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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벼랑 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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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벼랑 위의 마법사

[띠동갑 여자둘의 난상수다] <벼랑 위의 포뇨>와 하야오 월드

▲ 벼랑 위의 포뇨

N : <벼랑 위의 포뇨(이하 '포뇨')>는 재미있으셨나요? 전 너무 좋았어요! 근래 본 영화 중 <이스턴 프라미스>와 함께 최고예요.

S : 음, 재미있게 보긴 했어요. 근데 보고 나니까 이게 뭔 얘긴가 싶더라고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하 '하울')>을 봤을 때랑 비슷한 심정? 논리적인 설명 같은 건 하나도 없고 픽픽 장면이 넘어가잖아요.

N : 전 <하울>도 너무 좋았는데! 눈물을 펑펑 쏟았을 정도예요. 개인적으로 좀 힘들 때 봐서 그런가 위로를 크게 받았어요. <포뇨>는 울진 않았지만 감동은 마찬가지였고요. 사실 <하울>엔 전쟁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오잖아요? 뭐랄까, <하울>이 인간세상의 비극의 정점을 찍는다면, <포뇨>는 인간의 상상력 한도에서 행복의 정점을 찍는다고 봤어요.

S : 으악. 사실 전 <하울>보고 하야오 영감을 엄청 깠는데…. 영감이 좋은 소설 가져다가 이상한 이야기 만들어 놨다고. 근데 그런 건 있었어요, <포뇨>를 보고 나니까 <하울>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

N : 그쵸그쵸. 저도 <하울>이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S : 흠, 또 우시려고요? 아무튼 제가 좋아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포뇨>를 보고 나니 하야오가 만드는 게 뭔지 좀 이해가 가기 시작하더라고요. 제가 내러티브 중심으로 영화를 봐버릇해서 이상해 보이는 것일 뿐이고, 하야오의 작품은 더 이상 그런 구조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 필터링이 잘못 적용된 거죠. 그런 점에서 위대한 작품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N : 바로 그거예요. 정말이지 이제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떤 도인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아요. 뭐랄까, 평생을 추구해오던 인생의 답을 마침내 찾아버린 양반이 우리 평범한 인간들에게 무심히 툭툭 던져주는 선물과도 같달까요. 굳이 기승전결이나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진 거죠.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구성하지 않아도 이야기의 위대함에 하나도 손상이 가질 않아요.

S : 아니 N씨가 언제부터 이렇게 하야오를 좋아하셨나? (갸웃)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 포뇨와 소스케를 번쩍 안고 가는 리사

N : 하야오의 옛날 작품들에서는 어떤 일관성이 있었죠. 소녀와 생태주의 같은 코드로 대표될 수 있는 것들이요.

S : 하야오의 세계에서는 결국 소녀=자연이랄까, 소녀의 얼굴을 한 대지모신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가 그 정점이었죠.

N : 그걸 못 봤지 뭐예요. 나우시카는 거의 여신이죠?

S : 말 그대로 성녀이고 여신이죠. 인간의 문명에 대항해서 자신을 희생하니까요.

N : 신기한 게, 아이들을 위한 모험물은 보통 남자아이가 주인공이기 마련인데, 하야오의 작품들은 대부분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면서도 별 이질감을 주질 않아요. <천공의 성 라퓨타(이하 '라퓨타')>를 생각해 보면, 특히 그런 모험 판타지물은 대부분 남자아이가 주인공이죠. 그런데 <라퓨타>에서도 또 여자아이가 핵심이고 남자아이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른단 말이죠. <이웃집 토토로>는 물론이고요.

S : 그래서 제가 하야오를 롤리타 콤플렉스라고 놀리곤 했죠…. 이건 농담이고, 여하튼 하야오의 소녀에 대한 집착은 정말 알아줘야 해요.

N : 그런데 그런 성향이 <포뇨>나 <하울>에서는 약화되긴 한 것 같아요. 분명 소피와 포뇨가 주인공이긴 하지만 하울이나 소스케도 거의 대등한 주인공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개성적인 캐릭터니까요.

S : 그래도 그랑마메르나 리사를 보면 하야오의 소녀가 업그레이드되었다는 느낌이 좀 나요. 특히 리사는 하야오의 소녀들이 성장한 버전 같아요. 이전 하야오 작품들의 소녀들이 잘 자라서 리사가 된 듯 하달까요.

