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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벤처 청년들, '전태일의 꿈'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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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IT 벤처 청년들, '전태일의 꿈'과 만나다"

['사회적 기업'에서 희망 찾기·(上)]

'실업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봄쯤 청년 실업자들과 퇴출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제2의 촛불시위'를 막는 데만 관심이 쏠린듯하다. 실업자들을 위해 일자리로 정부가 내놓은 것은 토목, 건설 사업이 고작이다. 뉴딜정책이 추진된 1930년대 미국과 달리, 요즘 건설현장에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나마 생겨난 일자리도 일용직 비율이 높다. 정부가 추진하는 토건사업이 만들어 낼 일자리가 매우 불안정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의 초점은 일자리의 '양'에만 맞춰져 있다.

이런 식으로 설령 일자리가 늘어난다 해도 한국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 위기 극복의 관건은 내수 진작인데, 일자리가 불안한 이들은 번 돈을 움켜쥐고만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일자리의 '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질 좋은 일자리'는 어디에서 나올까. 당연히 '질 좋은 일터'에서 나온다. 결국, 이런 일터를 많이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신규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그랬다. 위기가 고비를 넘긴 뒤, 당시 정부는 벤처 창업을 장려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려 했다. 물론, 이런 시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다. 그러나 신규 창업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문제는 '어떻게'다. 외환위기가 지나간 1990년대 말에는 전 세계적인 정보기술(IT) 호황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전 세계적인 동시 불황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창업에 나서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렇다면, 방법이 전혀 없을까. 일각에서는 '사회적 기업'이 한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한다. 무리한 거품 경제에 기댔던 상당수 IT 벤처기업과 달리, '사회적 기업'은 착한 소비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유형에 가깝다. '알뜰하지만 의미 있는' 소비에 기대는 이런 기업은 거품이 꺼진 시대에 잘 어울린다.

'사회적 기업'에 관한 짧은 기획을 마련했다. 첫 번째 글에서는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일터에 다가가려는 기업 사례를 통해 '사회적 기업'의 의미와 가능성을 살폈다. <편집자>

"그저 따뜻한 미담 사례로만 소개되는 것은 싫다."

어떤 독자들에겐 이런 반응이 조금 의외일 수 있겠다. 이곳을 다룬 기사를 여러 번 만났던 독자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이런 기사에서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박사'라는 구절은 빠지는 법이 없다.

이어지는 내용도 대부분 비슷하다. 1970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왔다는 이야기, 그리고 오빠가 자신을 불태워 알렸던 봉제공장의 열악한 현실은 30년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는 이야기가 뒤따른다. 이런 절망을 딛고 오빠가 생전에 꿈꿨던 노동조건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실제로 봉제공장을 세웠다는 설명이 다음 순서다. 서울 동대문에 있는 봉제기술학교 '수다공방'과 장충동에 있는 의류제조업체 '참 신나는 옷'에 관한 기사는 대개 이렇다.

"전태일이 꿈꿨던 공장도 '지속가능'하다"

▲ 전순옥 '참 신나는 옷' 대표. ⓒ프레시안
그런데 김진화 '참 신나는 옷' 부사장은 이런 보도가 조금 불만스럽다.

'참 신나는 옷'은 복마전 같은 의류시장에 뛰어든 '기업'이다. 자선단체도, 사회운동단체도 아니다.

이런 기업이 그저 '미담 사례'로만 소개되는 한, 전태일 열사가 생전에 꿈꿨던 공장의 모습은 현실과 영영 만날 수 없다는 게 김 부사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방식으로 운영하는 기업도 꾸준히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지난 5일 전순옥 '참 신나는 옷' 대표를 만났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기자는 "이런 사업이 갖는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묻고 싶다고 했다. '가능성'이라는 낱말에서 전 대표가 반색을 했다. 냉큼 말을 받아 이어간 그에게서 좋은 일자리는 지속가능한 일터에서만 나온다는 설명이 쏟아졌다. '의미'만으로는 오빠인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공장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 지원 없이 버틸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이 '질 좋은 일자리' 만든다

이런 설명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그의 생각과 떼놓을 수 없다. 노동부는 지난달 30일 '사회적 기업'으로 64곳을 인증했다. '수다공방'에서 기술을 익힌 노동자들의 일터인 '참 신나는 옷'도 여기에 포함됐다.

