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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워커 회사'가 억울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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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조니워커 회사'가 억울해하는 이유"

[기자의 눈] MB 사돈 기업도 '이전가격 조작' 혐의

관세청이 모처럼 주목받고 있다. 관세청이 최근 양주 수입·판매회사인 디아지오코리아에 2064억 원에 이르는 관세를 소급 추징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관세 추징 규모로는 사상 최대다.

"'윈저', '조니워커' 판매 업체, 수입 가격 축소해 관세 피했다"

▲ 디아지오코리아가 양주를 수입하면서 가격을 낮춰 신고했다는 혐의가 있다. ⓒ디아지오코리아 홈페이지.
세계 최대 다국적 주류회사 디아지오의 한국 법인인 디아지오코리아는 '윈저', '조니워커' 등 유명 위스키를 국내에 들여와 판매해 왔다.

관세청은 이 회사가 '이전가격 조작' 수법을 통해 세금을 탈루해왔다고 보고 있다.

'이전가격(Transfer Price)'은 특수 관계에 있는 그룹 내 해외 법인 간 또는 모회사와 현지 법인 간에 원재료, 제품, 용역 등을 이전할 때 적용되는 가격을 뜻한다. '이전가격'을 조작하면, 세율이 낮은 국가에 있는 자회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세금 지출을 줄일 수 있다. 회계 투명성이 낮은 국가에 이익을 넘겨서 비자금을 조성할 때도 쓰이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탈세 수법이지만, 외국에서는 이를 막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꾸준히 강화돼 왔다.

지난 2003년 12월 한국조세연구원이 발행한 "국제조세 회피의 행태 및 경제적 효과 분석"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 본사와 해외 자회사 간 거래는 전세계 무역거래의 3분의 2를 넘는다. 이런 거래는 '이전가격'에 따라 이뤄진다. 결국,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다국적 기업이 이전가격을 어떻게 설정하는지가 개별 국가 세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디아지오코리아는 디아지오 본사로부터 양주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이전가격을 정상가격(통상적인 시장 거래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고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이렇게 되면, 관세 부담이 줄어든다. 이렇게 고의로 빼돌린 관세를 되돌려 받겠다는 게 관세청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디아지오코리아' 측은 "우리 위스키와 원료 수입가격은 이미 2004년 관세청 서울세관의 승인을 받았던 부분"이라며 왜 뒤늦게 문제삼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전가격 조작, 다국적 기업의 상투적 조세 회피 수법

그런데 관세청이 이번에 지적한 사례는 '이전가격 조작'의 다양한 수법 가운데 일부일 뿐이다. 다국적 기업이 이전가격을 정상가격과 다르게 설정해 조세를 피하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다국적기업 한국법인이 이전가격을 정상가격보다 높게 설정한 경우도 문제가 된다. 이전가격을 높게 설정하면, 한국 법인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줄어든다. 줄어든 이익이 증발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가격을 정상가격으로 설정했을 때 발생하는 이익과 한국 법인이 거둔 이익의 차액은 외국에 있는 본사의 이익이 된다. 회사 전체로서는 이익이 줄거나 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 세금이라는 변수를 적용하면 이익이 달라진다. 만약 한국 세율이 본사가 있는 나라의 세율보다 높으면, 다국적기업 전체 법인이 개별 국가들에 내야할 세금 합계는 줄어든다. 대신, 한국 국세청은 이 회사로부터 정당한 규모의 세금을 걷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전가격이 높아지므로 수입 과정에서 관세 부담이 늘어난다. 관세 증감과 세율 차이를 함께 고려해서 계산한 세금 합계가 줄어든다면, 이 회사는 이전가격을 높이려 들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한국 세율이 본사가 있는 나라의 세율보다 낮으면, 이 회사는 이전가격을 정상가격보다 낮출 가능성이 있다. 이익이 한국에서 발생해야 세금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중국에 생산기지 둔 다국적 기업, 납세 실적은?

과거 중국이 이런 수법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80년대 이후, 중국 정부가 시장 개방을 천명하면서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일자리 증가와 기술 이전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부분적으로 옳았다. 그러나 정부 재정이라는 면에서 보면 계산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 2004년 기준으로, 중국에 있는 외자 기업들이 중국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0%를 넘는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이 낸 세금이 같은 해 총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6%에 불과했다. 중국을 생산기지로 활용한 외국 자본이 중국 정부에 지불한 대가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던 셈이다.

