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추모 기도회] "썩은 지도자와 함께 기독교도 함께 썩고 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추모 기도회] "썩은 지도자와 함께 기독교도 함께 썩고 있다"

[현장] '용산 참사' 추모 기도회…"구원 어디에 있나"

분위기는 침통하고 엄숙했다. 목회자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어지는 기도와 발언 내내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기척이 간간히 들렸다.

지난 5일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 강당에서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목요 기도회'가 열렸다. 용산 철거민 참사 기독교 대책회의가 주최한 이날 기도회에는 약 250명이 참석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촉구했다.

▲ 지난 5일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 강당에서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목요 기도회'가 열렸다. ⓒ프레시안
"어찌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닥쳤습니까"

"어찌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닥쳤습니까. 국민이라면 동등하게 누려야 할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고 살육당했습니다. 가진 자들이 좀 더 갖기 위해 벌이는 뉴타운 건설을 위해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철거민이 됐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을 정녕 몰랐습니까. 우리에게 예언자적 영성이 마비돼 버린 사실이 두렵습니다. 맘몬을 하나님으로 숭배해온 교회가 이미 짐승이 되어버린 자를 장로로 세울 줄은, 그들을 지배하지 못했던 영적인 무능함이 두렵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대표기도를 맡은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상임의장 서일웅 목사는 "고통스럽고 원통하다"며 기도를 이어갔다. 서 목사는 "주님께서 피흘리심으로 이 땅에 교회를 세운 것은 작은 자 한 사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위한 것이었다"며 "그런데 교회가 세운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며 세웠던 이명박 정권은 많이 가진 자를 위해 한 마리 어린 양을 삼켜버리는 짐승이 되었다"고 통탄했다.

서 목사는 "아벨의 핏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이 네 동생 아벨이 어디있느냐고 외치는 물음 앞에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떨고 있다"며 "카인의 후예가 된 저희의 구원이 어디에 있나"고 물었다. 그는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주님의 뜻을 좇아 이제라도 다시는 이명박 정권이 살인 정권이 되지 못하도록 교회가 일어나 회개하게 해달라"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철거민들과 함께 빈민 운동을 해온 성남주민교회 이해학 목사는 설교를 통해 "재개발 사업으로 한번 밀려날 때마다 그 사람들을 밀어내고 아파트를 건설한 사람들은 수백 억, 수천 억 원의 이익을 보고 있다"며 "이들을 죽게 한 것은 경찰총수만이 아니라 방관하며 소리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기독교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썩은 지도자와 함께 기독교는 더 썩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들 아무 죄가 없다. 없는 게 죄다"

기독교 신자이자 이날 유가족을 대표해 기도회에 참석한 고 이상림 씨의 부인 전재숙 씨는 "저희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 열심히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마당을 쓸고 탁자를 닦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물건을 사고, 기도를 드렸다"고 말했다.

전 씨는 "그곳에 올라갈 때 아무도 대화해보자고 하지 않았다"며 "밀어붙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는 그 사람들 그냥 보낼 수 없다. 세입자들 아무 죄가 없다. 없는 게 죄다. 꼭 진상 밝혀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기도회 내내 눈물을 멈추지 않는 전 씨의 모습에 참석자들은 함께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 기도회 내내 눈물을 멈추지 않는 고 이상림 씨 부인 전재숙 씨의 모습에 참석자들은 함께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렸다. ⓒ프레시안

참석자들은 이날 기도회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공권력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의 죽음이 초래됐는데 정부는 처음부터 도의적,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민생의 주장을 공안적,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용산 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경악한다"며 "과학적 수사를 벌이기보다는 농성자들에게 전적으로 귀책 사유가 있다는 예단을 가지고 수사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참석자들은 용산 참사를 계기로 1974년 이후 35년 만에 '목요 기도회'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1974년 이 땅에 유신독재가 출범해 군사 독재 체제를 구축하던 당시 민청학련 사건을 비롯해 많은 학생과 종교인 등 양심 세력이 구속됐을 때 우리는 '목요 기도회'로 모여 불의를 기도하고 정의와 인권 회복을 호소했다"며 "35년이 지난 오늘, 용산철거 참사 희생자 6명의 죽음을 목도하며 목요 기도회를 다시 시작한다"고 밝혔다.

경찰 "확성기 꺼라, 십자가 앞세워라"…"처음 보는 코미디"

▲ 이날 기도회에 이어진 행진 참석자들은 경찰의 요구대로 십자가를 행렬 맨앞에 내세우고, 구호를 외치지 않겠다고 한 후에야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십자가를 앞세운 행렬이 경찰에 의해 인도에서 가로막힌 모습. ⓒ프레시안
이날 참석자들은 실내에서 진행한 예배가 끝난 뒤 기독교회관 앞에서 30여 분간 촛불 기도회를 진행했다. 이후 오후 7시부터 청계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촛불 추모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차도 행진을 할 수 없다며 참석자들을 가로 막았고, 인도 행진조차 확성기, 플래카드를 쓰면 안 된다며 가로 막아 항의를 받았다.

경찰의 제지로 10여 분간 실랑이가 벌어졌으며, 결국 참석자들은 경찰의 요구대로 십자가를 행렬 맨앞에 내세우고, 구호를 외치지 않겠다고 한 후에야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경찰이 전두환 정권 때도 보지 못했던 코미디를 하고 있다"는 허탈한 목소리가 행렬 곳곳에서 들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