전 대표는 "'사회적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은 결국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생각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기관, 그래서 정부가 지원해야 할 곳"이라는 수준에 그치는듯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정부 지원 없이 버틸 수 없는 '사회적 기업'은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하기 힘들다. 또, 일자리의 안정성도 떨어진다. 결국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그치기 십상이다. 질 좋은 일자리와는 거리가 멀다.

전태일의 기록…'모범업체 설립의 구상'

물론, 이익을 꾸준히 내서 넉넉한 임금을 안정적으로 준다고 꼭 질 좋은 일자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적절한 노동시간,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해롭지 않은 노동조건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사회적 기업이 추구하는 질 좋은 일자리가 되려면, 여기에 몇 가지가 더 필요하다.

우선, 노동과정 및 노동의 결과물이 사회와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김방호 '참 신나는 옷' 기획실장은 "일상적인 영업 활동이 사회정의와 공익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게 '사회적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참 신나는 옷'처럼 의류업체라면 유기농 면화로 만든 옷감에 친환경적인 염료를 쓰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또, 로비로 얼룩진 부당한 영업 관행을 거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기업 경영과 이윤 분배에 민주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참 신나는 옷'에서는 매주 화요일 아침마다 사원 전체가 모임을 갖는다. 회사 안팎에서 벌어진 일들을 공개하고 토론하는 자리다. 그리고 <참 신나는 수다>라는 소식지를 매주 낸다.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꿈꿨던 공장에 다가가기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태일 열사는 대학노트 30매 분량으로 '모범업체 설립의 구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전순옥 대표가 '수다공방'과 '참 신나는 옷'을 세우게 된 계기도 오빠가 남긴 기록이었다.

<전태일 평전>에 소개된 기록을 보면, "미싱 50대, 종업원 157명, 미싱사 급여 월 3만 원, 교사 5명을 월 급여 2만 5000원에 고용해 직공 교육, 8시간 노동"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참 신나는 학교'…공장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

공장에서 교사를 고용해 교육을 한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아무리 쾌적하고, 급여가 많더라도 일 속에서 노동자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질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다. 기술 능력을 끊임없이 높여갈 수 있는 교육, 세상을 보는 눈을 보다 크게 뜨게 해주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참 신나는 옷' 관계자들이 신경 쓴 것도 이 대목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강연을 한다. 봉제기술학교인 수다공방을 모태로 삼고 있느니만치 일상적인 기술 교육도 충실하다.

이와 함께 '참 신나는 옷' 에서는 노동자들의 자녀 교육 문제도 회사가 함께 풀어간다. 봉제공장에는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들은 14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녀 보육 문제는 이들의 최대 고민거리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수다공방이 만든 게 방과 후 공부방 '참 신나는 학교'다. 서울 창신동 근처의 초등·중학교 학생 35명이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만화 그리기 등 다양한 특별 활동을 한다.

노동자가 인간적인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일터, 노동자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익히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시설, 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이 서로 한 묶음이 될 때, 전태일 열사가 꿈꿨던 일터 공동체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수다공방 식구들의 생각이다.

"근로기준법 지키는 봉제공장도 정당한 급여 줄 수 있다"

▲ '참 신나는 옷' 작업장 내부. ⓒ프레시안
이쯤 되면 궁금증을 더 이상 억누르기 힘들어진다. '참 신나는 옷' 노동자들은 한 달에 얼마쯤 벌까. 30명쯤 되는 직원은 모두 정규직이다. 봉제사들은 한 달에 180만~250만 원쯤 번다. 다른 봉제공장에서 '시다'라고 불리는 보조 봉제사들이 이곳에서는 '제자'라고 불리는데, 이들은 한 달에 140만 원쯤 받는다.