N : 오, 그거 정말 그럴 듯한데요. 정말 하야오의 소녀들이 어른이 돼서 리사가 된 거 같아요. 어쨌든 저도 리사가 너무 좋아요. 무지 용감하고 책임감 넘치고, 그러면서도 너무 귀엽고요. 포뇨를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보듬어주는 장면에서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몰라요.

S : 정말 리사는 대단하죠! 소녀스러우면서도 또 어머니답고, 아이들의 보호자인 동시에 노인들의 보호자이기도 하고요. 리사와 바다의 여신인 그랑마메르가 쌍을 이루는 것 같기도 해요. 리사는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벼랑 위에서 등불을 밝히는 육지의 여신이죠.

N : 그러고 보면 하야오의 작품에서 그렇게 책임감 넘치는 부모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큰 변화로 보이기도 해요. 대체로 하야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고아였고, 어른들이 있다 해도 무력하거나 탐욕스럽거나 둘 중 하나였잖아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하 '센과 치히로')>에서는 부모가 탐욕 때문에 돼지로 변해버리죠.

S : 듣고보니 그렇네요. 이건 이따가 다시 얘기하기로 해요.


<모노노케 히메>와 하야오 월드의 종막

▲ 모노노케 히메 : 원령공주

N : 하야오는 <하울>에서 작품 세계가 많이 변했다며 비판을 많이 받았죠. 물론 논란이 많았던 걸로 치자면 <모노노케 히메>가 최고였지만요. 그런데 평단과 관객 모두한테서 격찬을 받았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하 센과 치히로)>도 실은 소위 '포스트 하야오'의 범주에 들어가야 할 작품 아닌가요?

S : 저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모노노케 히메>를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일 것 같아요. 그거 보셨어요? 그걸 만들고 하야오가 처음으로 은퇴 선언을 했잖아요.

N : 그걸 못 봤어요. 비주얼이 쎄다는 이야기에 슬쩍 겁을 먹었거든요. 어떤 내용이죠?

S : 아, 그걸 보셔야 해요. <모노노케 히메>를 보면 '산'이라는 소녀가 나오는데, 이 소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강경한 방식으로 자연을 대표하는 여자 주인공이에요. 그리고 문명을 대표하는 또 한 여자 캐릭터가 있고, 그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죠. 마지막에는 결국 자연의 신이 죽어요. 인간들이 목을 잘라 버리죠. 그 외에 동물의 형태를 가진 신들도 소멸해 버려요. 그리고 남자 주인공이 산에게 "인간의 세계에 살면서 가끔 너를 만나러 갈게."라고 하면서 영화가 끝나요. 물론 자연이 아직 죽은 건 아니라고 말은 하는데 사실상 인간과 자연의 경계는 단절되는 거죠 뭐. 그런데 목 자르는 장면이 그냥 막 나와버려요.

N : 아하, 왜 그렇게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었는지 납득이 가는군요. <토토로> 같은 작품도 실은 어마어마한 호러가 될 법한 이야기도 하야오는 더없이 아름다운 동화로 만들었잖아요. 전 그게 하야오 월드의 특징이라고 보거든요. <토토로>의 배경은 전쟁 직후 완전히 초토화된 나라죠. 어른들은 소위 나라를 재건하느라, 혹은 먹고 살 방법을 찾느라 원하든 원치않든 아이들을 방치하게 되고, 그렇게 방치된 외로운 아이들이 '토토로'라는, 일종의 괴물 친구를 만나는 거잖아요. 서양으로 치면 토토로는 '보거스'와 비슷하죠. 외로운 아이들이 만나는 상상 속의 친구. 서양의 이런 이야기들에선 보통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는 현상, 그래서 심리적 치유를 받아야 할 현상 취급을 해요. 하지만 <토토로>는 그렇지 않죠. 참, <토토로>의 호러 버전 그림 아세요?

S : 아니, 그런 게 있단 말이에요?

N : 저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본 그림이에요. '배드 토토로'라고, <토토로>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아주 무시무시한 비주얼의 팬아트가 있어요. 전 그게 <토토로> 이야기의 이면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그림이라 생각해요. 아이를 잡아먹어 뱃속에 아이 뼈가 가득한 끔찍한 외모의 토토로가 서 있고, 옆에 아이는 겁에 잔뜩 질린 채 우산 대신 총을 잡고 있거든요.

S : 허허, 놀랍네요. 나중에 꼭 보여줘요.

N :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바로 걸려나올걸요. 어쨋든 원래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S씨 말대로라면 확실히 <모노노케 히메>가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가르는 경계가 되겠네요. 은퇴를 선언한 것도 이해가 가요. 이제 내가 할 얘기를 다 했노라, 그렇게 생각하셨겠죠.

