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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끝난 숭고한 투쟁의 기록, <작전명 발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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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끝난 숭고한 투쟁의 기록, <작전명 발키리>

[뷰포인트]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신작 <작전명 발키리> 리뷰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전작들, 그러니까 <엑스맨> 두 편과 <슈퍼맨 리턴즈>의 화려하고 스타일리쉬한 비주얼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작전명 발키리>는 다소 당황스러운 영화다. 2차대전 배경의 전쟁영화다운 볼거리는 영화 초반 주인공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이 튀니지에 있다가 연합군의 공습을 당하는 장면 단 하나뿐, 그가 베를린으로 전출된 뒤 이어지는 사건들은 오롯이 은밀하고 치밀한 음모를 계획하고 구성하는 데에 치중한다. 폭탄이 터지는 장면도 단 한 장면, 거기에 총이 화면 정면에 제대로 등장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카메라워킹과 편집은 건조하고 브라이언 싱어 식의 재치있는 농담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의 갈등이나 고뇌 같은 것도 없다. 영화의 첫머리에서부터 히틀러의 악행은 독일을 배신한 것이라는 슈타펜버그의 확고한 판단과 가치판단이 내레이션으로 제시된다. 그에겐 함께 행동할 사람인가, 아닌가의 판단만 남는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마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나 고뇌 역시 중요한 논점이 아니다. 슈타펜버그가 아내와 함께 하는 씬은 오로지 세 씬이며, 그마저 대사가 거의 없이 눈빛과 표정으로 감정을 교류할 뿐이다.그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것도 단 한 씬, 그나마도 가족과 오랜만의 상봉을 축하하거나 석별의 정을 나누는 정서적인 장치는 극히 최소한으로만 삽입돼 있다.

▲ 작전명 발키리

그런데 우리는 브라이언 싱어가 슈퍼히어로물 이전에 <유주얼 서스펙트>와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과 같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화려한 CG나 다종다양한 트릭으로 감각적인 화면을 만드는 것 외에도, 고전적인 영화 문법을 활용해 스릴러를 만드는 데에도 아주 능숙한 감독이다. 그리고 매우 경제적인 몇 컷으로도 인물들의 감정을 매우 효율적으로 드러내며, 캐릭터들 역시 복잡하든 다소 단순하든 신뢰감이 가는 인물들로 그려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그의 아내와 함께 등장하는 단 세 씬만으로, 우리는 그와 아내가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이들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신뢰하며 사랑하는가, 그리고 아내가 그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가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이 등장하는 씬도 마찬가지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슈타펜버그와 아내의 미세한 표정 변화, 그리고 귀를 울리는 바그너의 음악 발키리, 곧이어 시작되는 공습의 소음과 약해지는 거실 샹들리에의 불빛, 어두운 방공호 안에서 아이를 응시하는 그의 표정 등 이 씬은 짧은 컷들 몇 개로 구성돼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와 가족관계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그가 히틀러를 암살할 묘안을 착상하는 계기가 되는 씬으로도 기능한다. 매우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씬이면서도 정서적인 부분에 대해 놓치는 것이 없다. (폴 버호벤 감독의 <블랙북>에서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카리스 반 후텐이 슈타펜버그의 아내로 출연해 비중은 작지만 강렬하고 설득력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 작전명 발키리

실화에 바탕한 영화답게,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작전의 전개와 실행에 집중해 깔끔하고 속도감있게 이야기를 진행하는 한편, 카메라 워킹이나 조명, 색채, 음악에서 분별있게 절제하는 대신 편집에 공을 들임으로써 영화의 품격을 높였다. 감독의 야심은 이른바 발키리 작전을 얼마나 화려하게 재현하느냐보다는, 독일 내에도 분명히 존재했던 레지스탕스의 주역들을 널리 알리고 대중적인 차원에서 복권하고 기리는 데에 있는 듯 보인다. 사실 <작전명 발키리>는 슈타펜버그 한 명의 개인 영웅담이 아니라, 트레스코프와 올브리히, 벡, 괴들러, 펠기벨, 비츠레벤, 크뷔른하임, 해프텐 등 주요 이 작전에 참여한 핵심멤버들의 고독한 결단과 실천을 골고루 부각시키는 영화다. 또한 히틀러는 물론 그의 편에 서는 프롬, 레메, 브란트와 같은 인물들 역시 명확하게 그 존재감을 그려내며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를 위해 빌 나이히부터 케네스 브래너, 에디 이저드, 테렌스 스탬프, 톰 윌킨슨 같은 관록있는 배우들과 톰 홀랜더, 제이미 파커 같은 유망한 젊은 배우들이 크고 작은 역을 맡아 제몫을 해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우직하게 단순한 면은 있어도 결코 평면적이거나 몰개성적이지 않다.

나아가 감독은 이들의 작전 실행 과정을 매우 긴박하게 그려내면서 특유의 '스릴을 만들어내는 솜씨'를 뽐낸다. 총 두 번에 걸친 작전 시도, 그리고 두 번째 작전을 진행하면서 히틀러의 죽음을 선언한 뒤 베를린을 접수하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상황들, 그리고 결국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과정을 세세히 그리면서도 조금도 긴장을 늦출 새 없이 묘사해낸다. 그 와중에 이 작전이 군 엘리트들에 의해 주도된 작전으로서 태생적으로 갖고 있었던 명백한 한계 역시 드러내 보인다. (영화에 의하면 슈타펜버크는 이 위험을 처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히틀러 하나 죽인다고 과연 전쟁이 끝나는가? 그의 뒤에는 그를 추종하는 수많은 군인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예비군 11지역 장교와 통신대 장교가 히틀러의 편에 서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결국 작전은 실패를 맞는다.) 2차대전 중 수행된 가장 커다란 실패를 담으면서도, 감독은 섣부른 신파나 감정 과잉에 빠지지 않은 채 시종일관 지적이고 냉정하게 영화의 템포를 조절해가며 끝을 향해 달려간다.

역사의 뒤안길에는 무수한 영웅들이 있었지만, 그 숭고한 목적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이들은 종종 너무 쉽게 잊혀진다. 이 영화는 그들을 우리 눈앞에 하나하나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는 단순히 애국심을 강조하거나 불굴의 희생과 용맹을 선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직한 목소리로, 이런 사람들이 이런 시도를 했었다고 증언할 뿐이다. 그럼으로써 보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들의 숭고함을 통해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어떤 이는 자신의 손 스스로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지 못해 결국 연합군에 항복한 뒤 독일이 맞이한 전후 비극과 지금까지 남은 트라우마를 상기하며 교훈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슈타펜버그를 비롯해 이 작전에 참여하며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고자 했던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군복 역사상 가장 멋진 디자인으로 수위에 꼽히는 나치 군복을 근사하게 소화하는 남자배우들의 자태를 '아무 죄책감 없이' 감탄하며 보거나 나치의 주제음악처럼 여겨지곤 하는 바그너의 명곡 '발키리'를 그 오명의 흔적을 상당 부분 지운 채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선사하는 최대의 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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