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 제정 이래 25년째 되는 날이었다. '기념일'인 만큼 평소보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될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는 속된 말로 '생일'과 같은 날일 수도 있겠다. 이를 방증하 듯 언론들은 앞다투어 장애인 관련 기사를 쏟아냈고, 장애인 담당 부처라고 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는 유명 연예인 스타를 섭외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를 올림픽 경기장에서 개최했다.
그러나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는 그 시간,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선 또 다른 장애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날을 3년전부터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이라고 부른다. '장애인의 날'이 비장애인들로부터 시혜와 동정의 날로 머무른 것에 대한 반발이다. 또한 장애인들 스스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장애인의 날' 아닌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이들은 매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종묘 공원 등지에서 '장애인 차별철폐 문화제'를 열어 부당한 차별들에 대해 세상에 소리쳤다.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4회째를 맞은 이날도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오후 12시30분부터 공덕동 로터리 부근에 장애인 단체 회원들과, 이들과 생각을 함께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 정당인, 학생 2백여명이 모여 '장애인 차별철폐 문화제'를 열었다. 트럭을 개조한 연단 위에는 장애인 이동권과 교육권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던 장애인 단체 대표들과 정당인, 노동조합 인사들이 차례로 올랐다.
이들의 발언은 예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상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유독 장애인에게 '가슴 와 닿는' 발전은 없었기 때문이다. 박영희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택시 타기 어려웠던 과거의 기억을 소개했다.
"몇 년전 아는 언니네 집에 놀러갔다 돌아올 때였어요. 비가 내려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그냥 지나치기만 했어요. 휠체어를 트렁크에 싣고, 안아서 뒷 자석에 태우려면 어쩔 수 없이 택시가 비에 젖을까봐 그냥 지나간 것이었겠죠. 장애인이 택시타기 어려운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박 대표의 말 중간 중간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말 못하는 농아 장애인들이 '공감'한다는 의사표시였다. 어떤 이들은 편치 않은 팔을 어렵게 들어올리며 '투쟁'이라고 외치는 모습도 보였다.
한국농아인협회 전승일 대표의 연설도 인상적이었다. 전 대표도 농아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연설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볼 수 있었다. 손과 팔, 다리, 몸을 모두 이용한 격렬한 수화 동작이 한동안 이어졌다. 수화 '통역'을 통해 그의 동작은 말로 옮겨졌다. 그는 장애인에 무심한 정부와 고위 공직자를 비판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국군의 날, 대통령과 영부인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습니까. 장애인의 날, 이 자리에는 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죠? 참여정부가 장애인을 위해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시혜와 동정을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저항은 중단되서는 안됩니다."
'저항하라, 저항하라, 저항하라'는 반복된 그의 외침은 집회 대오의 함성과 함께 공덕동 로터리 일대에 울려 퍼졌다.
***1시간에 5백미터 못 나간 행진...마포대교 점거**
문화제가 끝나고, 행진이 시작됐다. 이들의 목적지는 공덕 로터리에서 마포대교를 지나 여의도 국회 앞이다. 행진은 경찰 병력의 '보호' 속에 이뤄졌다. '대한민국에 장애인 인권은 없다'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맨 앞머리에서 행진대오를 이끌었다. 각 단체의 깃발이 뒤를 서고 왼쪽에는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경찰 병력과 함께 이동했다. 본 대오는 그 뒤를 잇는 행렬이었다.
행진은 속도감이 없었다. 사지가 불편한 장애인들이어서가 아니라 경찰과의 잦은 충돌 때문이다. 경찰은 2차선만 허용됐다며 한 치의 틈도 내주길 거부했고, 전동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애꿎은 경찰 방패에 맞부딪혔다. '공간 확보' 싸움으로 행진 시작 이후 1시간이 지나도록 불과 5백미터도 나가지 못했다.
마포대교 중간 즈음에 이르러서 장애인 단체는 전 차로 점거에 돌입했다. 흐트러진 경찰 병력의 틈새를 순식간에 비집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이들의 행동에 경찰은 무력 진압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적잖은 충돌이 발생했다. 장애인들은 전동휠체어를 무기 삼아 경찰 방패로 돌진했고, 경찰들은 사력을 다해 이들을 저지했다.
대오에 이탈된 집회 참가자들을 집시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경찰들은 연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저항도 거셌다. 마포대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점거 대오와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 병력 뒤로 수많은 차량들의 발이 묶였다.
경찰 통제 차량에서는 연신 '폭력 사용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는 방송이 흘러나왔고, 집회대오는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로 맞받아쳤다. 통제되지 않은 경찰들은 장애인들과 맞부딪혔고, 몇몇 장애인들은 아스팔트에 내동댕이 쳐 졌다. 흥분한 부하 경찰을 자제시키는 상관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충돌은 2~3시간 지속됐다. 장애인 단체와 경찰간 대치는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듯한 순간에 다시 재개됐고, 그 때마다 한 두명이 연행됐다. 집회 지도부는 연행자가 6명이라고 밝혔다. 연행자 대부분은 서울대·성균관대 대학생들이었다.
시간은 출퇴근 시간대인 6시에 접어들었다. 점거로 발목 묶인 차량은 점차 늘어나 마포대교 진입로 뿐 아니라 마포대교 일대가 극심한 교통혼란에 시달렸다. 일부 시민들은 버스에서 내려 보도로 이동했고, 간혹 점거 상태를 빨리 해소하지 못하는 경찰에 항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장애인은 '굳이 도로를 점거했어야 했나'란 기자의 질문에 "노동자가 파업을 통해 사회에 의사표현을 하듯, 장애인에게 도로점거는 파업과 같은 의미"라고 말했다. 파업이나 도로점거나 이 사회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6시30분경 경찰과 장애인단체 양측은 합의하에 1차선 차량 운행에 합의해 그나며 교통 체증은 풀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1차로를 여는 대신 연행자 6명을 풀어주기로 약속했다.
***70여명 장애-비장애인 연행...대오는 경찰서 항의방문**
버스와 승용차가 1차로를 이용해 오갔다. 시간이 흘렀지만 연행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은 대신 당초 목적대로 국회까지 행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장애인 단체는 연행자가 돌아오기 전까지 자리를 뜨지 않겠다며 농성을 지속했다.
8시 무렵. 경찰은 강제 진압을 시도했다.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진압을 작심한 경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다시 아수라장이 된 마포대교. 이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상당수가 연행됐다. 행사 주최측은 70여명이 연행됐다고 말했다.
일단 한바탕 소동 끝에 마포대교 상황은 종료됐다. 연행되지 않은 장애인과 집회 참가자들은 연행된 동료를 찾아 용산 경찰서 등지로 항의 방문을 떠났다.
'장애인의 날'. 이들은 온종일 '투쟁'으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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