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미행(美行) :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미디어 행동 네트워크"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지역 순회 사업, '미디어 게릴라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나다'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미행'은 블로거, 만화가, 노동자, 작가 등 다양한 미디어 생산자들이 함께 모여 비정규 노동의 현실을 고민하는 프로젝트 팀이다. 미행의 지역 순회 사업은 진보신당과 함께 진행된다. |
"몇 년 치 수주물량을 쌓아놓은 조선업만큼은 경기변동에 따른 영향이 가장 적을 것이다."
그러나 세간의 이러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다. 남해안 일대 중소형 조선업체들에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으며, 지난해 조선업에 진출한 C&중공업은 사실상 부도 위기에 몰려 최근 우리은행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한 상태다.
글로벌 경제위기 발발과 쌍둥이처럼 닮은 조선업 위기의 공식
최근 10여 년 간 한국의 조선업은 호황 쾌속선을 타고 달렸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삼성중공업 이른바 조선업 '빅 3'를 중심으로 하여 블록 일부를 하청 받아 납품하는 중소 조선소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 중소 조선사들이 블록 납품을 넘어 직접 배를 짓는 건조 사업으로 진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운업·금융업계와 공범이 되어 엄청난 '거품'을 만들어왔다.
이를테면 해운사(선주사)는 돈이 된다 싶으니 무분별하게 선박 수주에 나서며 금융권에서 막대한 차입금을 갖다 쓰고, 금융권 역시 오히려 선박 수주와 건조를 부추기며 해운사와 조선사에 돈을 빌려주었고, 조선사들은 배를 만들 도크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 돈을 끌어다가 도크와 배를 동시에 짓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시장이 괜찮을 때에는 1000억에 선박 수주를 맡긴 해운사는 배를 인수받아 2000억 원에 팔아넘길 수 있었고, 금융권은 이 사업의 수익성을 보면서 수주액 1000억 중 900억을 빌려주었다. 해운사는 자기자본 100억만 갖고도 은행에서 900억을 빌려다 배를 지은 후 2000억에 팔면 앉아서 1000억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린 이유다. 금융권 역시 짭짤한 금융비용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에 해운사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고 조선사에 지급보증을 서주며 거품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 발(發) 금융위기가 시작되고 시장이 쪼그라들자 금융권은 돈 빌려주기에 보수적이 되고, 이에 따라 해운사들의 선수금 지급이 연기되거나 수주 취소사태가 줄을 이었다. 그동안 끝을 모르고 팽창하던 거품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돈을 받지 못한 조선사들이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마치 건설업계의 수익성을 보며 마구 마구 돈을 빌려주고 지급보증을 서주다가, 최근 부동산 거품 붕괴로 건설업만이 아니라 금융권마저 폭삭 망할 위기로 몰아넣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태를 꼭 빼다 박지 않았는가.
▲ 현대미포조선 기업 광고. "행복한 가정, 안정된 직장, 우리 모두의 바람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우리 모두'는 도대체 누구일까? ⓒ미행 |
그나마 '빅 3'는 괜찮지 않냐고?
"현재 부도위기에 몰린 것은 최근에 건조 산업으로 진출한 중소 조선사들뿐이다. 아직은 안정적인 수주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대형 조선사들은 위험하지 않다."
지금 무너지고 있는 조선사들의 현실만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위기는 후발주자인 중소 조선사들에서 발생하고 있고, '빅 3'를 비롯한 대형 조선사들은 아직은 대략 3년 치 수주물량을 확보하고 있다. 위기에 빠진 중소 조선사들이 한국 조선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만약 위기가 조선업에서만 발생한 것이라면 한국 자본주의는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금융권에 맡김으로써 단시일 안에 위기를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본가들은 "시장이 자본주의 모순과 위기를 치유할 수 있다"는 자신의 논리를 입증시켜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건설업·제조업 전반에 금융업이 함께 만든 거품이 일시에 터진 '전면적인 위기'이며 그 범위 또한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파괴력을 갖고 진행되는 것이다. 조선업만이 아니라 자동차산업·석유화학산업·반도체산업·건설업·금융업 모두가 위기에 처해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는 상황이며, 이중 어느 한 고리에서 붕괴가 벌어질 경우 연쇄 효과로 모든 분야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난달 이른바 한국의 '빅 3' 업체의 선박 수주물량은 고작 3대 뿐이었다. 그나마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0'였고 3척 모두 삼성중공업이 딴 물량이다. 지난해 11월 빅 3의 수주물량이 20척을 넘었던 것에 비교하면, 이미 위기는 중소 조선사를 넘어 조선업종 전반에 퍼지고 있다는 얘기다.
