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검찰의 이중잣대, '가해자' 없어도 기소할 수 있다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검찰의 이중잣대, '가해자' 없어도 기소할 수 있다면…

[기자의눈] 2005년 농민 사망 책임자는 왜 처벌 못하나

경찰청장 내정자였던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0일 용산 참사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지난 9일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하루 만의 일이다.

김석기 청장의 사퇴는 용산 참사를 두고 경찰의 책임을 묻는 여론을 전환해 보려는 정부의 카드로 보인다. 그러나 김 청장의 사퇴는 사실상 검찰의 면죄부 아래 이뤄졌다.

지난 9일 검찰은 농성자 20명을 기소했다. 농성자에게 적용한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의 공동 정범이었다. 즉, 진압 과정에서 경찰관이 숨지는 화재가 발생한 책임을 농성자에게 공동으로 물은 것이다.

검찰은 "누군가가 던진 화염병 때문에 불이 났다"며 "직접 행위자를 밝히진 못했지만 망루에 남아있던 농성자들이 화염병 투척을 모의한 공범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반면 검찰은 경찰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경찰특공대 진압 과정에서 화재 발생한 것만으로는 인과 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작전이 적법한 과정에 따라 결정되고 승인됐다는 이유였다. 참사가 나긴 했지만, 경찰의 지배 영역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지난 9일 검찰은 농성자 20명을 기소했다. 농성자에게 적용한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의 공동 정범이었다. ⓒ연합뉴스
결국 검찰은 "화염병 때문에 화재가 났다"면서도 누가, 어떻게, 왜 했는지 모르는 채 함께 있던 농성자들을 무더기로 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더군다나 똑같은 불로 5명의 농성자와 1명의 경찰관이 숨졌는데도, 경찰관은 아무 책임이 없다며, 농성자에게만 경찰관을 숨지게 한 죄를 물었다.

그럼, 이 사건을 보자. 2005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집회 도중 고 전용철 씨와 홍덕표 씨가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숨졌다. 전용철 씨는 경찰 방패에 떠밀려 넘어지면서 머리 뒷부분에 충격을 받고 머리가 손상된 상태에서 경찰봉 등으로 폭행당했고, 홍덕표 씨는 달아나던 중 방패로 얼굴과 뒷목을 가격당해 입은 손상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두 농민의 죽음은 경찰의 과잉 진압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까지 이어졌다. 진상조사를 벌였던 국가인권위원회는 "두 농민의 사망이 경찰 기동대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나 행위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사건 발생 약 3년이 지난 지난해 10월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고 증거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기소 중지했다. 검찰은 "진압 현장을 담은 영상 자료 등을 확인했으나 두 농민을 가격한 전경이 누구인지 가려내지 못했다"며 "기소중지 처분은 가해자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내리는 것이지만, 결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수사가 재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도 했다.

궁금하다.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과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왜 검찰의 결론은 180도 다를까?


▲ 2005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집회 도중 고 전용철 씨와 홍덕표 씨가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숨졌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기소를 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결론은 다르지만, 태도는 같았다

사실 검찰의 태도에 같은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경찰이 제시한 자료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검찰의 수사다.

전용철·홍덕표 농민이 숨진 당시 경찰은 전경 배치 상황을 토대로 이들이 숨진 장소에 투입된 진압 부대를 찾았지만, 부대원들이 폭행 여부를 부인한다는 답변만 받은 채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부근에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데다 진압 과정을 채증한 사진도 없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이런 경찰의 주장과 똑같이 "증거가 없어 수사를 못한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기소를 중지한 지 약 한 달 만에 서울중앙지법은 전용철 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억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경찰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의 영향력 행사로 전 씨가 사망에 이른 점이 인정된다"며 "국가에 70%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검찰이 "가해자는 모른다"며 수사를 종결한 사건에서 법원에서는 경찰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용산 참사에서도 검찰의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9일 검찰은 "농성으로 인해 시민의 피해가 심각했다는 경찰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의 관계자는 "(참사가 난) 남일당 건물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라"며 "검찰은 주민을 하나도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지어 처음 119에 화재 신고한 주민조차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행위 이상의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

검찰의 공소는 명확한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용산 참사를 수사하는 검찰은 "화염병 때문에 불이 났다"는 경찰의 주장 외에 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한 채, 농성자들만 '공범'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 스스로도 발표에 앞서 "사건이 어두운 망루 안에서 발생했고,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희생됐고, 농성자들이 쓰고 있던 복면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인정했다.

진상조사단의 권영국 변호사는 "농성자들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행위 이상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단 단장인 장주영 변호사는 "사람을 죽게 하는 사건을 모의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테러집단이 아닌 이상 가능한 일인가"라며 "위험 상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공동정범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참사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은 검찰의 주된 관심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검찰은 앞으로 전국철거민연합회의 조직적 개입과 금전 거래를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합리적 문제 제기나 새로운 단서가 발견될 경우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했지만,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것 아닐까.

한편, 전용철·홍덕표 농민 사망의 책임자에 대한 징계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장이었던 이종우 경무관은 잠시 직위해제 됐다가 이듬해인 2006년 강원지방경찰청 차장으로 임명됐으며, 현재 경기지방경찰청 1부장을 맡고 있다. 김동민 전 서울지방경찰청 경비부장 역시 지난해 3월 충남지방경찰청장에 임명됐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