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걸렸다. <조선일보>의 6일자 톱기사는 '폭력에 굴복한 민의의 전당'이다. △쇠로 된 원통형 경계라인 봉을 들고 국회의장실로 돌진하는 강기갑 △박계동 사무총장실의 원탁 위로 뛰어올라 발을 구르는 강기갑 △국회의장실을 경비하던 경위의 넥타이를 잡아챈 강기갑 등 세 개의 사진도 나란히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조선닷컴 |
그냥 해보는 엄포가 아닌 것 같다. '강기갑 죽이기'를 기를 쓰고 해야 할 이유와 목적이 있다면 어물쩍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강기갑 대표가 거리와 국회를 매개하는 매우 희귀한 정치인인 탓에 그렇다.
'거리의 강기갑'은 촛불의 정치적 아이콘이다. 강 대표를 핏대만 세우고 기물을 때려부수는 '막무가내 난동꾼'으로 딱지붙여 국회에서 내쫓겠다는 건 '거리의 강기갑'을 말소시키겠다는 것과 진배없다. 여권과 보수언론이 다가오는 '제2의 촛불'과의 전쟁에 대비한 프레임 짜기를 시작했고, 강 대표를 제물로 낙점했다는 의심을 살만하다. 민노당 우위영 대변인은 "강기갑 대표는 진보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꼬투리를 잡아서 진보운동을 탄압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면 온갖 험한 말로 강 대표를 직접 비난한 안경률 사무총장보다 홍준표 원내대표의 발언이 국면에 부합한다. 그는 "지금 일부 법안을 두고 마치 촛불사태 때처럼 소위 진보 좌파들이 결집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진보 좌파들의 저항을 두려워하지 말고 돌파해야 한다"고 했다.
홍 원내대표말고도 요 며칠 여권 주요 인사들의 발언 뒤에는 촛불이 어른거리는 경우가 부쩍 많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방송법 개정 반대론을 "광우병 파동 때처럼 상당히 비합리적 선동"이라고 했다. 친이계 강경파를 대표하는 안상수 의원은 "2월은 노동자 춘투나 한미 FTA 등으로 정부 반대세력이 집결하는 시점이어서 사실상 쟁점법안 처리가 힘들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1월 임시국회를 재소집해 2월이 되기 전에 '입법 전쟁'을 종료하겠다고 조급증을 보이는 것도 '다음 전쟁'을 대비한 포석이다. 쟁점법안 처리→여권 진용개편→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 세리모니가 깔끔하게 연결돼야 촛불 저지선을 효과적으로 칠 수 있다. 이 싸움이 결국 4월 재보선의 분수령이 될 것임은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의 명운과도 직결된다.
어차피 '제2의 촛불'이 불가피하다면, 맞서는 도리밖에 없다. 여권의 눈에 강기갑 대표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으로 가는 길목에서 '촛불=폭력'으로 딱지붙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회사무처는 "다시는 폭력을 행사하면서 이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위장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1차 촛불정국에서 정부당국이 귀가 닳도록 해댔던 주장과 똑같다.
이미 임채진 검찰총장도 새해 시무식에서 '국법질서 확립'을 3대 역점사항 중 하나로 강조하며 "지난해 불법과 폭력으로 얼룩진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면서 "친북 좌익이념을 퍼뜨리고 사회혼란을 획책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제2의 촛불 대응 지침을 내린 바 있다.
공교롭게 이날 검찰은 강기갑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1심 판결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