조선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우리는 기계만도 못하단 말인가"
지난 11월 14일 오전 7시 경,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조합원 이홍우 씨가 회사 측의 현장 탄압에 분노해 공장 안 4층 건물에서 목에 줄을 매고 뛰어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뼈 골절과 폐 손상, 기관지 파열로 울산대병원에서 수차례 장시간 수술 끝에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두 아이의 가장인 이홍우 조합원이 목숨까지 걸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뛰어내리기 전 녹음기에 남긴 유언과 동료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이홍우 씨의 외침은 다음과 같다.
"회사에 쓴 소리 한다고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은 목을 조르는 것과 같다. 아파도 치료를 제대로 못 받고, 징계·감시·탄압받는 현실, 이 모든 걸 내가 짊어지고 갈께. (…) 우리 동지들 정말 사랑합니다. 용인기업 동지들 힘내시고, 빨리 복직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11월 14일 오전 7시 경,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조합원 이홍우 씨가 회사 측의 현장 탄압에 분노해 공장 안 4층 건물에서 목에 줄을 매고 뛰어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뼈 골절과 폐 손상, 기관지 파열로 울산대병원에서 수차례 장시간 수술 끝에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두 아이의 가장인 이홍우 조합원이 목숨까지 걸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병상의 이홍우 조합원이 미행 팀의 방문에 힘겹게 필담으로 얘기하고 있다. ⓒ미행 |
현대미포조선이 위장도급 형태로 20여 년을 사용하다 2003년에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몬 용인기업 노동자들에 대해, 최근 대법원이 "현대미포조선이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음에도 사 측은 아직까지 복직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이홍우 조합원은 비정규직인 용인기업 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출근투쟁·중식선전전 등 정당한 현장 활동을 벌였고, 사 측은 이런 활동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홍우 조합원에게 일절 잔업을 시키지 않는 탄압을 가하고 같은 활동을 벌여온 동료 활동가에게 중징계를 내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현장에서 일하다 다쳐서 산재 치료를 요구하자 회사는 이를 거부했고, 심지어 외래 치료라도 받게 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조차 "네가 좋아하는 투쟁이나 해라"며 모멸감까지 주며 무시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11월 14일 새벽에 공장 내 4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새벽 7시경, 시위를 벌이던 이홍우 조합원 근처에서 담당 부서장과 반장이 그를 설득하던 중이었고, 이홍우 조합원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매트리스나 안전장치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밑에서 박 아무개 상무가 하이랜드카를 올리라며 강제진압을 명했다. 이홍우 조합원이 "올라오지 마"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설득하던 관리자들조차 "내려! 내려!"라며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건만…. 결국 이홍우 조합원은 목에 줄을 감은 채 4층 옥상에서 - 자신 생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 뛰어내림을 하고 말았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른 단면을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기계 하나가 고장 나면, 하다못해 지프크레인 하나가 고장 나면 이사·상무들까지 모조리 달려와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면, 아니 죽어나가도 영안실을 찾는 임원들은 없다. 자기들이 부리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이정도일진대, "일하다 다쳤으니 산재치료를 하게 해달라"는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는 건 다반사다.
만약에 그날, 건물 4층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 물체가 이홍우 조합원이 아니라 고가의 기계장비였다면, 과연 박 아무개 상무의 태도는 똑같았을까? 사람이 떨어지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강제 진압을 명할 수 있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싸우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차라리 그 기계만큼이라도 취급을 해달라고 요구해야 할 판이니 말이다.