그리고 주5일제와 하루 8시간 노동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경영진의 소득도 노동자와 차이가 없다. 이 회사는 지난해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단체복, 이스타 항공 승무원 유니폼, 현대기아차 그룹 글로벌 청년단 유니폼 등을 주문 제작해서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었다.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문을 연 회사치고는 성공적인 경영을 해 온 셈이다.

물론, 이 회사의 급여는 대기업에 비하면 미미하다. 하지만, 동대문 일대에 있는 다른 봉제공장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급여다. 대부분 비정규직인 다른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한 달 평균 소득은 130만 원을 조금 넘는다. '시다'가 아니라 수십 년 경력을 가진 봉제사 임금이 그렇다. 이들 중에는 미싱 한 대 가진 '객공'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일감이 있으면 불려가서 일하고 일감이 없으면 자동해고 된다.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고용형태인 셈.

"이익은 사회와 함께 나눈다"

▲ '참 신나는 옷' 작업장 외부. ⓒ프레시안
여기까지만 보면, '참 신나는 옷'의 시도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공장을 가동한 지 이제 겨우 석 달이 지난 회사가 성공을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월 설립됐지만, 미싱 10대를 갖춘 공장이 문을 연 것은 그 해 10월 1일이다. 개업식은 그보다 일주일 뒤에 했다. 회사 설립부터 공장 가동까지는 주로 서류 작업이 진행됐다.

김방호 기획실장에 따르면, 공장이 가동된 후 지금까지 매출 합계는 약 4억 원이다. 인건비, 재료비 등을 제외하고도 이익을 낼 수 있었다.

이 회사 정관에 따르면, 이익의 3분의 2는 사회에 환원하도록 돼 있다. 나머지 3분의 1 가운데 일부는 회사에 재투자되고, 나머지는 노동자들에게 분배된다.

재투자 비율이 높기 어려운 구조인데, 이런 기업이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전순옥 대표와 김진화 부사장 모두 자신만만했다. 이런 낙관에는 이유가 있었다.

"몸으로 기술 익힌 '숙련 노동자'가 경쟁력이다"

김 부사장은 "의류 제조업에서 기계로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오랜 세월 속에서 사람의 손에 스며든 기술이 승부를 가른다는 것이다. 이런 승부처에서 이 회사가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것.

전 대표 역시 비슷한 설명을 했다. 이런 내용이다. "한국 봉제 산업은 1980년대까지 저임금에만 의존하는 구조였다. 1990년대 들어 봉제공장이 대거 중국으로 옮긴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더 싸니까 그걸 보고 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한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저임금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연한 이야기다. 미숙련 저임금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대부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 자동화 기술이 발달할수록 공장이 중국으로 옮겨가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결국 산업의 승부는 미숙련 노동자도, 기계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서 판가름 난다. 평생 몸으로 기술을 익힌 숙련 노동자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시다'가 아니라 '제자'…대화하는 공장에 기술이 쌓인다

그리고 일터 문화가 민주적이고 개방적일수록 사람의 손에 섬세한 기술이 스며드는 데 유리하다. 봉제 기술은 책을 읽어서 배울 수 없고, 박사 학위로 보증할 수도 없다.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워야하는데, 민주적인 일터가 숙련노동자의 경험과 생각을 함께 나누기에 유리하다.

실제로 이 회사 작업장에는 권위적인 서열 문화가 없다. '시다'를 '제자'라고 부르는 데서도 엿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주문받은 물량을 납기일에 맞추지 어려운 상황이 되면 관리자가 생산직 노동자들을 호되게 다그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리고 숙련도가 떨어지는 노동자가 봉제기술을 손에 익히도록 하려면, 때로는 엄하게 규율을 세워야 할 때가 있지 않을까.

