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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때도 이러지 않았다…살인정권 물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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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때도 이러지 않았다…살인정권 물러나라"

[현장] 용산 참사 추모 집회…경찰 또 과잉 진압

민주주의의 추락은 어디까지일까.

20일 경찰의 강제 진압 과정에서 시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사고 건물 현장 일대는 종일 붐볐다. 사고 소식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며 확인하러 나온 시민, 추모를 위해 온 시민이 모여들었고, 경찰 역시 건물 주위에서 대기했다. 유리 잔해와 그을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 앞에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전국철거민연합회를 비롯해 사회단체들이 긴급하게 구성한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대책위원회'는 이날 저녁 사고 현장 앞에서 추모 집회를 열었다. 오후 7시에 시작된 집회의 참가자는 오후 9시경 3000명까지 늘어났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살인 정권, 이명박 퇴진", "살인 정권 물러나라"를 연호하며 행진을 시작했다. 집회 내내 "불법 집회를 해산하라"며 경고방송을 했던 경찰은 살수차를 쏘고 행진 대열을 끊으며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참가자들은 신용산역-서울역-남대문-서울시청을 지나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 모인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경찰이 더 이상의 행진을 못하도록 막자 보도블럭을 이용해 투석전을 벌이며 자정 무렵까지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은 두 차례 토끼몰이식 강제 진압을 시도하며 시위대를 향해 돌을 던졌다.

또한 경찰은 넘어진 시민을 머리에서 출혈하는 상황에서도 군홧발로 집단 구타를 하면서 폭력적인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집회 참가자 1명이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호송되는 등 2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시민 2명이 연행됐다.


▲ 이날 참사가 발생한 건물 앞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프레시안
▲ 손피켓을 들고 나온 시민들. ⓒ프레시안

한탄하는 시민들 "죽이려고 작정을 했었구만"

"독재 시대도 겪었다. 그렇지만 이런 건 처음 본다. 불쌍한 사람이 고작 30명 있었는데 진압한다며 경찰 1600명을 동원했다고 들었다. 남의 나라 인권 걱정할 게 아니다."

사고 현장 주변에서 만난 윤모 씨(70)는 근처 이촌동에 사는 주민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서민도 아니지만 이건 아니다. 사람이 얼마나 산다고… 지금이 어느 땐데 독재를 하려 하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던 시민들도 "재개발해도 봄에 나가게 하면 되잖아", "학살범을 역사가 기록한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삼삼오오 모여 경찰의 강제 진압 목격담을 듣던 시민들은 "죽이려고 작정을 했었구만"이라며 한탄했다.

"오래 전부터 계획된 철거라고 알고 있다. 철거 당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반대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떠나는 사람들은 억울하지 않게 해줘야 한다. 나 같아도 억울하면 어디 떠날 수 있겠나."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고 현장을 지켜보던 조모 씨(80) 역시 "얼마나 억울하면 화염병을 던졌을까"라며 "이런 일이 터지기 전에 타협으로 해결했어야 했다"며 혀를 찼다.

김은영 씨(가명·28)는 "세상 무서워졌다. 돈 없으면 죽으라는 거다. 서민 경제 살린다는 사람이 서민들을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 주변을 떠나지 않는 취재진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한 시민은 카메라를 든 기자들을 향해 "사람 다 죽고 나서 늦게 와서(…) 이 방송들, 내 세금 갖다 줬더니 뭐하는 거냐. 언론이 살아있어야 민주국가인데, 철거민 다 죽이고 보도도 안 한다"며 울부짖었다.

▲ 시민들은 건물 외벽에 피켓과 플랭카드를 걸어 경찰의 강제 진압을 비난했다. ⓒ프레시안
▲ 경찰은 이날 한강로 추모 촛불 집회를 '불법 집회'라며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진압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병력, 경찰 차량 등으로 일대가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프레시안
"화염병 때문에 참사?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참사의 원인을 철거민에게 돌리는 경찰의 발표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매우 무리한 진압이었다. 세입자와 시공사 간, 즉 사인간의 분쟁이었다.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국가가 개입하려면 약자를 보호하거나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했다.

통상 건물 농성을 시작하면 1~2달 동안 시간을 가지면서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건물을 진압하는 일이 매우 위험한 것은 상식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당연하다. 그런데 농성이 들어온 지 하루만에 진압을 했다. 국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벌였다.

