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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구호는 이제 그만"…"질문,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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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구호는 이제 그만"…"질문,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제9차 세계사회포럼 현장 중계]<2>'집단적 사유'의 한마당

다보스가 우울한 경제 전망으로 가득차 있다면 벨렘은 다양한 문화의 얼굴들로 가득하다.(☞관련 기사: '역대 가장 우울한' 다보스 포럼 개막, "너희들의 위기, 우리는 대신 짊어질 생각이 없다")

춤과 노래가 흐르는 자리

▲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아마존의 원주민들. 이들은 아마존 국가들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엄기호
아마존에 의지해 살아가는 170개가 넘는 소수 부족들과 노예로 끌려와서 라틴 문화를 더욱 더 풍부하게 한 흑인 후예들의 춤과 노래가 행사장에 넘쳐흐른다.

이번 포럼의 가장 큰 특색은 아마존에 사는 사람들이나, 라틴아메리카의 인디오 혹은 소수부족들, 그리고 흑인후예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모여 교류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원주민들의 텐트', '흑인 후예들(Afro-latin American)의 텐트', '아마존의 텐트' 등의 장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이들의 행사장은 다른 토론장처럼 심각한 대화만 오고가는 것이 아니다. 하루종일 춤과 북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원주민들의 텐트는 아예 삼바 축제장처럼 꾸며져 있다. 각양각종의 원주민들이 서로 무대에서 전통의례와 춤, 그리고 노래를 겨루고 있다.

뭄바이에서는 인도 카스트 제도에 의해 천대받는 불가촉 천민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고, 나이로비에서는 슬럼가에 사는 빈민들이 목소리를 높였다면, 브라질 벨렘에서는 어느 것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문자 그대로 원주민들을 상징하는 무지개 모자이크 깃발처럼 다양성 그 자체를 만날 수 있다.

'가상의 돈'이 만든 거품 경제

한편에 문화적 다양성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현재 진행 중인 전례없는 금융위기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한 격렬한 토론이 있다. 참여민주주의자들부터 극좌파에 이르기까지 서로 경쟁적으로 대안을 내놓고 토론을 하고 있다.

29일 오전에 War on Want, ATTAC, CRID, '우리의 지구는 판매용이 아니다(Our world is not for sale)', 세금정의 인터내셔널(Tax Justice International) 등이 주최한 '경제위기에 대한 지구적 대답을 위하여'라는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자들은 앞을 다투어 신자유주의를 성토하고 대안을 제시하였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실제 경제에 기반하지 않고 거품을 키워온 것에 대해 모두가 동의한다.

심지어 이 금융화된 세계경제에서 돌고 있는 돈은 진짜 돈이 아니라 가상의 돈(virtual money)이고 허구의 돈(fictional money)이다.

돈의 목적은 돈을 돌게 만드는 것인데, 금융자본주의는 이런 허구의 돈만을 만들어 오며 오히려 실물경제를 위한 돈줄을 막아온 셈이다. 국제세금정의네트워크에서는 네델란드와 다른 카리브해의 국가들이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들이 돈세탁을 하고 탈세를 하는 세금 도피처(Tax Haven)이 되었는지를 성토하였다.

한국에서 '먹튀'로 유명한 론스타 등과 같은 곳이 바로 이런 세금 도피처를 이용하여 탈세를 하고 국제금융질서를 교란시키며 실물경제에 타격을 가한다.

"한 가지 해결책은 없다"…총체적 위기에 대한 총체적 대응 필요

이어 회의에 참가한 단체에서는 이번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7개의 원칙을 가지고 초안의 형태로 제시하였다. 사회포럼 내내 토론을 하여 합의의 형태로 대안을 공식화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현재의 위기를 G20같은 폐쇄적 헤게모니를 통하여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워싱턴 컨센서스와 같은 '달랑 한 가지'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현재의 위기는 그만큼 총체적이며 지금까지의 수단들(tool box)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transformation)을 요구하는 것이지 한두 가지를 고쳐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였다.

따라서 현재의 금융 카지노는 중단되어야 하며, 금융시스템은 지속가능하고 평등한 사회를 목적으로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방향으로 총체적으로 개편되어야한다.

다 아는 이야기, 그저 구호만 외치는 사람들

이 안에는 작년에 한번 진행하였다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G20과 같은 새로운 헤게모니가 아니라 UN의 틀과 책임 속에서 보다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투명한 과정으로 새로운 국제금융질서가 잡혀야한다는 내용도 있다.