제조 현장을 이끄는 신현섭 생산부장은 메모가 빼곡한 수첩을 내밀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문제들을 꼼꼼히 기록한 뒤, 이걸 바탕으로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아직까지는 큰 갈등 없이 현장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

높은 품질은 '달콤한 일터'에서

▲ '참 신나는 옷'이 생산한 단체복들. ⓒ프레시안
'숙련 노동자'가 가장 큰 자산이라는 공감대는 이 회사가 만든 옷의 품질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전순옥 대표는 높은 품질을 바탕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만드는 단체복의 브랜드 명은 '스위트숍'(Sweet Shop)이다. '달콤한 일터'라는 뜻이지만, 노동자의 땀을 착취하는 일터를 뜻하는 '스웨트숍'(Sweat Shop)을 비꼰 표현이기도 하다.

천연소재로 만든 옷감에 천연염색을 한 제품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면 머지않아 고급 브랜드로 자리 잡으리라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생각이다.

"노동자 착취하고, 소비자 속이는 기업은 오래 못간다"

그렇다면 가격이 비싸질 텐데? 전순옥 대표는 "정당한 가격을 받는 게 옳다"고 대답했다. 이어 그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소비자를 속이면서 싼 가격에 파는 방식은 오래 못 간다"라고 했다. 아토피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옷을 팔면서 싼 가격만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를 '속이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또, 하루하루 끼니를 넘기기에 급급한 노동자는 '장인'이 될 수 없다. '장인'이 없는 공장에서 만들어낸 옷의 품질이 뛰어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 대표가 노동자에게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해주는 공장이어야만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그래서다. 전 대표의 이런 생각을 '이상론'이라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 대표는 오빠와 마찬가지로 봉제공장 시다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는 뛰어난 손재주를 갖고 있는 기술자가 계속 성장하지 못하게끔 하는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1960~70년대 서울 동대문 일대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던 사장들은 큰 부자가 됐다. 노동자들에 게 자신의 저녁 한 끼 비용만큼 월급을 준 대가였다. 그런데 그렇게 경영한 결과가 어떤가. 30년이 넘게 지나도 동대문 일대 봉제공장에서 나오는 제품 수준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경쟁력도 생긴다."

"저임금-저품질 악순환 고리를 끊자"

▲ '참 신나는 옷' 사무직들. 사진 오른쪽 마지막이 김진화 부사장, 왼쪽 두 번째가 김방호 기획실장. ⓒ프레시안
김진화 부사장 역시 전 대표와 생각이 비슷하다. 그도 전 대표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걸까.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 30대 초반인 김 부사장은 1995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어 그는 한 정보통신 벤처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인터넷 포털 업체 '다음'에서도 일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 대표와 사뭇 다른 이력이다.

김 부사장이 봉제공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음'에서 근무하던 지난 2006년 육아 휴직을 신청하면서부터다. 회사를 쉬는 동안, 그는 친구와 함께 남성복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을 하면서 그는 저임금 노동자가 장시간 일하면서 저품질 제품을 만드는 의류 산업의 악순환 구조를 지켜봤다.

또, 의류 제조업으로 번 돈을 부동산 등 엉뚱한 곳에 투자하는 사장들도 많이 봤다. 임금을 쥐어짠 대가로 얻은 이익이 노동자와 해당 산업으로 흐르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노동자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의류 산업의 수준 역시 어느 선 이상을 넘기 힘들다.

"'의미 있는 일' 하려면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런 경험 속에서 그는 전순옥 대표와 만났다. 서로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온 전순옥 대표와 그가 봉제공장의 열악한 현실이라는 지점에서 만난 셈이다.

기존 기업의 문화와 사업 행태에 실망했던 그는 수다공방에서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떴다.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는 기업 활동의 가능성이다.

