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원인은 금융에서 실물경제로 번졌던 불이 다시 금융부문으로 옮아붙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바꿔 말하면 실물부문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금융부문 불안감이 잦아들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기술적으로는 외국인의 자본회수 강도가 세지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코스피, 외국인 선·현물 무차별 공세에 48P 급락
17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8.28포인트(4.11%) 폭락한 1127.19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하락 폭은 지난 달 15일 71.34포인트(6.03%) 내린 이후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컸다.
이날 코스피지수를 끌어내린 주인공은 외국인과 기관이었다. 외국인은 1775억 원, 기관은 3358억 원 순매도를 기록하며 4814억 원 순매수로 맞선 개인을 주저앉혔다.
특히 외국인의 매도공세는 지난 10일 이후 6거래일 연속 이어지고 있어 대대적인 자본회수 움직임마저 보인다. 지난 6거래일간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는 8359억 원에 달한다.
외국인은 선물시장에서도 매도공세를 펼쳤다. 이날 외국인은 코스피200 지수선물 시장에서 마감 기준으로 5497계약 순매도를 기록하는 등 공격적인 매도포지션으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지수선물은 전날보다 6.35포인트(4.15%) 하락하며 20일 이동평균선(이평선)과 60일 이평선을 단숨에 내준 끝에 146.50으로 장을 마쳤다. 지수선물 역시 지난 달 15일(6.46%) 이후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선물시장에서 외국인의 매도공세가 장중 내내 이어지자 베이시스(코스피200 현물지수와 코스피200 선물지수의 차이)는 백워데이션(현물 가격이 선물 가격보다 비싸지는 현상)을 넘나든 끝에 -0.10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싼 선물을 사고 비싼 현물을 파는 프로그램 차익거래를 중심으로 대규모 매도물량이 현물시장(코스피시장)에 쏟아졌다. 이날 프로그램은 차익 1662억 원, 비차익 899억 원 등 총 2562억 원 매도우위를 기록했다. 코스피지수가 외국인의 선·현물을 가리지 않은 무차별 매도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셈이다.
대형주 급락…"120일선 또 못 넘나"
특히 대형주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1만3500원(2.68%) 하락하며 49만500원을 기록, 지난 4일 50만 원선을 돌파한 후 10거래일 만에 다시 40만 원선으로 내려앉았다. 현대중공업(-6.19%), 포스코(-3.05%), KB금융(-4.82%), 현대차(-2.88%) 등 대형주가 모조리 죽을 쒔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과 프로그램의 편입비중이 높은 대형주가 일제히 하락해 지수가 약세를 면치 못했다"며 "삼성전자 하락이 지수 3.9포인트 하락 요인이 됐고 현대중공업과 포스코 등의 하락도 지수 2포인트씩을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대형주 부진의 근본 요인은 불안한 거시경제 변수다. 지난해 미국발 변수가 주요 악재였다면 이번에는 유럽이 뇌관이다.
당장 동유럽이 심각한 금융위기에 빠져들 것이라는 소식이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국가부도위기설에 빠졌고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등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비단 동유럽만이 아니다. 금융위기 여파를 가장 극심하게 겪고 있는 영국은 은행 공적자금 투입설이 공론화하는 가운데 올해 경제성장률이 -6%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영국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서유럽 국가가 동유럽 국가에 쥐어준 부채가 부실자산화될 우려를 안고 있어 위기가 전 유럽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김 팀장은 "유럽에서 최근 실물 위기가 금융위기로 번지는 모습이 뚜렷해지고 있다. 투자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실물-금융으로의 위기 확산'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라며 "이런 우려로 코스피가 결국 지난 상승장에서도 120일 이평선을 넘지 못했다. 경기가 아직 바닥을 찾지 못했다고 투자자들이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 통상 코스피 120일선은 '경기선'으로 불린다. 주가가 120일 선을 가로지르면 경기국면에 전환이 올 때가 임박했다고 판단한다.
김 팀장은 주요 언론이 이날 금융시장 불안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제기한 북핵문제에 대해 "재료가 오랜 기간 노출되면서 학습효과가 분명 있다. 과거 경험으로 놓고 보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최근 시장 심리가 극도로 취약해진 상태에서 북핵 문제가 겹쳤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7일 외국인의 대규모 자본 회수로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은 다시 1500선에 접근했다.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환율 변화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 |
환율 다시 1500원선 코앞…"조만간 정부 개입 있을 것"
외국인이 대규모로 자본을 회수해가면서 원-달러 환율도 크게 요동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8.00원 오른 1455.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 한 때 1460원선까지 올랐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외국인의 자본회수가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채권시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달러 고갈을 촉발했다. 이미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지속된 달러 순유출 흐름을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더 가속화한 것이다.
권우현 우리은행 외환트레이딩부 과장은 "지난해부터 내내 지속된 외국인에 의한 달러 순유출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GM파산과 유럽 금융시장 불안 등 거시변수에 더해 국내적으로 금리 매력도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국인의 주식매도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차트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400원선이 결국 깨졌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권 과장은 "지난 주말부터 불안하던 모습을 보이던 1400선이 끝내 깨져 업체들의 예상 레벨(외환 매매 기준)이 더 높아지는 추세"라며 "앞으로도 매도스탠스가 물러서고 관망하는 모습이 길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수급이 실종돼 지금의 환시장 불안이 길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정부당국의 시장개입이 다시 강화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윤증현 새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런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이날도 시장참가자들은 정부당국이 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추정했다.
권 과장은 "외환시장 불안이 길어진다면 새 경제팀 입장에서 조정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최소한 시장 움직임이 상승으로 이어지더라도 속도는 조절할 필요가 있다. 지금 추세라면 주중 1500선 돌파도 불가능하지 않다. 정부당국 움직임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