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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 혁명은 결국 치정으로 변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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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 혁명은 결국 치정으로 변했을 뿐

[뷰포인트] 유하 감독은 왜 공민왕 시대에 접근했는가

한때 공민왕(주진모)의 총애를 받던 호위무사단 건룡위의 총관 홍림(조인성)은 이제 신세가 말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민왕과 잠자리를 같이 하며 동성애 정인으로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내처진 상태다. 공민왕은 홍림이 왕비(송지효)와 격정적인 정사를 나누는 현장에서 두 남녀를 적발해 그에게 남자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을 내렸다. 그리고 결국 왕비도 공민왕에게 살해당했다고 그는 생각한다. 홍림은 바짝 약이 오른 채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한다. 궁밖으로 간신히 몸을 피했던 홍림은 정체를 숨긴 채 궐 안으로 다시 숨어 들어와 그토록 아끼고 모셨던 왕을 스스로 시해하려고 대기중이다. 이제 그의 운명은 거센 태풍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이다.

▲ 쌍화점

숨가쁘게 진행되던 <쌍화점>이 이야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전, 궁궐 담장 밑에 쭈그려 앉아 비참해진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반추하는 홍림의 모습을 담아 낸다. 이 장면은 슬쩍 한 컷에 불과하지만 기이하게도 긴 호흡으로 느껴진다. 해가 지기 시작해서 어스름해진 주변, 홍림은 일개 군사로 위장한 옷을 벗어 던진 채 마지막 때를 기다린다. 오기와 살기, 죽을 각오로 덤벼들어도 시원찮은 상황에서 홍림의 분위기는 정말 슬퍼 보인다. 한때 자신의 목숨만큼 사랑했던 남자, 그의 계교로 잠자리를 같이 한 후 급격하게 사랑에 빠지게 된 왕비. 그런데 이제 한 사람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한 사람과는 철전지 원수가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사랑했을 뿐인데 왜 사태가 이 지경이 됐을까. 그의 고민은 결코 풀리지 않은 매듭처럼 얽혀갈 뿐이다.

지난 해 세밑에 개봉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유하 감독의 <쌍화점>은 겉으론두 남자와 한 여자의 동성,이성애적 삼각관계가 맞물리는 치정극의 외피를 쓰고 있는 척 애를 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마치 양파 같은 작품이다. 껍집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낼수록 그 안에 것은 상당히 매워진다. 감독이 하고싶은 매운 얘기는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고려 말기 한때 개혁적 인물로 주목을 받았던 공민왕 시절의 말기를 그린다. 고려조는 공민왕의 석연찮은 몰락 이후 급격하게 쇠퇴, 우왕과 창왕, 공양왕까지를 거치며 채 20년도 안돼 멸망한다. 그래서일까. 후세의 사람들은 고려시대 마지막 왕을 공민왕으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공민왕은 1351년부터 23년간 왕권을 잡았으며 초기에는 무너져 가는 왕가를 바로잡기 위해 상당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그같은 정치적 의지가 쇠퇴해 오히려 선조보다 더한 측근정치와 파당적 국정 운영을 일삼았으며 개인적으로는 동성애와 페도필(소아성애)에 빠져 결국 호위무사에게 시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혹은 독살된 것으로도 전해진다.)

유하 감독은 왜 이 공민왕 시대에 접근했을까. 그것도 제목은 그보다 100년전쯤에 만들어진 고려가요 '쌍화점'을 벤치마킹했을까. 쇠퇴해 가는 정권의 시대와 섹스의 향연을 주제로 한 노래를 왜 접목시켰을까. 유하는 그러면서도 왜 공적인 자리에서는 늘 이 영화가 단순히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원초적 욕망에 대한 얘기라며 우회론을 펼치는 것일까. 이 영화가 단순히 세남녀의 지독한 러브 스토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쌍화점>은 한마디로 지금 우리들 스스로가 겪고 있는 것처럼, 무너져 가는 시대에 대한 일종의 자화상 같은 시대극이다. 우리 역시 공민왕 때처럼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때가 있었다. 한때 끝까지 이상을 공유할 것 같은 관계들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변질됐을 뿐이다. 죽도록 사랑했지만 이제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사이가 됐을 뿐이다. 혁명은 결국 치정이 됐을 뿐이다.

▲ 쌍화점

공민왕은 홍림의 가슴에 칼을 꽂으며 울부짖듯 되묻는다. "너는 한번이라도 나를 사랑한 적이 있느냐?!" 홍림은 이글거리는 눈빛을 담아 그에게 말한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노라고. 한번도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노라고.

둘 사이의 궁극적인 비극은 관계의 종말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관계를 끝까지 부정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현실상황에서 초래되는 것이다. 우리 역시 한때, 죽도록 시대의 변화를 노래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가 과연 그런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느냐고. 유하의 <쌍화점>은 사랑과 섹스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쌍화점>은 시대의 변질과 그 비극적 파경을 예고하는 우울한 예언서 같은 영화다. 이 영화가 슬픈 건 바로 그때문이다.
(*이 글은 동의대 신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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