S : 그렇죠. <모노노케 히메>는 다른 작품과 달리 자연의 패배를 선언하는데 그것도 아주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말해버리니까요. 그러니까 은퇴를 선언하고 <센과 치히로>를 만들어서 대박을 치고, 또 은퇴 선언을 하고 <하울>을 만들고, 또 은퇴 선언을 하고 <포뇨>…. 흠, N씨는 뭔가 또 나왔으면 좋겠죠?

N : 당연하죠. 이렇게 한 부문에서 지고의 경지에 오른 장인의 창조물을 감상한다는 것은 우리 같은 중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니까 말이죠. 만들어만 주신다면 어이구 감사해라 하고 넙죽 받아먹는 거죠 뭐.


'포스트 하야오' 시대의 작품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S : <센과 치히로>부터 본격적으로 변한 점은 뭐가 있을까요? 소녀 이야기는 앞에서 잠깐 했었죠?

N : <센과 치히로>도 소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남자주인공의 비중도 꽤 크죠.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S : 전 이 때부터 남자주인공이 미소년이 되어서 참 좋았죠. 외모에 약한 여자인지라.

N : 하하하. 그리고 처음에 말씀하셨다시피 이야기가 굳이 이성적인 논리구조에 연연하지 않고 물흐르듯 경쾌하게 가버려요. <포뇨>에서도 포뇨의 아빠한테 중요한 사연이 있는 거 같은데 별 설명 안 하고 그냥 휙 던져주고 넘어가잖아요. 설명이 없는 건 아닌데 별로 중요한 게 아닌 양 취급되죠. 매 장면의 포스도 세졌어요.

S : 전 <포뇨>에서 포뇨가 파도를 타고 달리는 장면에도 압도당했지만 마을이 물에 잠기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제가 꿈꾸던 판타지 중 하나라서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엄청난 재난인 거잖아요? 물 아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헤엄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무슨 축제 분위기인 거예요.

N : 일본이란 나라가 매년 해일 때문에 엄청난 재난을 당하는 나라잖아요. 정말로 해일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입장에선 속이 불편할 사람들도 꽤 있었겠다 싶더라고요. 하지만 아까 <토토로> 얘기할 때도 말했지만, 그렇게 재난을 축제로, 지구의 대위기를 꼬마 둘의 로맨스의 무대로 전환하는 게 또 하야오죠. 그걸 굉장히 멋지게 해내고요.

S :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겠죠? 해탈한 노인과 천진한 아이들의 사고는 비슷한 데가 있잖아요.

N : 맞아요. 일부에선 이 작품을 두고 하야오가 퇴행했다고도 하는 것 같은데, 전 절대 동의할 수 없어요. 오히려 우리같은 범인들로서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득도의 세계로 가 버렸다는 게 더 맞는 말일걸요. <포뇨>에선 아무리 폭풍이 일고 해일이 몰려와도 자연의 잘못이나 비극이 아니에요. 그냥 버티고 견뎌야 할 사건일 뿐이죠. 구조대나 대피하는 사람들 표정에서도 고통이나 슬픔은 없잖아요. 심지어 판타지의 공간이 돼버리기까지 하니까요. 이건 퇴행이라기보다 득도의 세계로 오히려 올라간 거라고요.

S : 저도 <포뇨>가 그냥 애들을 위한 작품이란 생각은 안 드는걸요.

N : 자연에 대한 하야오의 관심도 여전히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바닷 속에서 엄청난 쓰레기들이 떠오르곤 하는 장면들이 몇 번 나오잖아요. 별 훈계나 설명의 대사가 없어도 그 장면을 보면 딱 "아, 강이나 바다에 절대 쓰레기 버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비주얼만으로도 섬뜩하니까요. 리사가 후지모토에게 제초제를 뿌리지 말라고 경고하는 장면도 그렇고, 한때 인간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후지모토가 인간의 더러움을 비난하는 장면도 있죠.

S : 확실히 전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뿐이지 소녀/어머니를 묘사하는 방식이나 생태주의적 시각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들은 아무것도 모르거나, 사건의 단면밖에 보지 못하죠. 하지만 어머니들은 거의 직관적으로 뭔가를 알아요.

N : 그렇죠. 리사와 그랑마메르가 둘이 잠깐 이야기를 하더니만 상황을 단박에 정리해버리기도 하고요. 아빠들은 뭘 모른 채 어리둥절하거나 안달복달하고 있는데, 엄마들끼리는 그냥 쓰윽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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