설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은 특검의 상설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너무나 강력히 입증했다. 우리의 정병두 검사는 결코 '포청천'이 아니었으며, 우리의 검찰은 결코 '포청천'의 형부가 아니었다. 이로써 재벌과 권력에게 봉사하는 검찰이라는 인식이 더욱 넓고 깊게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경악하게 하는 사건은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되고 며칠 뒤에 일어났다. 민주당의 김유정 의원이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연쇄 살인범 검거를 활용해서 경찰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라"는 내용의 문서를 경찰에 보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힌 것이다. 청와대는 처음에 이 사실을 부인했으나 다음 날 이 사실을 시인했다.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모자라서 국민에게 거짓말까지 했던 것이다. 청와대는 한 행정관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잘못이어서 그냥 '구두 경고'만 했다고 밝혔다. 국민에 대한 거짓말로는 모자라서 국민을 대놓고 희롱한 셈이다. 이런 중대한 잘못에 대해 그저 '구두 경고'라니, 말이 되는가?

여기서도 실체적 진실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일개 행정관이 개인적으로 이처럼 중대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믿겠는가? 청와대가 정말 무소불위의 기관이고, 거기서 일하는 자들은 모두 안하무인의 뱃심을 갖고 있는가? 많은 국민들이 '용산 참사'보다 더 끔찍하게 느낄 수 있는 '연쇄 살인'을 이용해서 정권의 잘못이 큰 '용산 참사'를 국민들의 관심에서 돌리도록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면수심의 정략이 아닌가? 이런 잘못을 저질러 놓고는 진솔한 성찰과 사과는커녕 특검에 대한 당연한 요구를 오히려 정략이라고 매도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참으로 후안무치한 것이 아닌가?

▲ 이명박 대통령은 용산 참사를 놓고 사과 한마디 없었다. 최근의 '연쇄 살인 보도 지침'은 전두환의 '보도 지침'을 떠올리게 한다. ⓒ프레시안
'용산 참사'가 '박종철 고문 살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면, '연쇄 살인 보도 지침'은 전두환의 '보도 지침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명박 세력은 진실이 아니라 언론에 민감하다. 그들은 언론을 장악해서 잘 활용하면 진실을 감출 수 있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네이버는 평정, 다음은 폭탄'이라는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의 발언, '사이버 모욕죄' 신설 시도, 포털을 옥죄기 위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통망법)' 개악 시도, 휴대폰 도청을 합법화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악 시도, KBS의 장악과 방송 개악, MBC에 대한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노골적 협박, 김문수 지사에 대한 의견을 억압해서 '진실 유포죄'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 방통심의위, 경제에 대한 의견을 밝힌 '미네르바'의 구속,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방송, 그리고 '연쇄 살인 보도 지침' 등 그 사례는 끝이 없다.

'매체결정론'에 대한 몰이해가 극단화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이런 식의 잘못된 언론관은 바로 시민의 자유를 크게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선진국'은 무엇보다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를 기초로 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이에 관한 세 권의 책을 읽고 깊이 반성할 것을 권한다. 후진기어를 넣고 선진화를 외치는 그들에게 '선진국'은 '녹색'과 마찬가지로 그저 거짓의 수사에 불과할 것으로 보이지만.

첫 번째 책은 1644년에 출판된 존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박상익 옮김, 소나무 펴냄)이다. '언론 자유의 경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책은 현대 영국과 미국의 초석을 다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밀턴은 권력의 검열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를 옹호했다.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시원하게 뚫어주는 구절이 너무나 많은 책이다. 몇 구절을 예로 제시한다. 이 위태롭고 부박한 시대에 널리 읽고 공부해야 할 귀중한 책이다.

