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청구인단의 청구가 적법함을 인정받았다. 농림부는 그동안 일반 국민은 광우병 검역 고시를 대상으로 헌법 소송을 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었다. 광우병 고시가 국민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을 것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광우병 고시를 지켜야 할 사람들은 미국의 수출업자나 국내 수입자이므로, 일반 국민은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헌재는 지난 2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협상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지난 6월 국민 9만60000여명이 참여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과 장관 고시의 무효를 주장하는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하는 장면. ⓒ뉴시스 |
그러므로 앞으로 농림부는 광우병 고시가 국민의 기본권과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다. 장차 농림부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도 수입하도록 하거나, 광우병 발생국 캐나다 혹은 유럽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할 경우, 일반 국민은 기본권 침해를 주장할 수 있다. 이 번 판례는 광우병뿐 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 식품, 석면, 원자력, 핵폐기물 등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에게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둘째, 청구인단은 국가가 광우병 원인물질의 유입을 막기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조치를 취할 구체적 의무가 있다는 판단을 받아 냈다. 이는 독일 국민들이 원자력 발전소 정책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국가의 보호 의무를 받아 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농림부 장관이 앞으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고시를 개정하거나, 캐나다산이나 유럽산 쇠고기에 대해 광우병 검역 기준을 정할 때, 이는 더 이상 장관의 자유재량이 아니다. 그에겐 광우병 원인물질을 막기 위한 적절하고 효율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
셋째, 헌법재판의 본론으로 들어가면, 헌법재판소가 청구인단을 배척한 기초는 그리 탄탄하지 않으며, 결국은 변경될 것으로 생각한다.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다면 국가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엔 인권 규약과 많이 어긋난다. 유엔 회원국들은 국민에게 도달가능한 최고 수준의 (the highest)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 12조) 나는 헌법재판소도 결국 이러한 국제 인권법 원칙을 수용할 것으로 본다.
이미 헌법재판소도 다른 판례에서 기본권 최대 보장 원칙을 천명했었고, 국가는 높은 수준의 국민보건증진 의료 정책을 펴야 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법원의 최근 판례에서도 예가 있다. 입으로 빨아 먹는 미니 컵 젤리 때문에 아이들이 질식사한 사건에서 법원은 비록 국가가 젤리 수입자로 하여금 젤리 성분을 신고하도록 하는 수입신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수입식품으로 인한 질식사를 방지해야 할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질식사 위험이 있는 수입식품에 대해선 수입금지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판결이었다.
독일의 헌법 판례가 적절히 표현하듯이, 인간의 생명은 인간존엄에 불가결하며 다른 기본권의 전제이다. 따라서 기본권의 가치체계에서 최고의 가치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에 대해선 최소한의 보호조치 잣대를 갖다 대면 안 된다.
이번 헌법재판의 소수설이 강조하였듯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최선을 다해 충분한 노력과 시도를 다해야 한다. 만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더 나은 다른 대안이 놓여 있고, 그리고 그 선택이 가능하다면, 국가는 그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 삼권분립의 원칙상 헌법재판소가 특정한 대안을 국가에게 직접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여러 대안 중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소수설이 머지않아 헌법재판소의 다수설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헌법재판소가 이번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고시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에 전적으로 부적합하거나 매우 불충한 것임이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로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계속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넷째, 구체적인 논거 사실에 있어서도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추후 달라질 여지가 많다. 헌법재판소는 미국에서의 최근 들어 광우병이 추가로 발병되지 않았다는 점, 국제수역사무 기준 등을 합헌의 한 논거로 삼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한국이 자주적으로 광우병 고시를 바꿀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 권고 동물성 사료 조치를 따르지 않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합헌의 논거들은 그대로 위헌의 논거가 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사건에서 그렇게 했듯이 이 사건도 공개변론을 열어 다양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었다.
겉으로 본다면 9만6000명의 청구인단은 패소했다. 그러나 청구인단의 노력이 아무런 보람 없이 끝난 것은 아니다. 청구인단의 재판 청구가 적법하다는 것은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 번 판결은 광우병 고시를 위반한 미국 작업장 명단과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위반한 국내 식당 명단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정부의 오류를 드러내어 줄 것이다.
광우병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협의 중인 캐나다산, 그리고 이미 수입신청이 접수된 유럽산 쇠고기 광우병 검역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광우병뿐 만 아니라, 핵폐기물 등 위험사회를 살아가는 일반 국민들에게, 이번 판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헌법재판에 끝까지 함께 해 준 9만6000명의 청구인단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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