화염병 때문에 참사가 발생했다? 1980~90년대 화염병 굉장히 많이 봐 왔다. 그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이번 참사는 명백히 강경 진압 때문이다. 설령 화염병을 문제 삼는다 해도 추후에 사법처리를 하면 그만인 일이다. 화염병 던지면 위험한 진압을 해도 된다면, 물건 훔쳤다고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도 되는 건가? 화염병이 위험한 것이 우려되는 당연한 상황이었다. 화염병 핑계는 어떤 식으로든 말이 되지 않는다.

경찰은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뒤에서 '올라가', '진압해'라고 명령을 하고도 그 결과가 어떨지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 또는 바보다.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경찰 "사고 빌미로…" 말하고선 추모 집회도 폭력 진압

추모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한 손에는 촛불, 한 손에는 흰 국화를 들고 애도를 표시했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주요 도로를 점거하는 불법 집회를 하고 있다"며 수 차례 해산을 종용했다. 경찰은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불미스러운 살고를 빌미로 불법 집회를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방송하기도 했다.

경찰은 행진이 시작된 이후 이를 막으려 무리한 진압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국방송(KBS)는 20일 밤 11시 <뉴스라인>에서 경찰 여러 명이 인도로 걸어가던 20대 여성의 머리 부분을 내리치고, 여성이 쓰러진 뒤에도 경찰이 폭행을 휘두르는 장면이 방영됐다. 또 물대포차 밑에 누운 시민을 사지를 붙잡아 끌고 나오는 장면도 방영됐다. 이외에도 곳곳에서 해산을 시도하는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몸싸움을 벌였다.

한편, 집회에 참석한 전철연 회원들은 "이제 말할 기운도 안 난다"며 언론에 강한 불신을 보였다. 피해자들과 같이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이었던 철거민 한 명은 "나머지 동지들은 이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이다. 그것 뿐이다. 아무도 안 믿는다. 있는 사람들 편드는 언론, 다 똑같다. 할 말이 없다. 말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 20일 밤 명동성당 앞까지 행진한 시민들은 대로 앞을 가로막은 경찰에게 항의했고 일부는 돌을 던지며 행진을 시도했다. ⓒ프레시안
▲ 경찰은 명동성당 앞에서 토끼몰이 진압을 하면서 돌을 다시 던졌고,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넘어진 시민의 머리에서 피가 나는 데도 둘러싸고 구타를 계속했다. ⓒ프레시안
유족 동의 없이 부검…시신 확인 가족 오열

한편, 이날 사망한 피해자들의 시신을 경찰이 보호자와 유가족의 동의없이 부검을 해 논란이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변사 사건을 제외하고는 보호자의 동의 절차를 거쳐 부검을 실시하게 돼 있다. 또 경찰은 신원이 확인된 후에도 피해자의 유가족들의 시신 확인을 한동안 금지해 항의가 쏟아졌다.

이날 오후 철거민측 시신 5구가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중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는 2명이며, 아직 3구의 시신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상태다. 현재까지 신원이 파악되거나 전철연 측이 추정하고 있는 사망자 명단은 고 양회성(56), 이성수(50), 이상림(71), 한대성(나이 미상), 원용헌(전철연 대표)이다.

▲ 시신이 안치된 순천향대병원에서는 시신을 확인하려는 유가족을 경찰이 막아서면서 충돌이 일었다. 전철연 회원과 시민 50여 명은 병원에 모여 경찰에 항의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프레시안
경찰은 사고가 발생한 지난 20일 시신을 이송한 뒤 보호자의 동의없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순천향대병원에 모인 50여 명의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시신 확인을 요구하며 영안실에 가려 했고, 이를 막는 경찰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아들을 보러 가겠다", "우리 아빠 보러 가겠다"라고 말하는 가족들을 막았고, 지켜보던 유가족 중 2명이 실신했다.

21일 오전 1시경, 경찰은 의사, 변호사, 유족을 포함해 10명이 시신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1시간 가량 시신 확인을 마친 일부 유가족은 오열했다. 고 양회성 씨 유족 중 한 명은 "구정을 앞두고 철거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시신 확인에 참여했던 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는 "시신이 너무 상해서 가족이 차마 알아볼 수가 없었다"며 "부검으로 한번 더 훼손이 됐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이런 사건에서 유족의 동의없아 부검을 실시한 예는 지난 20년간 본 적이 없다"며 "전두환 정권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확인된 내용을 토대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21일 오전 경찰의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또 대책위 차원에서 공식 기자회견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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