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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경제정책과 지역주의 기조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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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경제정책과 지역주의 기조의 실종

[MB정부 1년, 평가와 전망]<6>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추종,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빈곤

<프레시안>과 <진보와개혁을위한의제27>('의제27', 공동대표: 정해구, 홍종학, 김호기)은 오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1년(2월25일)에 즈음하여 연속기획 '이명박 정부의 1년 평가와 2년 전망'을 마련했습니다. 12회에 걸쳐 이명박 정부의 국정을 다각도로 평가하고 전망하려는 이 기획의 여섯 번째 글로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

연재순서

1. 기대와 환멸의 이명박 정부 1년 (바로가기)

2. 실용적 리더십의 그늘 (바로가기)

3. 섬기는 정부는 어디로 갔는가? (바로가기)

4. 한국경제의 역주행 1년 (바로가기)

5.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혼돈에 휩싸인 노동정책 (바로가기)

6. 대외경제정책과 지역주의 기조의 실종 (2월13일)

7. 거꾸로 가는 사회복지 (2월16일)

8. 환경정책 (2월19일)

9. 교육정책 (2월20일)

10. 언론정책 (2월 23일)

11. 대미/남북관계 (2월24일)

12. 총괄 좌담 (2월25일)


이른바 '역제주의' 혹은 '지역간주의'(inter-regionalism) 시대의 도래가 운위되고 있다. 글로벌 정치경제의 주 행위자로 국가가 아닌 지역행위자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EU와 같은 지역행위자의 확산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비록 그 제도화 정도는 아직 EU에 못 미치지만 북미주, 동남아, 중동, 남아프리카, 중남미 등 전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많은 국가들이 나름의 지역협력체를 발전시켜가고 있다.

NAFTA, ASEAN, 남미공동시장(MerCoSur),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등과 같이 비교적 잘 알려진 지역행위자 외에도 남미국가연합(SACN), 걸프협력회의(GCC), 남아프리카관세동맹(SACU),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 등이 도처에 버티고 있다. 지역주의 혹은 지역경제통합은 이미 세계적 대세인 것이다.

낙후된 동아시아 지역주의

지역간협력체제의 태동 역시 벌써부터 가시화된 상태다. 지역행위자의 형성 및 확산과 마찬가지로 이 움직임의 주도세력 역시 EU다. EU는 자신의 지역주의가 성숙해지면서 타 지역들과의 협력관계 구축을 모색해왔고, 남미나 남아프리카 지역기구 등과의 지역간협력관계는 이미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

동아시아의 ASEAN+3 국가들과의 정례 모임인 ASEM도 10년 넘게 꾸준히 운영해오고 있다. 그 외에도 EU는 ASEAN, GCC, MerCoSur 등과의 지역간 FTA 관계를 주도하고 있다. GCC나 SACU 등 제도화가 상당 수준에 이른 여타 지역협력체들 역시 지역간협력체 구축을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들은 각각 MerCoSur 및 EFTA와 지역간 FTA를 맺고 있다.

동아시아는 유럽 및 북미와 함께 세계경제의 3대축을 구성하는 중요 지역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지역주의 발전 상황은 다른 두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돼 있다. 이 상태라면, 지역간체제가 성숙돼갈수록 유럽과 북미는 각각의 지역행위자인 EU와 NAFTA 등을 앞세워 자신들의 위상에 걸맞은 글로벌 영향력을 증대해가겠지만 동아시아는 그저 주변적 역할에 머물러있을 공산이 크다.

어쩌면 동아시아는 유럽과 북미만이 아니라 지역주의가 발전한 여타 모든 지역들에 비해서도 그 영향력이 미미해질 수 있다. 지역간주의 시대의 패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말레이시아의 전 수상 마하티르 같은 이들은 이러한 문제를 일찍이 간파하여 1990년대 초에는 동남아와 동북아 국가들이 하나의 지역협력체를 형성해 EU와 NAFTA 등에 맞서야할 것을 역설하기도 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지역주의의 중요성 재부각시켜

그러나 당시 한·중·일 등 동북아 국가들은 모두 이 문제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들로 하여금 지역주의 발전 필요성을 절감케 한 것은 1997년의 동아시아 외환위기였다. 그들은 비로소 유사 사태의 재발 방지는 물론 외생적 세계화 압력에 대한 지역차원의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 동아시아 지역협력체의 형성이 긴요하다는데 동남아 국가들과 뜻을 같이하게 되었다. 드디어 한·중·일 세 나라가 자신들의 대외경제정책 기조로 지역주의를 수용했고,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ASEAN+3의 이름으로 모여 지역주의의 발전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역내 국가들 간의 공동의 위기의식은 옅어졌고, 중·일 간의 주도권 다툼은 노골화되었으며, 그 와중에 동아시아 지역주의는 동력을 잃은 채 표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이 정체상황에서 그 발전을 새롭게 자극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미국발 금융위기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가 첫번째 자극이었다면 2008년의 이 미국발 위기는 두번째 자극으로 기록될 듯싶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공동의 단기 및 중장기 대응책 마련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프레시안

무엇보다 역내 국가들 간의 금융통화협력이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달러에 대한 취약성 극복을 통해 외부 충격으로부터 지역경제를 지키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역내 국가들 간에 공유됐기 때문이다.

우선 외환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유동성 협력으로 800억 달러 규모의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 다자화 공동기금을 2009년 상반기까지 조성키로 합의하였다. 일부에서는 CMI 형식으로는 현재와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논의를 재개하자는 주장이 분출하고 있다.

