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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도 말로써 말 많으니…"

[기자의 눈] 대통령의 추가 금리인하 지시

지난 9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시장·군수·구청장 등 200여 명의 전국 기초단체장을 대상으로 국정설명회를 연 자리에서 "우리 금리가 국제 수준에 비해 높은 편이다. 금리를 더 낮출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이 이제 한국은행의 고유업무마저 챙기려 한다는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금리정책은 정부에 '독립된' 한국은행 금통위에서 매달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대통령이 말로써 월권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한은 금통위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가 압력을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고성장 정책'을 추구하는 현 정권은 집권 초부터 계속해서 여러가지 형태로 한은에 금리 인하 압력을 넣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말로 숱하게 구설수에 올랐다. BBK사태, 여성 비하 발언, 남대문 성금모금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4대강 정비 사업을 두고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존론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의 말실수는 지난 정권과 마찬가지로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금리정책을 두고 대통령이 말 한마디 거들어 시장이 떠들썩해지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역사의 거인들과 세계의 지도자들은 '말'로 남는다. 세종대왕이 그렇고 이순신이 그렇고 링컨이 그렇고 케네디도 그렇다. 철학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말'이 문제고 말썽이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입만 열었다 하면 예외 없이 한바탕 난리가 난다. 채권시장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거기에 이 대통령의 말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더해져 상황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집권 2년차를 맞은 지금 원래 말 좋아하는 그인지라 그의 말 가지고 시비 거는 것은 지겹고 부질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또 친이(親李) 성향 사람들은 "말꼬리 잡지 말고 그 뜻을 이해해 주라"고 한다. 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내년(2008년)에는 주가가 3000까지 가고 임기 내에 5000까지 간다"는 말을 했지만 이제 별로 놀랍지 않을 정도가 되긴 했다. 대통령과 같이 경제를 염려한 비전문가가 전문가적 예측을 했다는 죄목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으니 "이제 세상이 조용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최근 금리 인하에 관한 발언은 그의 말하는 습관,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 즉석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순발력 등을 거론하는 차원에서 끝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선 대통령의 금리에 관한 언급이 정부 차원에서 충분히 논의되고 의견 수렴이 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금리 추가인하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지난 9일 청와대 국정설명회에서의 발언은 발언 그 자체에 문제가 많다. 기준금리는 청와대가 아니라 한은 금통위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그의 발언을 뒤따라가며 주워 담고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느라고 진땀을 빼는 흔적이 역력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의 문제된 발언들이 청와대마저 즉흥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정책 발언을 일삼는 대통령에 따라 청와대 전체가 준비 안 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여당 출신인 김형오 국회의장마저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동의안 단독상정 사례를 예로 "청와대와 국회의 일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총괄적으로 범여권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게다가 이 대통령은 같은 말이라도 굳이 '구라'를 쳐 사람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를 더욱 당혹케 하는 것은 대통령의 '문제 발언'이 있고 나서 어김없이 그의 참모와 여권 관계자들이 부연설명과 해설에 나선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관한 보도에는 으레 청와대 또는 정부 관계자의 "오해다"라는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 대통령이 말을 얼마나 고차원(?)으로 하면, 또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하면 그것을 해명하는 '관계자'들이 따라다녀야 하는가.

해설 차원에 머문다면 또 모른다. 때로는 참모들이 한술 더 떠 말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작년 10월 24일 개최된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사진 찍지마. 이 XX"라고 욕을 해 파문이 일자 문화부는 곧바로 "오해였다"는 해명을 해야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 정부는 출범 전부터 영어몰입교육 사태 때문에 "오해"라는 해명을 국민에게 하곤 했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리더 격인 원희룡 의원은 지난해 12월 16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해 "결론적으로는 피력이 됐다고 생각하고 (대통령의 말을) 믿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국민들이 불신을 하니까 다른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이 분명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라'를 워낙 많이 치는 '왕'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고충(?)을 피력한 셈이다.

언제까지 그의 현란한 듯한 발언에 지겨워하거나 그의 '말솜씨'에 찬사를 보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의 경제와 인권과 정치가 더 이상 리트머스 시험지 신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은 나라의 장래가 걸린 중대한 경제노선과 금리정책은 각 정책결정자가 주도하고 대통령은 개인 생각보다 정부와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조정한 끝에 합성된 정책을 말했으면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대통령은 되도록 개인적 생각이 담긴 즉석 연설이나 즉흥적 발언을 피하고 '진짜' 전문가의 생각과 뜻을 미리 원고화 해서 정확하게 전달해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왜냐하면 이 대통령의 발언 진위를 둘러싼 국민적 논쟁은 국론의 낭비요 국력의 손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생각'을 말릴 방도는 없다. 다만 그 생각이 심사숙고되고 그의 말이 정제되는 과정을 거치기를 바랄 뿐이다.

*위 글은 지난 2005년 4월 25일 <조선일보>에 실린 '[김대중 칼럼] 말로써 말 많으니…'를 패러디했음을 밝힙니다. (☞ 바로 가기 : [김대중 칼럼] 말로써 말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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