'참 신나는 옷'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김방호 씨도 비슷한 이력을 거쳤다. 그는 인터넷 포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에서 일했다. 좋은 직장이었지만, 늘 답답했다. '밥벌이'와 '자아실현'이 제 각각인 현실 때문이다. 김 실장은 "예전에는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늘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게 참 싫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출근 시간이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하는 순간이 되도록 하고 싶어서"라고 수다공방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 동아리 선후배 사이인 김 부사장과 김 실장은 닮은 점이 많다. 한국 인터넷 산업을 대표하는 양대 기업에서 일했다는 점만이 아니다.

"'공무원' 되면, '불안'에서 벗어날까?"

이들은 모두 1990년대 중후반에 대학에 입학해서 학생운동을 했다. 학생운동 진영이 대학 사회 안에서 주류에서 밀려난 지 한참 지났을 때다. 대신, 당시에는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다양한 흐름이 대학 사회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벤처 열풍을 겪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벤처 열풍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컸다. 창의적인 발상과 기술로 시장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도전과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는 기존 대기업과 관공서에도 의미 있는 자극이 됐다. 불과 몇 년 전이지만, 대기업 입사와 공무원 시험 합격이라는 좁은 문으로만 젊은이들이 쏠리는 지금과 많이 다르다.

이제 30대 초·중반이 된 김 부사장과 김 실장은 '386세대'와도, '88만 원 세대'와도 다른 이력을 거쳤다고 여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20대 후배들에게 할 말이 많다.

또래 직장인과 20대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정서로 김 부사장은 '불안'을 꼽았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쓴 상황에서 미래가 불안하니까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과 '재테크'에 몰두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이 된다고 해서, '10억 만들기' 재테크에 성공한다고 해서 영혼을 갉아먹는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직장'에서 스스로 나온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머니게임 벤처' 대신 '의미 있는 일' 찾아 창업하길…"

평생 남과 경쟁하며 '좁은 문'만 바라볼 수는 없다.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골라 뛰어드는 선택을 영원히 미룰 수는 없다. 불안에 쫓기며 선택을 미루느니보다 젊은 시절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게 낫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벤처' 창업 열기에 대해서도 꼭 나쁘게만 보지 않는다. 착실히 기술력을 쌓아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가 정신보다 '머니게임'에만 몰두했던 이들이 잘못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창업에 나서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 역시 건강한 기업가 정신을 갖춘 신규 창업자가 늘어나야 할 이유로 꼽힌다.

"386세대와 달리, 요란하지 않게 새로운 도전을"

하지만 2000년대 초 잔뜩 나타났던 젊은 사장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이런 경험이 생생한데, 다시 신규 창업을 장려하는 게 효과가 있을까. 더구나 '의미 있는 일'로 돈을 버는 기업을 세우도록 권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가 얼마나 될까. 김 부사장의 대답을 옮기면 이렇다.

"물론, 몇 년 전과 같은 벤처 열풍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시 많은 벤처기업이 '도덕적 해이'에 빠졌고, 그래서 심각한 부작용을 남겼다. 이와 다른 형태로 창업을 장려하는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기업이 활동하고 있는 영국에는 5만 5000곳 이상의 사회적 기업이 있다. 영국 노동자 가운데 약 5%가 사회적 기업에서 일한다. 사회적 기업이 고용하는 인구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사회적 기업의 역할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 젊은이들이 모두 공무원 시험만 쳐다봐서는 미래가 없다.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사회적 기업은 이런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존 기업의 관행에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창업에 뛰어들어 대부분 실패했던 사례가 있지 않느냐고? 맞다. 한국에서 벤처 열풍은 이른바 386세대가 주도했다. 386세대답게 무척이나 시끌벅적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리 세대, 그리고 다음 세대가 도전하는 창업은 이런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요란하지 않지만, 내실 있게 준비한다면 386세대의 다음 세대에서 건강한 사회적 기업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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