유동성 협력을 넘어 좀 더 장기적으로는 외환보유의 필요성 자체를 줄이기 위한 동아시아 단일통화의 도입이 모색돼야 한다는 의견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개진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더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제안은 통화통합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므로 그 중간단계로 환율공조를 위해 아시아공동통화단위(ACU) 같은 공동통화바스켓을 형성하자는 안이다.

통상 영역에서의 협력강화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역내의 많은 분석가들은 금번의 위기 상황을 거치며 미국의 소비경제는 구조적으로 축소될 것이므로 동아시아는 그동안의 대미 수출 의존 경향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주식가격 폭락 등으로 인한 미국의 소비수요 감소는 장기간 지속될 것이며, 설령 어느 시점에 이 위기가 극복된다 할지라도 (위기 극복 과정에서 쌍둥이적자 감소 등을 목표로 하는 미국경제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에) 향후 미국의 민간 소비가 과거와 같이 거대한 규모로 이루어지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지 않아도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역외시장 중심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차제에 과감히 폐기 혹은 수정돼야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들은 미국을 대체할 안정적인 대안 수출 공간은 바로 역내시장 동아시아에서 확보해야한다는 처방을 내린다. 즉 동아시아 내수시장의 확대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통상협력이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EAFTA) 등의 건설을 통해 안정적인 제도틀 내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더 효과적일 것임은 물론이다.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역할

역내 협력의 강화가 전망되는 또 다른 영역은 경제통합의 제도 수렴 효과와 관련된 부분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역내국가들 간의 금융통화 및 통상협력관계가 강화될 경우 그것은 곧 지역경제통합의 심화를 의미한다. 경제통합의 심화 현상이 지속된다면 거기서는 이제 그에 따른 제도수렴 효과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한다.

말하자면 동아시아가 어떠한 제도, 정책, 규범 등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 유형으로 수렴 발전해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역간주의 시대의 도래가 요구하는 동아시아의 지역행위자로서의 성격 혹은 요건의 확보 노력과도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한국의 역내 위상을 살펴보자. ASEAN+3을 놓고 볼 때, 한국은 동아시아 3대 경제대국 중 하나이다. 게다가 동북아에서는 중·일간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에서는 동북아와 동남아 간의 교량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최고의 적임국가로 평가받는 위치에 있다.

물론 분단국가라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의 객관적 위상은 지역협력체의 발전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란 의미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협력체 형성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러한 위상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 두 번째 자극이 온 이 시점에서도 한국은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영향력이 언제나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건대, 최소한 다음 세가지 조건은 갖추고 있어야 한국의 이 잠재적 영향력은 현실화될 수 있다.

첫째, (너무나도 당연한 조건이지만)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지역협력체 발전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추진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지역간주의 시대의 도래를 예비할 정도의 시대감각도 요청된다. 이 점에 관한 한 한국이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때는 김대중정부 시절이었다. 당시는 한국이 ASEAN+3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협력체 형성의 주도국가였다. 그 뒤를 이은 노무현정부는 '동북아시대'라는 지역주의 구상을 내놓았지만 내용도 모호했고 실천의지도 박약하여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는 없었다.

둘째, 한국에 맞는 자본주의 그리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 맞는 시장경제 유형을 분별 또는 창안해내고 그 유형의 확립과 안정화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지역간주의가 요구하는 동아시아의 지역행위자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건에서 본다면 한국은 여전히 크게 부족한 상태에 있다.

물론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에는 '동반성장' 등을 지향하며 한국형 조정시장경제의 발전을 시도하기도 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이 10년 동안에도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침투는 점증적으로 허용되었고, 따라서 그러한 시도들이 성공할 여지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의 침투 허용과 그에 대한 견제라는 양면이 존재하는 가운데 전자가 주조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셋째, 북한을 동아시아 지역협력체의 구성원으로 끌어안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북한이 지금의 상태로 고립돼 있는 한 동아시아의 진정한 통합과 지역협력체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언제든 동북아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분단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김대중과 노무현 양 정부가 햇볕정책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북한과의 관계를 크게 개선시킨 것은 높게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 빈곤한 지역주의의 상상력

불행한 일이지만, 이상의 것들이 동아시아 지역협력체의 발전에 한국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이라고 한다면, 현정부하의 한국에는 그러한 영향력 발휘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명박 정부에 와서는 한국에 동아시아 지역주의 정책이 존재하는지 그 자체를 모를 정도이고, 한국형이나 동아시아형 시장경제 체제의 모색 노력은커녕 '역주행 정부'라는 비판을 들어가면서도 오히려 철지난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맹렬히 매달리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공들여 쌓아올린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리며 북한과의 대립과 갈등을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 정부를 봐서는,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협력체 형성을 위한 수행능력이나 추진의지 그리고 심지어는 정책선호조차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 정부가 이 모양이라고 하여 한국의 소중한 잠재력을 이 정부의 임기 동안 그대로 썩혀둘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안 된다면 당분간은 민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위에서 언급한 한국의 잠재력 현실화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의 충족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래서 때가되어 동아시아 지역협력에 적극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그 정부가 한국의 영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마련해놓아야 한다.

사실 찾아보면 그때까지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할 준비 및 연구과제는 참으로 많다. 어찌 보면 일이 많다는 건 감사의 조건이다. 지치지 않는 한국 시민사회의 노력만을 기대할 뿐이다.

* 이 글은 필자가 작성한 소논문의 일부를 본 기획의 취지에 맞게 편집한 것이며 그 전문은 <창작과 비평> 2009년 봄호에 게재될 예정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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