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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학자는 경멸 당해 마땅해!"

[화제의 책]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나는 단련되지 않고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떠돌이와 은둔자의 미덕을 상찬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용감하게 적에게 맞서지 않기 때문이다." (존 밀턴)

지난 1년간 아시아 여러 나라를 방문해 과학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일본, 타이완, 베트남 등을 방문할 때마다 놀랐던 일이 있다. 각 나라마다 시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과학자'가 한둘은 꼭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명성이 높다는 얘기가 아니다. 택시 기사에게 이름을 언급하면 "요즘 몸이 편찮으시다는데…", 이런 대답이 돌아올 정도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이런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왜 한국에는 시민이 '존경하는 과학자'가 없을까? 시민이 존중하지 않는 과학자를 권력이 존중할 리 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다음 '기대와는 달리'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초라한 과학자의 모습은 그 단적인 증거다. 오죽하면 운하 사업과 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통령이 과학자보다 '목사님'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까.

이런 참에 미국의 과학자 프리먼 다이슨(1923~)이 쓴 <몽상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읽었다. 다이슨은 현대 물리학에 큰 업적을 남긴 세계적 석학이다. (공동 수상은 세 사람 이하로 제한한다는 규정이 없었다면 1965년 리처드 파인만 등이 노벨상을 받을 때 그도 수상했을 것이다.)

다이슨이 1979년 쉰여섯 살일 때 펴낸 이 책은 '존경을 받을 만한 과학자'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는 과학자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과학자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책은 바로 그 고민의 궤적을 기록한 것이다.

'야만'에 굴복한 과학자

▲ <몽상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다이슨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가장 야만의 시대였던 20세기를 과학자로 살아왔다. 이 시대가 그를 가만히 둘 리 없었다.

다이슨은 과학자로서 첫 경력을 군대에서 쌓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그는 영국 공군에서 폭격기가 성공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다. "처칠을 위해 싸우기보다는 간디를 위해 죽고" 싶었던 이 "확신에 찬 평화주의자"는 전쟁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지키지 못했다.

그 뒤로도 다이슨의 입장은 계속 후퇴한다. 심지어 그는 1960년에 <포린어페어스>에 "영구적인 핵 실험 금지는 환상"이라는 취지의 글을 기고했다. 그의 논리는 이랬다. "어떤 국가든 적국의 핵무기 개발 중지를 보장받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중지한다면, 그 나라는 1939년의 폴란드처럼 말을 타고 탱크에 맞서 싸우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다이슨은 이 책에서 뒤늦게 이런 글을 기고한 이유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는 자신이 주도했던 핵 추진 로켓을 개발하는 '오리온 계획'을 되살리고 싶었다. 더구나 이런 글은 핵무기 개발에 봉사하는 과학자 공동체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싶었다. 그러나 그는 뒤늦게 자신의 이런 입장이 왜 틀렸는지 조목조목 비판한다.

다이슨의 논리가 틀렸다는 사실은 금방 밝혀졌다. 서로를 파멸시킬 만한 핵을 양측이 가졌을 때, 이론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결론은 양측의 공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죄수의 딜레마). 더구나 한 쪽이 핵무기 개발을 중지하면, 다른 쪽도 최소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의지가 약해진다는 사실도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

또 다른 결정타가 남아 있다. 다이슨 스스로 간파했듯이 아군이 적군과 달리 좋은 목적으로 무기를 사용하리라 판단할 근거도 전혀 없다. 그는 고백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는 미국의 무기가 언제나 현명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실제로 그의 주장이 관철돼 미국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했다면, 베트남의 비극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야만'과 싸우는 과학자

이처럼 다이슨은 시대의 격랑 속에서 흔들리는 지극히 평범한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민은 반성을 불렀다. 그는 반성의 결과를 실천에 옮김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이 위대한 과학자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실제로 다이슨은 20세기의 가장 아찔했던 순간마다 파국을 막고자 최선을 다했다. 1963년 지상 핵 실험을 금지하는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이른바 '평화적' 핵 실험을 허용할지 여부를 놓고 미소 간에 힘겨루기가 한창이었다.