"불평이 자유롭게 제기되고 깊이 숙고되어 신속히 개혁될 때 비로소 현명한 사람들이 추구하던 시민적 자유가 최대한으로 달성됩니다." (22쪽)

"사람을 죽이는 자는 신의 형상인 이성적 창조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을 파괴하는 자는 이성 그 자체를 죽이는 것이며,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신의 형상을 죽이는 것입니다." (28쪽)

"진리와 이해는 허가와 규제에 의해 독점되거나 거래되는 그런 상품이 아닙니다." (77쪽)

"죽은 언론자유의 나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주십시오." (106)

<아레오파기티카>를 이어받아 현대 사회의 기초로서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를 더욱 넓고 굳게 제시한 사람은 역시 같은 영국의 후학인 존 스튜어트 밀이 1859년에 출판한 <자유론>(김형철 옮김, 서광사 펴냄)이다. 시대의 한계를 반영해서 식민지를 정당화하는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자유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데서 이 논문은 여전히 커다란 의의를 지니고 있다. 몇 구절을 역시 예로 제시한다.

"비록 한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가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전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도 부당하다. (…) 의견의 발표를 침묵케 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해악의 특수성은 현세대와 차세대를 포함한 전 인류의 행복을 강탈한다는 사실과,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보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손실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오류를 진리와 교환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만일 그것이 틀린다면, 진리가 오류와 충돌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진리에 대한 더욱 명백한 인식과 더욱 선명한 인상을 상실하게 되는 엄청난 혜택의 손실을 입게 된다." (31)

"개인과 집단의 활동과 권력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그것을 자신의 활동으로 대체하려고 할 때, 정보를 제공하고 충고하고 또 때로는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개인들에게 억압적으로 일을 시키고 그들을 구석으로 제쳐놓고 그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일을 할 때, 잘못이 일어나는 것이다." (150)

자유를 내세워서 자유를 억압하는 한국의 가짜 자유주의자들은 그야말로 '자유의 적'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무식한 정치적 주장을 하기에 앞서서 <자유론>과 같은 책을 읽고 '개화'부터 되어야 할 것이다. <자유론>이 출판되고 50여 년 뒤에 다시 영국에서 케임브리지대 사학과 교수였던 존 베리가 <사상의 자유의 역사>(송병우 옮김, 박영사 펴냄)를 출판했다. 이 책은 특히 기독교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개독'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흔히 말하기를 생각은 자유라고 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든지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숨기기만 하면, 아무도 막을 길이 없다. (…) 그러나 이런 개인적 사고의 자유는 누구나가 응당 가지고 있는 바이지만 거의 무가치하다. 그 사상을 남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사상가 자신이 불만스럽고 차라리 고통스러운 일이며, 분명히 그의 동포들에게는 무가치한 일이니 말이다. (…) 자기의 사상을 감추느니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한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의 자유가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것이 되려면 언론의 자유가 거기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7)

"억압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가져오는 법이며, 또 그것은 억압을 하는 편에 이성이 있지 않다는 유력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140)

"권위에 대한 이성의 투쟁은, 오늘날 결정적이고 영구적인 자유의 승리로 끝난 것 같다. (…) 종교의 교리나 정치적·사회적 제도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 되었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이 자유의 승리가 영구적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지도 모른다. (…) 그러나 역사는 이런 전망이 믿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왜냐하면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사상과 토론의 자유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완전히 실현되었었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예기치 않은 세력이 나타나서, 사람의 정신을 구속하고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그 잃은 자유를 도로 찾기 위한 고된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가?" (202~203)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우화가 잘 알려주듯이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진실은 주머니 속의 송곳과 같다.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진실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유일하게 올바른 것이다. 전두환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해서 권력을 내주고 설악산으로 들어가야 했는가? 아니다. 시민을 학살하고 억압하는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을 감추겠다며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를 강력히 억압했기에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이명박 세력은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을 열광적으로 좋아할 만큼 미국을 대단히 좋아한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 꼭 수입해야 하는 것은 결코 수입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이다. 온갖 문제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여전히 나름대로 세계 '자유국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수정헌법 제1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을 마치 '천국'처럼 선전하는 이 땅의 '개독'들도 이것을 읽고 깊이 회개해야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수정 제1조 (종교,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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