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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네르바 구속…또 '존재의 이유' 망각하나"

[기고] 사법부, 뒤늦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검찰의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관하여 지난 9일 법원이 한 발부결정은 필자를 비롯한 많은 법률가들을 당혹스럽게 했으며 또한 많은 국민들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검찰과 법원이 미네르바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적용한 법조항은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이다. 이 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아직까지 이 조항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몇 건의 하급심 판례가 있는 것으로 필자는 파악하고 있다. 그것도 작년의 촛불 시위 이전에 적용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이하에서는 위 조항의 문제점,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에 발부의 문제점을 살핀 후, 바람직한 사법부의 역할에 대하여 언급기로 한다.

'전기통신설비에 의한 공연한 허위의 통신'의 의미와 미네르바가 쓴 글의 허위성 여부

먼저 '전기통신설비에 의한 공연한 허위의 통신'의 의미를 살펴본다. '전기통신설비'는 전기통신기본법에 정한 바와 같이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송신하거나 수신하기 위한 기계·기구·선로 기타 전기통신에 필요한 설비를 말한다(전기통신기본법 제2조 제1호, 제2호). 대표적으로 컴퓨터와 인테넷회선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공연한 허위의 통신'에서 '공연'의 의미는 불특정 또는 다수가 인식할 상태에 놓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게 글을 쓰는 행위는 공연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허위의 통신'은 '허위'와 '통신'의 의미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통신'의 의미는 전기통신기본법에 정한 바와 같이 유선·무선·광선 및 기타의 전자적 방식에 의하여 부호·문언·음향 또는 영상을 송신하거나 수신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컨대, 전화로 의사소통하는 행위, 인테넷에 의한 글을 주고받은 행위, 전보를 치는 행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허위'의 의미는 증명이 가능한 과거와 현재의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것을 말한다.

단순한 의견의 개진이 '허위의 통신'에 포함되는지는 위 조항의 문언만으로는 명확하지 않지만, 의견의 개진이 처벌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것은 헌법 제21조가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의견의 개진은 여기서 제외된다고 본다. 다만 위 조항이 허위'사실'에 의한 통신이라고 하지 않고 '허위'의 통신이라고 함으로써 그 개념의 모호성을 야기하였는데 이는 표현의 자유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본다.

미네르바 구속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의 빌미가 된 2008년 12월 29일의 '정부 달러 매수금지 명령'이라는 글과 2008년 7월 30일의 '외환 예산 환전업무 중단'이라는 글은 그 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글이라면 위 조항의 공연한 허위의 통신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밝힌 바와 같이, 2008년 12월 26일 재정부 국제금융국이 7개 시중은행 자금관리 간부들을 소집하여 금융기관들의 달러매수 자제를 협조 요청하였고, 같은 달 29일에는 재정부 외환관리 실무자들이 시중은행 전화를 걸어 협조 상황을 확인하였다면(<경향신문>, 2009년 1월 12일 보도), 2008년 12월 29일의 위 글이 허위의 통신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정부가 달러 매수를 금지하는 긴급공문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는 허위일 가능성이 있으나, 그것도 위와 같은 점이 사실이라면 미네르바의 2008년 12월 29일의 글은 전체적으로 보아 허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긴급공문에 의한 달러매수 자체 요청이든, 회의와 전화 확인에 의한 달러매수 자제 요청이든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및 시중은행들에 대한 달러매수 자제 요청이라는 큰 틀에서 양자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외환 예산 환전업무 중단과 관련해서는 시중은행에 맡긴 외화예산 환전 업무에 역마진이 발생하면서 외환 예산 환전업무 2008년 8월 1일부터 일부 중단되기 시작해 9월 1일부터는 전면 중단된 것이라고 재정부 관계자가 확인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문화방송, 2009년 1월 12일 보도),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고 한다면 2008년 7월 30일의 글도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사실일 개연성이 크다고 본다.

'공익(公益)을 해할 목적'에서 공익(公益)의 의미

다음으로 공익을 해할 목적에 대하여 살펴본다. 이 조항을 적용에 있어 가장 난해한 지점이 바로 공익이 무엇인가를 확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익이란 무엇인가? 공익(公益)은 사익(私益)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공공(公共)의 이익(利益)의 준말이다. 공익이 공공의 이익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국어사전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는데, 국어사전은 공공의 이익에 대하여 '사회의 전체에 관계되는 이익'으로 정의하고 있다(교학사, 교학 한국어 사전 참조).

그러면 '사회 전체에 관계되는 이익'이 곧 '공익'이라고 정의된다고 할 때, 사회 전체는 한 국가 또는 사회의 모든 부분을 총괄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인가? 다시 말하여 정치계, 경제계, 노동계, 언론계, 문화계 등 각각의 부분 사회의 이익의 총괄은 이러한 공익에서 당연히 배제되는 것인가? 나아가 어느 지역 사회의 일반적 이익은 이러한 공익에 포함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는다.

