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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산업 막일꾼'의 피맺힌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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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30년 산업 막일꾼'의 피맺힌 절규

[현장] "허허, 검찰이 나보고 빨갱이라 합디다"

“68년 여수 호남정유에서 견습공으로 건설현장에 몸을 담기 시작한 지 벌써 3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고리원자력발전소 1~6호기 공사, 울진 원자력발전소 공사뿐만 아니라 사막의 모래폭풍을 이기고 이라크까지 가서 일했습니다. 산업역군이라는 말에 우쭐도 했지만, 이제 저보고 빨갱이라고 합디다.”

15일 오전 노동관련단체와 인권단체 등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마련한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 사태 진상 보고대회’에 참여한 오금철씨(58)는 그동안 가슴속에 묵혀왔던 울분을 토해냈다. 오씨는 30년동안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건설일용 기능공이다.

***먼지구덩이에서 밥먹기**

오씨가 난데없이 ‘빨갱이’로 몰린 것은 울산지역 건설플랜트 노조의 파업에 참가하면서부터다. 플랜트 노조는 SK(주), 삼성정밀화학 등으로부터 발주 받아 공사를 진행하는 58개 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지난해 6월부터 14차례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거부된 뒤 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를 거쳐 지난 3월 18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오씨는 먼저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건설 일용기능공들의 그동안 열악한 근무조건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 정도로 근무조건은 심각했다.

“새벽밥 먹고 현장에 와서 옷갈아 입을 장소가 없어 도로에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습니다. 쇳가루, 시멘트가루 날리는 난장에서 비가 와도 피할 곳 없이 밥을 먹습니다. 그것도 제 돈으로 먹습니다. 하루 일 마치고 땀에 흠뻑 절어도 손 씻을 세면장 하나 없습니다. 화장실이 없어 일을 봐도 뒤처리는...말도 하지 마세요.”

“화장실 한 번 당당하게 가보자. 먼지구덩이·쇳가루라도 털고 퇴근해보자, 월차 수당 받아보자, 깨끗한 식당에서 밥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노조를 만들고, 교섭 요구하고, 파업까지 했습니다. 가방 끈이 짧아서 근로기준법이 뭔지 모릅니다. 하지만 부당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지켜지지 않은 법규**

오씨가 “말하자면 끝도 없다”는 사측의 각종 불법행위에 대해, 최명선 건설노조연맹 정책부장이 대신 상세히 설명했다. 최 부장에 따르면, 사측은 근로기준법 위반은 물론, 밥값중간 갈취, 건설산업기본법위반 등 위법행위는 말 그대로 끝이 없었다.

“근로계약서를 제대로 써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백지에 서명을 했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태반이었죠. 퇴직금을 받아본 사람은 드물고, 근로기준법 상의 주휴, 연차휴과, 초과근로수당, 휴업수당 등 각종 법정 수당 지급은 애초 이들에게는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점심을 제공하기는 커녕, 1끼당 3천5백원을 임금에서 공제하면서, 도시락 업체에게는 2천5백원으로 계약해 밥값을 사실상 갈취하기도 했습니다.”

보다 심각한 것은 노동자의 생명과 작업의 안전을 위한 관련 법규가 전혀 지켜지지 않는 점이라고 최 부장은 말했다.

“쇳가루, 발암물질인 석면 등 유해물질이 다량으로 포함된 분진 속에서 작업을 하지만, 사업주들은 법에 규정된 작업 안전 측정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업주 의무사항인 안전화 구입 비용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기타 안전보호구는 지급하지도 않았으면서 허위로 지급받은 것으로 조작했습니다. 지급한 안전장구도 낡고 불량한 것이 태반이었습니다. 산업재해를 은폐해 대부분 공상으로 처리하고, 아예 보상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난해에만 울산지역 플랜트 건설현장에는 삼양제넥스 폭발사고로 2명 사망, 바스프 폭발사고로 5명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최 부장의 주장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이 파업 불참 서약서 작성 강요하기도**

비인간적 근무환경, 파업의 정당성을 담담하게 말하던 오금철씨는 파업 이후 공권력에게 당했던 기억을 되짚는 순간에는 굵은 눈물 방울을 떨궈냈다.

“파업 22일차, 사용자들의 계속된 교섭 회피를 방관하던 울산시청에 항의방문을 갖다, 경찰들에게 무차별 연행됐습니다. 이날 구속만 9명, 불구속 입건 1백10명, 연행 8백25명입니다. 다음날 신문에는 우리가 시의회장을 점거해 연행은 피할 수 없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우린 주차장에 그냥 모여있었는데 뒤늦게 경찰들이 무차별 연행을 시작하자 몇몇 동료들이 시의회장으로 밀려들어갔을 뿐입니다.”

연행된 이들에게 “파업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경찰이 강요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경태씨(45)는 “해도 너무 한다”는 심정으로 반성문을 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당신들 행위는 모두 불법이니까 다시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면 빨리 풀어주겠다고 경찰들이 말했습니다. 저는 근로기준법 준수하고, 월차 수당 지급 해달라는 요구가 불법이라면 다시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썼습니다.”

“다른 경찰서로 연행된 동료가 말하길, 반성문을 목에 걸고 사진을 앞뒤로 찍기도 했다고 합니다. 배운 것이 없어서 조목조목 따지지 못했지만, 자존심 상하고, 굴욕적인 일이었습니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반성문·서약서 작성을 경찰이 요구할 수 있냐’는 질문에 “과거 발전노조 파업 당시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파업을 조기에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인데, 법적 근거는 전무하다”고 말했다. 즉 경찰이 탈법행위를 저지렀다는 지적이다.

***"검찰, '노동해방'이란 표현 쓴 것을 보니 불순 사회세력이 개입한 것"**

플랜트 노조원들은 급기야 검찰에 의해 '불순 사회세력'이라는 낙인까지 찍히기도 했다. 오금철씨가 '빨갱이' 취급 받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린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다.

민주노총 법률원에 따르면, 울산지방 검찰청(담당검사 윤대해)은 플랜트 노조원 구속영장에서“노조가 노동해방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불순 사회세력이 개입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노조가 집회 현장에서 외치는 구호와 유인물에 '노동해방'이란 표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오씨는 전했다.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그러나 이와 관련,“노동해방이란 표현은 노조들의 집회에서는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상징적’ 표현이자 구호에 불과하다”며 “이를 빌미삼아 플랜트 노조원들을 불순 사회세력으로 매도하는 것은 전형적인 공안적 시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노동해방이란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불순 사회세력이 개입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안검찰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보고대회에 주어진 시간은 단지 1시간30분. 건설일용기능공으로 노동을 하며 경험했던 부당한 처우와 파업 진행과정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플랜트 노조원들과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보고대회 이후 파업 이후 발생했던 다양한 인권침해 소지 여부를 문의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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