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기죽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즐겁게 또 만나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기죽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즐겁게 또 만나자"

[현장] 복직 투쟁 다시 시작한 해직 교사들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화이팅!"

2일 아침 서울 강동구 길동초등학교 앞.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학교 앞 등굣길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교문 앞 한쪽에 유난히 웃음꽃이 피었다. 지난해까지 이 학교 6학년 2반 담임 교사였던 최혜원 교사와 학생들이었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 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최 교사는 다른 교사 6명과 함께 지난해 12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됐다. 1년을 함께 보낸 학생들과 졸업 전까지 수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학교는 교문 밖으로 교사를 내쫓았다. 학생과 교사의 만남이 허락된 곳은 교실이 아닌 길거리였다.

많이 울고, 많이 화냈던 최혜원 교사였지만, 그는 꿋꿋히 버티겠다고 했다. 개학을 앞두고 최 교사는 '특별 활동'을 기획했다. 일명 '랄랄라 투쟁'.

학생들을 만나고, 일제고사와 해직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그는 개학부터 졸업 전까지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학생, 학부모, 지역 주민들과 그림 그리기, 노래 등으로 특별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특별 활동이 처음 열린 2일 길동초등학교 앞은 반가움과 즐거움이 담긴 수다가 이어졌다.

같은 시간, 종로 청운초등학교 앞. 지난해 최 교사와 같이 해임된 김윤주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반가운 인사가 오갔다. 김 교사는 학생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등을 토닥거렸고, 학생들은 달려가 포옹했다. "졸업식 때 꼭 오실거죠?"라고 묻는 학생을 껴안는 김 교사와 학생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날 해직교사 7명은 개학에 맞춰 각자 학교 앞에서 학부모·지역 사회단체 등과 피켓 시위를 벌였다. 해직 통보를 받은지 두 달이 되어가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여전히 항의 농성이 진행 중이고, 교과부에 제기한 소청 심사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변한 게 있다면, 서울뿐 아닌 강원, 전북교육청에서도 일제고사와 관련해 교사 중징계가 내려졌고, 유난히 많은 일이 터지는 한국 사회에서 해직 교사들에 대한 충격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것이다.

▲ 2일 서울 강동구 길동초등학교 앞에서는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최혜원 교사와 학생들의 재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최 교사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를 적었다. ⓒ프레시안

"울면 지는 거잖아요"

"안 울기로 했어요. 울면 지는 거잖아요."

최혜원 교사와 함께 교문 앞에서 친구들을 맞이하던 길동초 6학년 2반 김혜진(가명) 학생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따로 연락을 받지 않았지만, 이날 최 교사가 학교에 올 것 같다는 생각에 일찍 등교했다고 했다.

그는 "선생님과 헤어지면서 울고 난 다음날 친구들끼리 이야기했다. 울면 지는 거고, 선생님을 쫓아낸 사람들에게 우리의 주장이 꺾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래를 부르고, 최 교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크레파스로 적으며 웃는 학생들의 표정은 최 교사와 닮아 있었다.

▲ 등교가 이뤄지는 1시간 동안 흰 천 안에는 어느새 최혜원 교사에 대한 응원 메시지로 가득 찼다. ⓒ프레시안
나란히 피켓을 들고 있던 대여섯 명의 학부모와 주민들도 밝게 웃으며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다. 학부모 이해풍(43) 씨는 "방학 동안에도 꾸준히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에서 서명 운동을 했다"며 "주민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이 씨는 "줄 서기 싫다"며 일제고사를 거부한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 대신 체험 학습을 보냈다. 최 교사가 해임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그때부터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최 교사를 도왔다. 현재도 스무 명 가량의 학부모, 지역단체 활동가 등과 함께 연락을 주고 받으며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오전 9시, 등교 시간이 끝났는데도 학생들은 최혜원 교사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늦었다며 교문 안으로 등을 떠미는 최 교사에게 학생들은 "선생님 없으니까 숙제가 넘쳐요", "선생님, 저 세뱃돈 O만 원 받았어요" 등등의 이야기를 그치지 않았다. 결국 "내일 또 오겠다"는 최 교사의 다짐을 수 차례 받고 포옹을 한 후에야 학생들은 뒷걸음질 치며 교실로 들어갔다.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해직됐다고 해서 기죽지는 않는다. 슬프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가련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되려 아이들의 상처만 키울테니."

학생과 인사하며 끝내 울먹였던 김윤주 교사 역시 "기죽지 않는다"며 눈물을 닦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시대적 아픔 아니겠느냐"며 "정당한 행동에 대해 내려진 징계의 부당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겪는 사람들의 몫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직 이후에도 바쁘게 지내왔던 김 교사는 교사로서 맡은 몫을 마지막까지 다할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졸업식 전까지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써줄 것이라고 했다. 1년 동안 지켜봤던 담임 교사의 눈으로 학생들이 발전한 부분, 소질, 부족한 부분 등을 성장보고서 형식으로 담아낼 생각이다.

최혜원 교사 역시 학생들과 다시 만날 생각에 밤새 준비를 했다고 했다. 두 달전 해직 당시 눈물을 흘렸던 최 교사였지만, 이날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그의 표정은 어느때보다 밝았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즐겁게 '투쟁'할테니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1시간 남짓 되는 시간동안 가득 메워진 응원메시지에는 "선생님 항상 다치지 마시고 웃어요", "선생님, 학교에서 만나요", "정의는 승리해요" 등의 말이 가득 적혀 있었다.

▲ 이날 서울 종로 청운초등학교 앞에서도 김윤주 교사와 동료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이 함께 피켓 시위를 전개했다. ⓒ프레시안

일제고사 논란 계속된다

이날 각 학교에서 전개된 피켓 시위는 별다른 충돌없이 끝났다. 교사들은 오는 13일경 있을 졸업식 전까지 피켓 시위를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출근 투쟁을 막기 위해 학교 앞에 배치된 경찰을 마주쳤던 교사와 학생들은 '무사히' 재회하고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로도 기뻐했다.

한편, 일제고사 논란은 2월 중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의 징계 결정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에 제기한 소청 심사가 2월 중으로 있을 예정이다. 또 오는 7일에는 역시 체험 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징계 권고를 받은 사립학교인 세화여중 김영승 교사에 대한 학교 측의 징계위원회가 예정돼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오는 3월 10일 초·중학교에서 시행되는 일제고사를 교육 당국이 또 다시 무리해서 강행한다면 우리도 농성 등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