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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게 정국의 초점이 돼버린 사람의 심경은 어떨까? 그것도 사퇴공세에 시달리는 고위 공직자라면.
어느 정권이나 사퇴공세를 맞게 되는 고위 공직자는 있게 마련이지만 공방의 수준과 수습의 양태가 꼭 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퇴공세가 벌어지는 정황의 다름 탓도 있겠으나 역시 중요한 차이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성격에 있는 것 같고 더 중요하게는 당사자들의 됨됨이인 것 같다.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사퇴공세에 시달릴 정도라면 중하위 실무 공직자는 아닐 것이니 임명도 경질도 사퇴도 모두 고도의 통치권 행사에 속하는 문제일 것이다. 정권차원의 전략적 판단과 정치적 선택 행위일 수밖에 없겠다는 뜻이다. 참으로 가혹한 것은 통상 이들에게는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관운'이 좋지 않고서야 한번 탈락하면 끝이지 장·차관 기회가 쉽게 또 오겠는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버텨라, 버티면 어떻게든 길이 생긴다"는 속설이 정설로 통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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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정권의 성공과 자신의 성취를 조화시켜 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열심히 충성스럽게 일하는 것이 자신의 성취이기도 하고 그가 모시는 대통령의 성공과 그가 몸담고 있는 정권의 성공을 만들어가는 길이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늘 그렇게 좋기만 하겠는가. 때로는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낮춰야 될 때도 있고 정권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불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그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과 정권의 성공을 위해 한 몸 던져야 할까 일신의 안위를 위해 대통령과 정권의 성공에 눈을 감아야 할까? 조갑제씨는 이런 처지에 빠진 고위공직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준다. "버텨라. 당신이 살아남는 것이 대통령과 정권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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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청장의 임명을 철회한다면) 골수 보수세력들이 배신에 이를 갈면서 대통령을 버릴 것이고 좌익세력은 이겼다고 더욱 광분할 것이다. 홍준표,박근혜, 원희룡 류의 사람들이 대통령을 얕잡아보고 사사건건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김 내정자의 임명절차를 밟기 시작하면 침묵하던 보수들이 일어나 그를 지지할 것이고 파법세력과 준법세력 사이의 전선이 형성되고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다."
보수정권이 들어선 지 1년이 지났음에도 보수가 침묵해 왔다고 주장하는 것도 놀랍고 김석기 내정자의 거취문제를 기준으로 홍준표, 박근혜, 원희룡과 대통령을 구분하는 과감한 이분법도 놀랍다. '좌·우'라는 녹슨 프레임으로 복잡다단한 정치현실을 일도양단하는 그의 만용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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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원내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했다는 소식이 2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기를 할 것이라는 예측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둘 사이에 '이견'이나 '충돌'이 없음을 과시하기 위해 굳이 홍준표 원내대표가 박희태 대표에게 요청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으나 그런 뒤늦은 설명이 원내대책회의를 주관한 박희태 대표의 궁색한 모습이나 옆으로 밀려난 홍준표 원내대표의 옹색한 모습을 감춰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172석 거대 집권당의 지도부를 이토록 궁색하고 옹색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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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키를 쥐고 있다고들 생각하는 듯하다. 권력의 크기, 권한의 깊이에서도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의 만기친람형 리더십의 특성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이 온당할까?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되 그도 포함된 핵심적 정책결정구조와 시스템으로 문제를 넓혀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렇게만 된다면 교차점검을 통한 보완과 교정이 어느 정도는 이뤄질 수도 있을 텐데….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너무 강한 대통령'의 존재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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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회 생일축하 케이크까지 잘랐으나 박근혜 의원의 '마무리 발언'은 무뎌지지 않았다.
"쟁점법안과 관련해 정부가 바라보는 관점, 야당이 바라보는 관점, 국민이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차이가 크다. 쟁점법안일수록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국민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청와대 관계자나 오찬 참석자들의 안쓰러운 수습노력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의원의 발언이 밀어붙이기와 속도전에 나선 청와대 정부와 한나라당 지도부의 정국운영기조와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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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씨의 주장이나 홍준표, 박근혜, 원희룡의 주장, 박희태의 주장 모두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있다. 통상적 시스템에서라면 이 주장들은 각각의 고유한 가치와는 별도로 시스템적으로 평가되고 정리되고 해석되고 전달될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모든 주장은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되거나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몇 사람에 의해 무작위로 전달될 것이다. 정권차원의 시스템에 의한 가중치부여나 걸러짐이 작동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 결과가 어느 정도 파괴적일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대통령의 결정과 선택이 왠지 모르게 국민 다수의 여론과 동떨어지고 균형을 잃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점점 많아질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이 거듭되면 그 결과는 파국적이다. 민심과 멀어진 권력의 황폐한 끝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지 않은가! 너무 늦기 전에 정책결정과정과 정무전략보좌 기능을 시스템적으로 서둘러 정비할 것을 권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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