대부분 '이전가격 조작'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다국적 기업 본사가 중국 법인에 넘긴 원자재, 부품 등 가격이 정상가격보다 높게 책정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되면, 중국 법인의 생산 원가가 높아진다. 인건비가 싸다는 점으로 상쇄되기 때문에 생산 원가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이 종종 은폐된다. 하지만 부품을 이전한 가격을 정상가격으로 설정한 경우와 비교하면, 생산 원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중국 법인은 명목상 이익이 줄어든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거둘 수 있는 세금도 줄어든다. 이런 구조가 유지되는 한, 외국계 자본에 법적·제도적 혜택을 줘봤자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효과를 거둘 수 없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중국 정부 역시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아챘다.

지난 1991년 중국 국무원이 제정한 '외자기업소득세법실시세칙' 52~58조를 시작으로 중국 정부는 '이전가격 조작'에 대한 과세 규정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이런 노력의 결정판이 지난 2004년 9월 제정된 '관련기업간업무왕래예약정가실시규칙'이다. 총 8개 장 33조로 구성된 이 규칙에는 정상가격 산출방법 사전승인제(APA, Advanced Pricing Arrangement)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정상가격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게 이전가격이 조작됐는지 여부를 판정하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도 이미 다국적 기업…"이전가격 조작 여부 조사해야"

중국 정부의 이런 노력에 비하면, 한국 관세청의 움직임은 때늦은 감이 있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 자본을 무턱대고 반기기만 했던 역사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이른바 '먹튀' 논란을 빚고 있는 쌍용차 사태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 자본에 대해 보다 냉정한 눈으로 보게 만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번 돈은 한국 정부가 세금으로 거두는 게 옳다. 관세청이 다국적 주류회사에 대해 이전가격 조작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반가운 이유다.

하지만, 이런 소식이 꼭 개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국 재벌 계열사 역시 이미 세계 곳곳에 현지 법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 역시 이미 다국적 기업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 하는 짓을 이들 기업이 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국내 재벌 역시 국내외 세율 차이 등을 고려해 이전가격을 조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시도를 하는 기업에게 세금을 어느 나라 정부에 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효성, 일본 현지 법인 수입 가격 조작해 비자금 조성 혐의

관세청이 수출입 가격을 보다 정교하게 감시해야 할 필요성 역시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하지만, 아직은 무리한 주문인지도 모르겠다. 앞서 적발된 이전가격 조작을 통한 비자금 조성 사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그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조 회장의 동생인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둘째 아들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 씨의 남편이다. 한국타이어는 이 대통령의 외아들 시형 씨가 근무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뉴시스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와 검찰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 사돈 기업인 효성은 일본 법인으로부터 부품을 수입하는 가격(이전가격)을 정상가격보다 높게 책정해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가 있다. (☞관련 기사 : 'MB 사돈 기업' 효성 비자금 조성 의혹, "MB가 사돈 비리에서 배울 점", "MB 사돈 비리 수사, 곁가지에만 매달리나", 검찰, 효성 비자금 장부 확보)

디아지오코리아가 이전가격을 낮춰 신고해서 관세를 회피하려 한 경우라면, 효성은 이전가격을 부풀려 신고한 경우다. 효성은 신고가격과 실제가격의 차액을 빼돌려 비자금으로 이용했다. 전자가 관세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후자는 국세를 탈루하기 위한 방법이 된다.

방법은 다르지만, '탈세'를 겨냥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이전가격이 높건, 낮건 정상가격과 크게 다르다면 모두 탈세 혐의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전가격이 높은 경우를 찾아내는 것과 낮은 경우를 찾아내는 것 사이에 기술적 어려움의 차이는 없다.

국내 대기업에 대해서도 엄정한 잣대 들이대야

하지만, 디아지노코리아가 정상가격보다 낮은 이전가격을 신고했다며 문제 삼고 있는 관세청은 높은 이전가격을 신고한 효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이래서는 이전가격을 조작하는 외국계 기업에 대해 정당한 세금을 물릴 명분을 세우기 어려워진다.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사이에 '이중잣대'가 적용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디아지오코리아' 사건을 계기로, 국내 대기업의 이전가격 조작 가능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자본에 국경이 없듯, 조세 회피에 대한 대응도 국적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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