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민주당이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주최한 '뉴타운·재개발 주민의 눈물, 민주당에 외친다' 토론회에 참석한 재개발 지역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고함을 질렀다. "이 나라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렸다.
이날 토론회는 뉴타운·재개발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연단에 서서 민주당 대책위 의원들에게 호소도 하고 질책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 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민주당에 외친다' 토론회에 참석한 뉴타운 주민들. ⓒ프레시안 |
극한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재산권 투쟁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뉴타운은 사기다"라는 것. 작고 허름하더라도 자기 명의의 집을 갖고 있는 주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시장 시절 뉴타운 개발 계획을 듣고 '로또'라도 당첨된 것처럼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막상 개발이 시작되니 새 아파트에 입주는커녕 자기 재산권에 심각한 침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반지하층이 딸린 3층짜리 작은 다세대 건물의 시가가 4억5000만 원이었다. 그런데 재개발 감정평가를 하니 3억 원이 책정됐다. 당장 1억5000만 원의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신이 사는 3층을 제외하고 반지하에 전세 5000만 원, 1층과 2층에 각각 전세 8000만 원씩 총 2억1000만 원을 세입자에게 돌려주고 나면 남는 돈은 9000만 원이다.
옥수동에서 30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평생을 벌어 마련한 집인데, 이렇게 쫓겨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누굴 위한 재개발이냐"고 울먹였다.
그래도 4억5000만 원짜리 건물을 갖고 있으면 적어도 '중산층' 소리는 듣고 살았는데, 뉴타운 입주는커녕 빈민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저항해봐야 '철거민'만 될 뿐이다.
감정평가액 산정 방식도 불만이다. 용산 성원아파트에 거주하는 정모 씨는 "뉴타운 개발 발표 이후 아파트값이 4억 원에서 8억 원으로 뛰었다"며 "그런데 보상액을 평가할 때는 발표 전 기준으로 4억 원만 책정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게다가 기반시설 분담금도 내야 한다. 문제는 개발이 안 되는 주변 지역도 거의 모두 부동산 가격이 덩달아 뛰어 4억 원으로는 같은 조건으로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원주민조차 높은 건축비와 오른 집값 부담 때문에 입주를 못해 뉴타운을 바다에 외로이 빛나는 등대를 빗대 '등대 타운'이라고도 부른다.
'찍 소리' 못하는 세입자들
용산 참사에서도 지적됐던 상가세입자의 권리금 보상 문제도 심각하다. "법적 보상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주거복지운동 단체인 '나눔과 미래'의 이주원 지역사업국장은 "제도의 문제에 앞서 재개발 조합들이 감정평가법인에 50억이면 50억, 100억이면 100억 평가액 총액을 정해주고 감정평가를 시키는 것이 1차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감정평가법인이 각 업소별로 면밀하게 감정을 해 실보상금을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에서 정해준 한도에 끼워 맞추기식이라는 것이다. 조합은 사업비를 줄이기 위해 이 한도를 최대한 줄인다. 이 국장은 "감정평가액을 통보할 때 총액만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 명세를 모두 기록하게 하면 감정평가법인이 엉터리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작지만 자기 재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극한 투쟁'도 각오하고 있지만 일반 주거세입자들은 '찍 소리'도 내지 못하고 쫓겨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집주인이 보증금과 이사비 정도 챙겨주면 더 이상 요구할 권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중앙대 대학원에 재학 중으로 흑석동에 거주하는 한 블로거 기자는 "2년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요즘 집주인의 전화가 두렵다"고 말했다. '집세를 올리거나 나가라'고 할 전화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사를 가라면 가야 하는 세입자들은 전혀 힘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20~30대 싱글 세입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흑석동의 하숙·자취촌의 절반 이상이 재개발로 사라졌고, 더 먼 곳으로 가봐야 그 곳도 재개발이 이뤄져 점점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월세방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다녀 보면 '관내 지도'에는 재개발 및 뉴타운을 알리는 빨간 테두리 투성이다. 재개발에 묶여 공급은 줄어들고 기존 재개발 지역에서 쫓겨 나오는 세입자 수요는 늘어 집세는 오르고 그나마 물량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 대학가 부동산 사장에 따르면 2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복학하는 대학생들 모두 "해도 너무하네요"라며 울상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한다.
보통 40~50만 원씩 주고 월세를 살게 될 경우 월급 150~200만 원 받아 월세 내고 생활비 쓰면 미래를 준비할 돈이 거의 안 남는다는 점도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앗아가는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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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에 대한 적개심 심각
저마다 처한 입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공권력에 대한 적개심이다.
적개심 대상의 선봉에는 재개발사업 인가권자인 구청이 있다. 왕십리 1구역 주민인 고등학교 영어교사 이모 씨는 "조합설립 동의서는 80% 이상인 660장을 받아야 하는데, 나중에 소송 때문에 성동구청이 제출한 동의서는 593장이었고, 이마저도 267장에는 인감도장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답십리 16구역 조합장이었던 조모 씨는 "사업시행구역 내에 도로와 같은 국공유지는 처음엔 평당 시가를 100~200만 원으로 책정하고 있다가 사업시행인가만 나면 개인 땅처럼 시가를 1000만 원으로 올려버린다"며 "자기들이 나서서 재개발 하고 구청이 땅 장사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상급기관이나 감독기관에 불만을 호소해도 대답은 화만 더 키운다는 주장이다. 구청의 인가 과정 하자를 파헤친 왕십리 1구역의 이 씨는 "감사원에 민원을 넣었으나 '서류적으로 법률적 하자가 없음'이라는 답변이, 국토해양부에 민원을 넣었더니 '실질적으로 도움이 못 되는 점 이해 바란다'는 답변이, 서울시청에 민원을 넣으니 '구청에 확인해보니 문제 없더라'는 답변이, 구청 감사실에 넣었더니 '감사청구 요건이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오는 등 모든 행정관청이 '오리발' 투성이"라고 말했다.
시공업체와 갈등을 벌이고 있는 용산의 정 씨는 "삼성 컨소시엄이 집에 전화를 걸어 '실거래가 보상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고, 민간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수행한다'고 협박하길래 공무 사칭한다고 고소했더니 '증거불충분'이라고 하고 다툼을 벌이다 고소 당해 벌금이나 통보 받는 등 법에 호소해봐야 경찰과 검찰 다 그들 편"이라고 분개했다.
'억울함을 풀어주겠지' 일말의 기대를 건 법원도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는 정서가 대부분이었다.
금호동에서 40년을 살았다는 금모 씨는 "소송을 했는데 비대위에서 돈을 모아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조합은 3000만 원 짜리 변호사를 써서 졌다"고 사법 불신을 나타냈고, 또 다른 재개발 지역 주민은 "명도 소송에 의해 법원이 가집행 허가를 내리면 조합이 집을 빼앗는다"며 "여러차례 법원을 다니고 소송을 해본 결과 돈과 권력은 법 위에 있더라"고 냉소했다. 응암동 주민은 "관리처분인가가 나는 순간 주민들은 법적으로 구제 받지 못하는 난민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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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동의 금모 씨는 "한 번도 국회의원들이 현장에 나와 조사한 적이 없다"고 말했고, 왕십리의 이모 씨는 "이제라도 민주당과 민노당 등 야당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이게 다 이명박 서울시장할 때 한 짓이다. 조합에서 제일 설치고 다니는 것들이 한나라당 유세할 때 다라다니던 놈들"이라는 적개심의 대상이었다.
한편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대학시절 홍제동 달동네에 살았었는데,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수많은 세입자들의 고통과 억울함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살피지도 못했다"고 반성의 뜻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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