또한 금융에 대한 통제권을 탈집중화하여 풀뿌리민주주의로 이양하여야한다는 것 등 지금까지 세계사회포럼에서 시도된 여러 가지 대안들을 종합하려고 시도하였다.

솔직히 이런 주장은 진부하고 주장에 대한 토론은 더 진부하다. 우리가 다 아는 소리를 다시 한번 나열한 것으로만 보인다. 길게 늘어선 토론자들도 질문을 하지도, 성찰을 하지도 않고 반자본주의 구호만 외치다 들어간다.

"그들에게 남은 숙제는 권력 쟁취뿐?"

이런 사람들에게 문제는 지금까지 대안이 없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에게 '대안은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모든 대안을 다 알고 있다. 문제는 그 대안을 누가, 어떻게 현실화하는가이다. 결국 이들에 따르면 문제는 오로지 '권력의 쟁취'일 뿐인가?

그러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이들이 제시하는 전략도 '구호'에 불과하기는 매한가지이다.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민중들을 움직이게 하여야하고…등.

"뻔한 구호 외치러 여기까지 왔나"

그러나 한 토론자의 말처럼 세계사회포럼에 와서 앉아 있는 사람 중에 반제국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없고, 반자본주의가 아닌 사람이 없다. 이런 구호만 반복하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다.

곳곳에서 이런 상투적이고 진부한 구호를 뚫고 번뜩이는 질문들이 솟아난다. 진부한 대안에 대한 제시는 그대로 해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질문들을 만들어낸다.

상투적 구호를 뚫고 나온 날카로운 질문들, 진정한 싸움의 무기

이런 날카로운 질문들이야말로 싸움의 무기이다. 날이 잘 선 칼로만 썩은 무건 호박이건을 벨 수가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한 청년은 세금 도피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미 9.11테러 이후에 검은 돈이 테러리스트들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감시하고 막기 위해 카리브해의 세금 도피처들에서 벌어지는 세금세탁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는 정책이 미국과 이들 국가 사이에 체결되었다고 한다.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헤지펀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처럼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급진적인 정책들이 이미 그들에 의해 소개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급진화를 요구해야하는지를 되물었다.

규제 강화?…"하지만 국가를 믿을 수 있나"

프랑스 ATTAC에서 온 활동가도 지금의 경제위기 이후에 영국이나 다른 국가들에서는 이미 엄청난 규모의 은행국유화나 공적자금 투입 등 통상적인 신자유주의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조치들이 지난 6개월동안 신속하고 급진적으로 추진되었음을 상기시켰다.

에디오피아에서 온 활동가는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세계 곳곳에서 규제를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그 규제를 담당하고 실행할 국가는 이미 통제하고 규제하는 능력과 목적에서 실패하지 않았던가를 되물었다.

과거 사회주의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왜 아직 국가인가?"

이어 그는 "다시 국가로의 회귀가 답이 될 수 없으며, 이런 점에서 지난 9년간 세계사회포럼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다고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사회주의의 주변을 여전히 맴돌면서 전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지금 우리에게 대안이 충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대안을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대안을 현실화할 수 있는 권력과 권력화의 전략인 것만도 아니다.
회의장을 가득 메운 청중. 이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대안을 만들어간다. ⓒ엄기호

질문을 만들어내는 협력적 사유…"'사유의 사회운동'은 계속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결정적으로 빠져 있는 착각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텅 비고 허점투성이의 대안, 언제든 자본과 지배자들에 의해 역으로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용되기 일쑤인 이 대안들을 더 날카롭고 치밀하게 만들기 위한 더 많은 질문들이며 이 질문들을 만들어내는 협력적인 사유(思惟)다.

'사유의 사회운동'인 세계사회포럼은 40도가 넘는 더위와 열대의 폭우를 뚫고 내일도 계속된다.

(한국에서도 민주노총이 29일부터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였다. 민주노총은 세계사회포럼 조직이사회의 한 주관단체로 매년 적극적으로 참가해왔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주로 금융의 위기와 관련된 세션에 참가하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실체와 내용을 세계사회운동과 나누며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또한 브라질 노총과 남아공 노총과 펼치고 있는 남반부 3각회의를 비롯하여 노동조합의 국제교류와 연대를 주도하며 올해 5월에 한국에서 경제위기와 관련된 국제회의를 조직할 예정이라고 민주노총 관계자는 전했다.)

- 제9차 세계사회포럼 현장 중계

"너희들의 위기, 우리는 대신 짊어질 생각이 없다"

"뻔한 구호는 이제 그만"…"질문,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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