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사고'가 날지도 모르겠다. 정동영의 복귀로 민주당이 때 아닌 계파 갈등에 휩싸일 수도 있고, 이재오의 복귀로 한나라당이 때 이르게 친이-친박간 전면전을 벌이게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이들의 복귀를 마냥 미룰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정치복귀를 원천봉쇄할 요량이라면 몰라도.
▲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
정치는 상상력의 예술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로 풀 수밖에 없는 사람은 좋은 법률가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뛰어난 정치가가 되기는 어렵다. 하나 더하기 하나를 때로는 셋이나 다섯으로 풀어내고 만들어 내는 사람이 정치가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요, 스케일이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정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는 밑지지만 뒤로는 남기는 정치도 있다. 국지적 전투에서는 매번 밀리면서도 전쟁에서는 이길 수도 있는 것이 정치라는 뜻이다. 상상력과 스케일이 이런 정치를 가능케 한다.
대통령 후보에 출마해 본 사람이면 국가경영의 스케일이 어떤 것인지, 정치의 처음과 끝은 어디인지 어렴풋하게라도 짐작하게 된다. 당 지도부를 해 본 사람이면 정당과 국민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당 운영의 시작이 어디고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말하자면 정치의 문리에 눈을 뜨게 된다는 말이다. 정치도 이쯤 돼야 밀고 당기면서 감칠맛도 내고 통 크게 퉁 치거나 무모한듯한 올인도 가능해진다. 이재오, 정동영, 손학규, 강재섭 등의 정치복귀를 환영하는 이유다.
이들의 복귀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민주당의 정세균 지도부가 그렇다는 얘기도 있고, 한나라당의 친박계 의원들은 이재오의 복귀를 아예 "자신들에 대한 전쟁선언"으로 간주하겠다고 한다.
나는 정세균 지도부가 자신들의 입지 때문에 정동영, 손학규의 정치복귀를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민주당이 처한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연말 '입법전쟁'에서 판정승한데 힘입어 미미하지만 의미 있는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10%대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이다. 지지율 20~30%대를 위해서라면 '독배'라도 마셔야 될 상황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집단과 세력의 승리를 자신들의 승리보다 훨씬 절박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같은 논법 다른 이유로 나는 이재오 강재섭의 정치복귀가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간 전면전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로 인해 동반 추락하긴 했으나 아직도 한나라당은 민주당을 여유 있게 앞서고 있다. 급한 게 별로 없다는 뜻이 되겠다. 더구나 '이변'만 없다면 박근혜 의원이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믿는 친박계 의원들이 40~60명 가까이 포진해 있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승리보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의 승리를 더 절박하게 느끼게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 이재오 전 의원 ⓒ프레시안 |
친이계는 친이계대로 '살아있는 권력'의 담지세력으로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 재창출할 능력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신들의 승리보다 친박계가 주도할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의 승리를 앞세울 가능성 또한 현재로서는 그리 크지 않다. 친이-친박 갈등이 계속 격화될 수밖에 없고 내년으로 예정돼 있는 당권경쟁과 지자체 공천 등 사건적 계기들을 매개로 확대 증폭될 것이라고 관측하는 이유다.
있는 걸 없다 하면서 정국을 관리하고 운영해 가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녹록치 않다. 그보다는 계파갈등이 있음을 인정하고 권력투쟁을 제대로 하면서 큰 틀의 국정운영에 협력해 가는 '일면 투쟁, 일면 협력'의 정치가 차라리 담백하지 않을까 싶다. 잘 갈 것처럼 하다가 느닷없이 깨지는 것 보다는 곧 깨질 듯 하면서도 끝내 마무리까지 같이 하는 편이 서로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좋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프로페셔널'들이 만들어갈 스케일 크고 통쾌한 상상력의 정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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