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첫해를 마감하면서 '호질기의(護疾忌醫)'를 선정한 교수신문이 2009년 새해의 희망 사자성어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선정했다고 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통을 거부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든 2008년의 정국운영을 '호질기의(護疾忌醫)'로 경계하면서 조화와 통합의 정치에 대한 기대를 담아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희망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교수신문의 고심어린 선택에 공감한다.
"지난해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불화가 많은 한해였는데 어려움이 클수록 덧셈정치를 해야 한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적 강자와 약자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도 적용되는 것"이라는 추천이유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은 서로 경청하고 협력할 때 가능하다. 차이를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인식과 태도가 정착돼야 지금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선정이유에도 백번 동의한다.
화이부동은 민주주의다. '부동(不同)을 전제하는 화(和)', '동(同)을 강제하지 않는 화(和)'야 말로 '소수를 존중하면서 다수가 이끌어가는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핵심적 운용원리'라 할 만하다.
부동(不同)하되 화(和)하기 위해서는 부동(不同)의 각 주체들, 즉 화(和)의 각 주체들이 부동(不同)에 불편해하지 않아야 한다. 부동(不同)한 상대가 옳을 수 있다는 근본적 겸손이 가능해야 한다. 소수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존중은 근본적 겸손과 거기에서 출발한 관용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다.
새삼스레 민주주의의 위기가 운위되는 상황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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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그것도 과반을 훌쩍 넘는 172석의 절대과반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 그토록 별러왔던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80석을 간신히 넘긴 민주당을 상대로 협상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작금의 상황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의회정치와 민주주의정치에서 소수정파 존중이라는 원칙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질서유지권부터 발동해 회의장을 원천봉쇄하고 FTA 비준안을 강행 상정한 외통위 한나라당 위원장의 옹색한 선택이 가져온 부메랑이 얼마나 큰지를 살펴보는 것도 민주주의에서 소수파 존중이 정치적으로 왜 중요한지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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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不同)이 화(和)의 전제라면, 소수파에 대한 존중은 민주정치의 결론이다. 소수가 언제든 다시 다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은 다수도 언제든 다시 소수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계는 정치주체들에게 겸손과 절제를 강제하고 대중에 대한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정치에 대한 가장 강력한 통제수단이 된다.
지지율 하락이 즉각적으로 국회해산과 총선으로 연결되는 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의 5년 임기와 국회의원의 4년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이 같은 정치적 통제효과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나, 조금만 긴 호흡으로 보면 "언제든 국민의 표에 의해 심판받을 수 있다"는 민주정치의 가변성과 역동성만큼 위력적인 통제수단도 달리 없어 보인다.
쉐보로스키가 민주주의의 핵심원리로 "열려진 선거 결과"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고, 포프의 '열린사회'를 정치, 이데올로기, 담론 구조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존속여부를 결정하는 준거점으로 다시 주목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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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국회는 여러차례 육탄전을 치른 끝에 일종의 형평점에 접근해간 것으로 보인다. 강제로라도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른바 기계적 '법대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여·야 모두 국회가 머릿수로만 되는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법과정은 어쩔 수 없이 소수에 대한 다수의 설득과 양보를 통해 일종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듯 하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치적 착근과정이란 원래 이런 저런 '어쩔 수 없음'에 대한 현실적 확인과정과 '어차피 그렇다면'이란 차악적 선택과정을 통해 학습되고 체득되는 것 아닌가 싶다. 우리 정치권이 이렇게라도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민주주의'를 깨쳐갔으면 한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간도 많이 들고 사회적, 정치적 비용도 많이 든다는 사실도 깨달았으면 한다. 외형적 실적과 성과를 절대시하는 돌격전과 속도전으로는 민주주의를 하기 어렵다는 점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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