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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해고 노동자 우장균 선배에게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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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해고 노동자 우장균 선배에게 띄우는 편지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멀리 베트남에서

선배라고 제목을 달고 나니, 무슨 연고로 맺어진 선후배 사이인가 짚어보게 되네요. 같은 고향도 아니고 같은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닌데, 더군다나 직장이나 조직 생활을 같이 해 본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선후배 사이가 되었는 지를요.

스무 해 남짓 전에 선배와 저는 '씨날'이라는 동아리를 인연으로 선후배 사이가 되었지요. 물론 저보다 연배가 한참 위인 선배를 동아리 활동에서 본 것은 연말 송년회나 졸업생 송별회에서나였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 몇 번이나 서로 만나 보았을까요? 어린 대학생 때 두 세 번과 삼사년 전 신문로 식당에서 열렸던 씨날 송년회 때 한 번 해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네요.

몇 번 만나 보지도 않았고, 동기들은 한번 씩은 얻어먹었다던 선배 집밥을 먹어본 적도 없지만, '우장균'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머리에 선명한 것은 우리는 어린 대학생이었고 선배는 사회 초년생이었던 스무 해 남짓 전에 동기들을 통해 제 머리에 투사되었던 선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물론 어떤 얘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들을 통해 저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선배의 이미지는 이웃을 사랑하면서 정의롭고 명예롭게 살고 싶어 하는 자유인이었던 것 같아요.

90년대 어느 쯤인가 YTN이라는 방송국이 생기고 나서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데, "우장균 기자입니다"라는 멘트가 들리더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선배 얼굴도 동아리 활동보다는 뉴스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내 일 아니면 무심한 성정(性情)인지라 선배가 버젓이 화면에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채널을 돌려 다른 방송국 뉴스를 본적이 많습니다. YTN 그러면 무슨 관제방송 같기도 하고, 24시간 뉴스 전문 채널이 뭐 저리 밋밋하냐고 투덜거린 적도 많은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프라임 뉴스시간 대의 앵커로 화면에 나오는 선배 모습을 보았고, 그렇고 그런 별 난 것 없는 언론인으로 직장생활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었죠.

선배가 앵커가 되기 전이었는지 아니면 앵커가 되고 나서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몇 해 전 신문로 송년회 자리에서 보았을 때 언론노조 YTN 지부장 명함을 제게 건네주셨죠.

선배가 산별노조의 지부장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제가 노동 관련 일을 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언론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그 민주노총이 지원하는 정당인 민주노동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선배가 해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이야기는 표현은 점잖았지만 내용은 굉장히 비판적이었죠.

속으로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의 지부장이 이 모양이니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그 모양 아니겠냐"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 밖에는 내지 않았던 것 같네요.

YTN 사태가 촛불시위 와중에 터졌으니까 계절이 여름, 가을, 겨울로 세 번이 바뀌었는데도 YTN 관련 집회와 시위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권 치하에서 '코드인사' 운운하던 자들인 이명박과 한나라당 정권이 대놓고 낙하산 인사와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을 보며 그 비열함과 치졸함에 토심(吐心)스러워 하면서도 '남들 다 가는데 나까지 가야하나' 하는 그런 생각 있지 않습니까.

▲ 선배가 원하는 "낙하산 구본홍이 물러날 그때까지 독립 언론 공정방송 쟁취의 그날까지"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무릅써야 하겠지요. 하지만 만난(萬難)도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선배의 염원을 꺾지 못할 것입니다. ⓒ언론노보

그러던 차에 노조 교육을 위해 와 있는 이곳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제가 글을 기고하는 <프레시안>을 열어보았더니 낯익은 얼굴을 담은 의견광고가 자꾸 눈에 어른거립니다. 노종면 위원장과 선배를 비롯해 해고자 여섯 명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네요.

선배가 해고되었다는 소식은 언론매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고, 후원의 밤 같은 행사가 열리면 가서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인터넷 광고를 보니 공교롭게도 12월 17일 바로 오늘 프레스센터 20층에서 후원의 밤이 열린다네요.

오늘 저는 하노이에서 호치민으로 갑니다. 하노이에서처럼 그곳에서도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 노조 교육을 조직하기 위해서지요. 노조 교육의 본령은 인간으로서 이웃을 사랑하고 노동자로서 정의롭게 명예롭게 살아가는 가치를 함께 나누는 것이지요.

선배와 저의 사이가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거나 살가운 것은 아니었지만, '우장균' 이름 석자를 들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웃을 사랑하며 정의롭고 명예로운 인간으로 살고자했던 젊은 날의 빛바랜 꿈들이 떠오릅니다.

선배가 원하는 "낙하산 구본홍이 물러날 그때까지 독립 언론 공정방송 쟁취의 그날까지"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을 무릅써야 하겠지요. 하지만 만난(萬難)도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선배의 염원을 꺾지 못할 것입니다.

몸은 멀리 있지만, 오늘 저녁 하루만이라도 저의 마음은 노동자의 명예와 정의를 위해 결연히 싸우고 있는 우장균 선배와 YTN 노동자들과 함께 있으렵니다.

선배와 제가 몸담았던 동아리 '씨날'의 이름은 씨줄과 날줄의 엮음처럼 우리도 엮여서 서로 도우며 아름답게 살아가자는 뜻에서 유래했다지요.

이름은 없지만 우리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씨줄과 날줄이 엮이고 엮이면 우리가 즐겨 불렀던 동물원의 '혜화동' 노랫말처럼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는 그날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해고자 생활은 무척 힘들겠지만 후원의 밤이니만큼 마음 한 가득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즐거운 성탄과 기쁜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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