이게 바로 '빅 3'를 비롯한 잘나가는 대형 조선사, 그나마도 현재 조선업계 상장사 중에서 순 현금이 가장 많은 곳으로 평가받는 현대미포조선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 현실에선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진다. 중소 조선사들을 살리기 위한 자금은 투입되어도,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으로 잘려 나간다. ⓒ미행 |
그러나 현실에선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진다. 중소 조선사들을 살리기 위한 자금은 투입되어도,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으로 잘려 나간다. 조선업 거품 형성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대가를 치르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빅 3 대형 조선사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선전한다.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지만 대기업은 끄떡없다. 이미 몇 년 치 수주물량이 남아있고, 현금 보유액도 아주 넉넉하다. 오히려 중소 조선사들이 망하게 되면 그중에 알짜배기만 골라서 우리가 인수할 수 있다. 그들이 채우지 못한 물량은 우리에게 넘어오게 되므로, 일부 있을지도 모를 수주물량 취소를 만회할 수 있다. 오히려 위기는 기회다! 그러니 딴 맘먹지 말고 오로지 생산에만 열중하라!"
그야말로 약육강식·적자생존의 자본가 논리가 아닌가! 더 열악한 중소 조선소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가로 해서 대형 조선사는 오히려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본가들은 대형 조선소 노동자들과 중소 조선소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이간질하려 한다.
그러나 당분간 그러한 선전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현혹당할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놀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전 자체가 '완전한 왜곡'임이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로 폭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랑하는 현금 보유액이란 결국 은행저축과 증권투자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경우 은행저축의 60%가 각종 펀드에 재투자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은행에 안전하게 보관된 현금자산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압도적인 부분이 각종 증권과 금융파생상품에 투자된다고 볼 수 있다.
시장이 잘나갈 때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1년 전과 비교해봤을 때 한국의 주식시장은 반쪽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벌어진 것이므로, 해외증권으로 투자했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대형 조선사들이 자랑하는 현금 보유액은 이미 반쪽으로 떨어졌을 것이며, 주식시장이 앞으로도 곤두박질칠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수주물량 취소로 위기가 올 가능성보다 금융 붕괴로 위기가 올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각종 산업의 연관관계 또한 커졌는데, 건설업·자동차산업·석유화학산업·반도체산업 중 어느 하나의 고리만 붕괴해도 곧바로 금융 붕괴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형 조선사들이 제아무리 수주물량을 쌓아놓은들 위기를 비켜갈 수 있을 것 같은가?
물론 나는 이렇게 주장을 펼치는 것만으로 조선·해운·금융업 자본가들과 정부가 위기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아니, 이러한 글 수백 편·수천 편이 떠돌아다니더라도 그들은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 이러한 글 수백 편·수천 편이 떠돌아다니더라도 그들은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치고, 대형 조선사와 중소 조선사 노동자를 갈라 치는 것이 자본가들의 전략이라면, 작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단결시키고 조직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그 시도에 정면으로 맞장 뜨는 전략이 아니겠는가!ⓒ미행 |
최근에 이홍우 조합원과 함께 현장 활동을 전개해온 수십 명의 조합원들이 이제 정규직만이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여러분! 함께 일어섭시다! 여러분들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싸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함께 싸운다면 이 절망적인 공장을 희망공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현대미포조선 안에는 3000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5000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물론 아직 이러한 흐름은 대단히 미약하고, 이 흐름만으로 현대미포조선을 상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치고, 대형 조선사와 중소 조선사 노동자를 갈라 치는 것이 자본가들의 전략이라면, 작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단결시키고 조직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그 시도에 정면으로 맞장 뜨는 전략이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 대형 조선사 노동자들이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을 바탕으로 그 굳센 팔을 중소 조선사 노동자들에게 "함께 싸우자"고 내뻗는 것이야말로, 경제위기의 책임을 져야할 자본가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비록 가능성과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글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는 것 못지않게 이러한 현장의 흐름에 내 희망과 믿음을 걸어보고 싶다. 경제위기의 심연이 가장 밑바닥의 노동자들 가슴에 분노를 일으키고 투쟁으로 일어서게끔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 밑바닥 노동자들의 일어섬이 이홍우 조합원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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