미국이 평화적 핵 실험을 허용하자는 입장을 계속 고수할 경우 이 조약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다이슨은 "우리가 양보해야 한다"는 조언을 대통령 케네디에게 전했다. (다이슨의 조언 탓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결국 미국이 소련에 양보함으로써 이 조약은 체결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자 정부 관료의 상당수는 핵 공격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심지어 한 관료는 다이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따금씩 핵 공격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이런 관료가 주도권을 쥐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현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다이슨의 고민도 계속된다. "인간이 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생물학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보면서 그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를 계속 괴롭혔던 핵무기는 생물학의 발전이 초래할 최악의 결과를 염두에 두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 위기의식을 이렇게 고백한다.

"수소 폭탄은 쉽게 문명을 파괴할 수 있지만 인류 자체를 멸종시키기는 아주 어렵다. 사람의 유전자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변화시킬 때 생기는 문제에 비하면 수소 폭탄은 단순한 문제일 뿐이다. 핵 전쟁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공포가 아니다. 인간의 건전한 정신과 생존에 대한 위협은 장기적으로 물리학이 아니라 생물학에서 온다."

야수를 누가 길들일 것인가?

이런 위기의 시대에 다이슨이 내놓은 해법은 무엇일까? 그는 과학자의 각성에서 해법을 찾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과학자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이 같은 존재다. 실제로 "오토가 몇 년 동안 가솔린 엔진을 가지고 논 결과, 우리는 자동차를 몰고 있다. 한과 슈트라스만이 핵화학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았더니만, 쾅! 히로시마에서 수만 명이 죽었다."

다이슨은 과학자의 각성 대신 시민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책을 쓴 이유도 시민이 과학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는 데 자기의 경험이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성장할 과학과 기술을 파괴적인 방향이 아니라 건설적인 방향으로 끌고 갈 이들은 과학자가 아니라 일반인들이다.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이런 일을 성취하려면, 길들여야 할 야수의 본성을 이해해야 한다."

다이슨의 고민의 궤적을 좇다보면 왜 한국에서 존경 받는 과학자가 나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만하다. 사회 속에서 과학과 기술이 차지하는 자리를 고민하지 않는 과학자, 과학과 기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시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과학자, 돈 몇 푼 버는 데 과학과 기술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 과학자….

다이슨은 분명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과학자는 경멸 당해 마땅해!"

시인 대신 희망을 찾아 비틀거리며 걷다

<몽상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는 평소 과학 책을 즐겨 읽었던 사람이나,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나 모두 만족할 만한 읽을거리다. 특히 과학에 별 관심이 없는 이라도 21세기를 전망할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역사책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우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 물리학의 황금기 과학자들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은 필독서다. 특히 다이슨은 바로 옆에서 지켜본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오펜하이머,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은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의 고민을 생생히 증언한다. (덤으로 중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양전닝과 리정다오가 프린스턴고등학문연구소에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의 뒷얘기도 덤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은 이 연구소에 교수로 임용되자마자 노벨상을 수상했다.)

▲ 프랭크 톰슨. 그가 전사한 후 지인들이 유고 시집을 펴냈다. ⓒ프레시안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20세기의 영웅 프랭크 톰슨(1920~1944)의 얘기도 인상적이다. 톰슨은 독일이 점령하던 동유럽에서 불가리아 지하 저항 세력과 함께 파시즘에 저항해 싸우다 포로로 잡혀 처형당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 시인으로 꼽혔던 그는, 비록 시는 많이 남기지 못했으나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시처럼 죽었다.

눈 밝은 독자는 알지 모르겠다. 톰슨은 바로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이자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나종일 외 옮김, 창비 펴냄)을 쓴 에드워드 파머 톰슨의 형이다. 톰슨과 같은 학교에서 청소년기를 같이 보냈던 다이슨은 그의 얘기를 기록한 후, 불가리아 리타코보에 있는 그의 묘비의 시를 소개한다.

"젊어서 죽지만 / 나는 만족하리라, / 사람들이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면. / '그는 정의를 위해, / 정의와 자유를 위해 죽었다."

다이슨은 비록 톰슨처럼 살지는 못했지만, 그를 부러워했고 또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세상과 맞서며 '극단의 시대' 20세기를 버텼다. 이 책은 톰슨 대신 희망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었던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우리는 21세기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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