미네르바가, "정부와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 약자인 여려 이해관계자들, IMF 외환위기 때 손해를 입었던 소상공인, 개인,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취지에서 글을 썼다"고 글 쓴 목적을 밝혔기 때문에(경향신문 2009년 1월 12일 보도), 이러한 경우 '공익을 해할 목적'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이 아니더라도, 공익 자체에 내재한 개념의 모호성, 추상성 및 상대성으로 인하여 공익의 의미는 여전히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공익(公益)의 추상성, 모호성 및 상대성

오늘날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전체주의 사회나 독재 사회와는 달리 '가치의 상대성'을 받아들인다. 가치의 상대성을 수용한다는 것은 진리가 선험적(先驗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가변적이며 또한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어떤 사회 또는 국가가 추구하는 전체 이익으로서의 공익은 상대적이며,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공익이라는 관념 그 자체를 부인할 사람은 없겠지만,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사람이 공익에 대해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익이라는 개념은 그 가변성, 상대성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밖에 없다.

미네르바에게 적용된 위 조항의 위헌성

국가가 개인에게 형벌을 부과하는 근거가 되는 법률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일내용인 명확성의 원칙에 의한 통제를 받기 마련이다. 이 명확성의 원칙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 법률조항의 의미가 명확하여, 그 조항이 무엇을 금지하고 있는지를 일반인이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입법화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그런데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공익을 해할 목적에서의 공익의 의미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상대적이다. 따라서 일반인의 입장에서 공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인식할 수 없게 된다. 미네르바가, "정부와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 약자인 여려 이해관계자들, IMF 외환위기 때 손해를 입었던 소상공인, 개인,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취지에서 글을 썼다"고 말한 바와 같이, 서민들의 이익을 위해서 위와 같은 글을 썼다면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글을 썼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일반인은 그에 대하여 쉽게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법률전문가일 필자조차도 이를 판단하기가 심히 곤란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이른바 불온통신 위헌소원 사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을 이용하는 자는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1항(불온통신의 단속) 조항 등에 대한 위헌소원심판 사건에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여 표현의 자유 보장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즉,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입법에 있어서 명확성의 원칙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가 불명확한 경우에,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표현이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는 기본권주체는 대체로 규제를 받을 것을 우려해서 표현행위를 스스로 억제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규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 헌법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이라는 불온통신의 개념은 너무나 불명확하고 애매하다.

여기서의 '공공의 안녕질서'는 위 헌법 제37조 제2항의 '국가의 안전보장ㆍ질서유지'와, '미풍양속'은 헌법 제21조 제4항의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와 비교하여 볼 때 동어반복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전혀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공공의 안녕질서', '미풍양속'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어서 어떠한 표현행위가 과연 '공공의 안녕질서'나 '미풍양속'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고, 법집행자의 통상적 해석을 통하여 그 의미내용을 객관적으로 확정하기도 어렵다"라고 하여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1항 등이 위헌이라고 판시한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의할 때, 미네르바에게 적용된 위 조항은 위헌이라고 필자는 본다. 다시 말하여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하는 내용의 통신을 금하는 조항이 위헌이듯이,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금하는 위 조항은 위헌이라고 본다.

미네르바를 구속할 필요성이 있는가?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피의자를 구속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라는 구속의 사유가 존재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01조). 그런데 미네르바가 인터넷에 올린 위와 같은 글과 다른 글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서 올린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등 주거가 일정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 미네르바가 인터넷에 올린 글은 모두 검찰에서 이미 증거로써 확보된 것이므로, 증거인멸의 가능성도 없다. 그리고 미네르바에게 적용된 위 조항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는데, 법정형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실형 선고의 가능성이 그다지 높다고 할 수 없어 도주의 우려도 거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미네르바에게 검찰이 적용한 피의사실이 인정되고 위 조항이 합헌성이 긍정된다고 하더라도,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므로, 마땅히 불구속 수사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게다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위 조항이 위헌성이 충분히 인정되고, 현재 그 조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그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며, '허의의 통신'인지에 대하여 다퉈볼 여지도 충분히 있는 만큼 불구속 수사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더군다나 법원이 강조하는 불구속수사 확대의 필요성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검찰의 무리하고 인권탄압적인 구속영장 청구를 견제하기는커녕 이에 동조함으로써 그러한 검찰의 영창청구를 두둔하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였다고 본다.

인권에 대한 최후의 보루로서의 사법부의 역할

요즈음 간첩사건의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필자가 그러한 보도를 접하면서, 정말로 간첩으로 한평생 낙인찍혀 처절한 삶을 살아온 피해자의 소식을 접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이 드는 것은 그 당시 사법부는 어찌하여 검찰, 안기부 등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를 적절하게 견제하지 못했느냐 하는 것이다. 군부독재의 엄혹한 시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것인가? 한평생 간첩으로 낙인찍혀 가족으로부터 마저 버린 당한 비참한 삶을 산 피해자가 있기에, 그런 변명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네르바 구속영장 발부를 접하면서 간첩사건에서와 같은 독재시대의 사법부의 잘못이 상기된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많은 법률가들이 구속영장 발부에 대하여 우려와 유감을 표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많은 국민들도 그렇다고 본다.

국가권력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나누어 견제와 균형을 이루려는 고전적인삼권분립의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사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견제와 균형을 통한, 행정부의 권한 비대를 적절하게 견제하여 국민의 인권과 자유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파수꾼으로 존재하기 위함이다. 만일 그러한 노력을 방기하거나 게을리한다면 사법부의 존재 근거는 일순간에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는 그러한 사법부에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여, 필자는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끝으로 다시는 사법부의 존재의 이유를 의심하는 판단이 나오질 않기를 바라며, 인권의 파수꾼, 인권의 지킴이로서 더욱 국민의 사랑을 받은 사법부가 되길 바라며 이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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