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8개 공기업 민영화 조치에 이어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안을 추가 발표했다. 이번 조치가 이행되면 민영화 대상이 아닌 69개 기업에서 약 1만9400여 명의 인력이 줄어들게 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정부는 총 278개에 달하는 모든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이른바 '경영효율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인력 구조조정 폭풍이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자리 늘리기가 사회적 화두인 상황이라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직원 줄이고 '알바생' 쓰는 게 선진화?
21일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을 살펴보면, 앞으로 정부는 3~4년에 걸쳐 2만 명에 가까운 공기업 직원을 줄일 방침이다. 철도공사 직원은 전체 정원의 6분의 일에 달하는 5115명이 줄어들고 한국전력에서도 직원 2만1734명 중 2420명분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한편 정부는 이번 선진화 계획안 발표에 앞서 세 차례의 공기업 대책 통해 공기업 38곳을 민영화하고 38개 공기업을 17개로 통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5개 공기업은 폐지된다.
정부는 이번 인력 감축으로 1조1000억 원의 인건비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인건비 감축분은 공기업 인턴 1만 명을 채용하는 데 사용된다. 멀쩡한 일자리를 가진 사람을 2만 명 가까이 자르고 그 돈을 '알바생'이나 다름없는 비정규직 1만 명을 늘리는 데 쓰겠다는 말이다.
이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달라"는 사회적 요구와 정면 배치된다. 문화방송 <100분 토론>이 지난 18일 400회 특집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7.5%가 올해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청년 실업을 꼽았다.
인턴사원 고용은 불안정한 단기 계약직이라 양질의 일자리로 볼 수 없다.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저임금의 인턴으로만 전전한다는 자조 섞인 뜻의 '인턴 세대'라는 말이 독일에서 신조어로 꼽히는 지경이다.
철학 빈곤한 정부의 혼란한 정책
정부는 한편 그 동안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한 공기업의 방만함을 이번 선진화 계획을 통해 바로잡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인력 해고와 함께 과도한 보수수준을 조정하는 등 예산을 절감하고 공기업에도 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성과관리체계를 뿌리내리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따가운 반발이 예상된다. 당장 시기가 문제다. 왜 하필이면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일자리를 줄이는지 여론을 납득시켜야만 한다. 정부로서는 이른바 '신의 직장'으로까지 불리며 커진 국민의 공기업에 대한 분노가 '정부의 일자리 창출 기능 포기'를 넘어설 것으로 일단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일자리 늘리기를 위해 어느 정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필요한 공기업에 정부가 앞장서 구조조정이라는 '메스'를 들이대 온 사회적인 구조조정 바람을 주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문제다. 감세를 위해 재정 20조 원을 줄이면서도 강력한 재정확대 정책을 쓰는 마당에 정작 공기업 직원을 내모는 것은 자가당착적 모습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정규직 2만 명을 해고하고 1만 명의 인턴사원을 쓴다는 정부 아이디어는 사실상 청년에게 '국가적으로 허용된 저임금직'이나 늘리겠다는 뜻과 다름 아니다"며 "공기업이 고용불안의 주범이 되는 모습이라 일자리 불안을 오히려 정부가 조장하는 듯한 인상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결국 정부의 철학 빈곤이 이와 같은 정책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공기업에 민영화와 효율화를 이른바 '선진화'라는 말로 포장하면서 영리활동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번 산업은행을 통해 시중은행의 자본확충을 이끌 듯 여전히 공공성을 요구하는 모순된 상황이 이번 공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결국 여전히 정부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경제 위기를 맞아 정부 역할을 키울지 시장의 주도권을 강화할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혼란만 키울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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