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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와 MC몽, 그리고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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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와 MC몽, 그리고 용산

[오동진의 영화갤러리]<8>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신문의 사회면과 정치면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문화면을 읽을 기분이 생기지를 않는다. 방송뉴스를 봐도 그렇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용산 참사는 웬말인가. 이게 전쟁터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과속 스캔들>이 600만을 넘겼고 <쌍화점>이 300만을 넘겼다는 '따위'의 얘기는 얼마나 한가해 보이겠는가. <꽃보다 남자>같은 드라마 얘기를 했다가는 뺨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1박2일>에서 강호동의 터뜨리는 특유의 우하하하 하는 웃음은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속 스캔들> 등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람들 모두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울 것이다. 뭔가 뭉클하면서 신나는 얘기를 듣고 싶을 것이다. 무슨 말이 됐든 위안을 받고 싶을 것이다. 잠시나마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영화와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들이 없으면 또 누가 그런 역할을 하겠는가.


화제를 모았던 <1박2일>의 '박찬호 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박찬호와 강호동, 이승기 등이 계룡산의 얼음장 계곡물에 입수하는 모습 같은 게 아니었다. 호빵을 놓고 벌였던 복불복 게임은 더욱더 아니었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박찬호가 카메라맨인 척, 이상야릇한 복면 복장으로 자신의 모교인 공주중학교에 가서 벌였던 해프닝 끝에 나왔다. 아이들에게 이 이상한 아저씨가 사실은 박찬호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그는 공주 중학교 야구부와 나란히 선다. 야구부 감독은 박찬호의 1년 선배다. MC인 강호동이 묻는다. "감독님은 이 사람이 박찬호라는 걸 언제 알았어요?" 감독이 대답했다. "공을 던지는 순간 알았어요."


한때 야구를 같이 했지만 한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이 다녔던 '작은' 중학교의, '작은' 야구부의, '작은' 야구감독이 됐다. 또 한사람은 같은 야구부를 나와 어느덧 세계적 선수로 성장했지만 이제 잠깐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것의 가치를 되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은 매우 다른 길, 남들이 볼 때 충분히 비교될 수 있는 삶을 살아 왔지만 어느 지점에서 그 길이 합해지게 됐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높고 낮음이 없으며 크고 작은 것이 없다.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삶의 진정한 가치란 그 절대적 평등성을 깨닫는 과정에서 획득된다. 박찬호와 야구부 감독을 나란히 잡았던 TV화면의 투 샷이 참 좋아 보였던 건 그때문이다. 후문에 따르면 녹화된 <1박2일>을 나중에 보면서 박찬호가 그렇게 울었다던데 아마도 이 장면에서 제일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은 내가 그랬다.

▲ 1박2일 ⓒ kbs.co.kr

요즘 차에서 즐겨 듣는 CD는 MC몽의 것이다. 예전엔 MC몽을 잘 몰랐다. 그저 TV 버라이어티쇼에서 몸개그를 불사하는 이상한 래퍼 정도로만 알았을 뿐이다.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다. TV에서는 가수들의 '진짜' 노래를 '진짜로' 들려주는 적이 별로 없으니까. 우연히 그의 음악을 들었다. 어린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가사에 슬픔이 담겨있어 깜짝 놀랐다. 자신의 방송생활을 의식한 듯한 노래가사도 있었다. '오늘도 방송을 하면서 꾸역구역 산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 그에게서 진정한 자의식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하면 약간 오버하는 것일까. 하지만 어쩌면 MC몽처럼 지금 우리에게는 과장된 웃음과 의도된 가벼움이 요구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박찬호나 MC몽이나 작은 것의 가치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그런 사람들을 휙 지나쳐 보기 쉬운 TV 버라이어티쇼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기쁨의 하나다. 사회는 그런 젊은이들, 그런 사람들을 잘 밀어줘야 한다. 그런데 그러는 것 같지 않아 심히 걱정된다. 사회가, 정치가, 그런 사람들의 기대와는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 같아 정말 걱정된다. 아 이놈의 걱정. 팔자려니 생각하기에 요즘 우리 사회의 풍경은 무섭다. 너무 무섭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363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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