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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남긴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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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남긴 과제들

[기고]"개발업자 몫 줄이면 철거민 보상 충분히 가능"

화염에 뒤덮인 망루 뒤편으로 우뚝 치솟은 주상복합건물들이 보였다. 불에 타 죽어가던 철거민들이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바로 그 건물들이 아니었을지. 죽거나 다치는 철거민들을 화면으로 지켜보는 심정은 내내 참혹했다.

용산 재개발구역에서 발생한 비극을 표면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 양심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폭력진압이 참사의 원인임을 금방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한나라당이나 과점신문들이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면서 끊임없이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기에 현혹될 어리보기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당장 급한 것은 이번 사건의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과 대통령의 사과다. 과잉진압-이런 표현도 사치스럽게 느껴진다-에 책임이 있는 경찰지휘관 등에 대한 문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사과에 극히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5명의 시민들이 공권력의 부적절한 행사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다. 선진국이라면 내각이 총사퇴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안이다.

국가는 합리적 중재인이나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조금 복잡해진다. 이번 사건은 현대국가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국가를 "부르주아들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라고 갈파한 바 있다. 자본가 계급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것이 국가의 주요한 역할과 기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마르크스 당대의 국가는 비판적 지식인과 혁명가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의 주요 선진국들을 마르크스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수다한 역사적 경험과 변화된 현실이 국가가 특정 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선진국들은 국가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계층과 이해관계자들을 합리적으로 중재하거나 조정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고 있다. 그런 것이 시대의 흐름이고 대세다. 불행히도 이명박 정부는 이런 세계적 트랜드에 역행하고 있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용산재개발 구역에서 발생한 개발업자(시공사 및 시행사, 재개발 조합)들과 철거민 간의 다툼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인(私人) 간의 쟁의였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이 타협과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르도록 중재하고 조정을 하는 역할을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개발업자 편에 서서 철거민들을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방법을 택했다.

본디 대화와 설득에는, 조정과 중재에는, 긴 시간과 인내심이 요구된다. 이명박 정부는 합리적인 중재자가 될 마음은 고사하고 공정한 심판의 입장에서 개발업자와 철거민 사이의 조정을 지켜볼 마음도 없었다. 국가는 합리적인 중재인 역할을 하거나 적어도 공정한 심판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이명박 정부에게는 애시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듯 싶다.

주거권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있어야

용산 참사는 용산이라는 지역에만 국한된 사건이 아니다. 이런 저런 재개발과 수용이 이뤄지고 있는 곳에서는 제2의 용산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개발업자들과 철거민 사이에 수용과 재개발, 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극단적인 대결의 근본원인은 수용이 용이한데 비해 보상이 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도한 보상 요구 및 알박기(재개발 예정지역의 중요한 지점의 땅을 미리 조금 사놓고 개발을 방해하며 개발업자로부터 많은 돈을 받고 파는 행위) 등의 문제가 철거현장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는 지엽적인 문제이다.

수용당한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 이주하기 전과 같은 수준의 주거여건과 생계(자영업자들의 경우)를 영위할 수 있는 정도의 보상이 주거권 혹은 생활권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개발업자와 철거민 사이의 전투적이고 비타협적인 대결이 대부분 종식된다. 철거민들에 대한 주거권 차원의 보상은 개발업자들이 전유하는 개발이익의 몫을 조금만 줄이면 될 일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철거민들의 주거권 내지 생활권 차원의 보상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

불행히도 용산 참사 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보이는 반응을 보면 앞으로도 국가가 합리적인 중재인의 역할을 하거나 공정한 심판의 역할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물며 주거권 혹은 생활권 차원의 보상은 언감생심이다. 제2, 제3의 용산참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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