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협약 제14차 당사국 총회가 지난 1일부터 오는 12일까지 폴란드 포즈난에서 열린다. 160여 개국에서 약 9000여 명이 참여하는 이번 회의에서는 200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의 효력이 다하는 2013년부터 시작될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 논의된다. 이번 회의 결과에 따라 2009년 11월 코펜하겐에서 채택될 코펜하겐의정서의 틀이 결정될 예정이다. <프레시안>은 현지를 방문한 환경단체 활동가의 연속 기고를 총회가 마무리되는 12일까지 4회에 걸쳐 싣는다. 1일부터 포츠난에서 총회를 지켜본 청년환경센터 이헌석 대표가 첫 번째 글을 보내왔다. 이 대표는 에너지 효율을 강화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는 대신 원자력 발전과 탄소 배출을 줄이는 기술적 해결책을 강조하는 이번 회의의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전한다. <편집자> |
▲ 12월 5일 옥스팜(Oxfam) 주최로 당사국총회 행사장에서 열린 이벤트. 2050년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이 아이들이 맞게 될 미래는 어떤 것일까? ⓒ프레시안 |
다양한 집단들, 그리고 분명한 입장 차이
기후변화협약 14차 당사국 총회가 지난 1일부터 폴란드 포즈난에서 열리고 있다. 공식 등록자 1만 명. 아침마다 각종 회의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회의가 열리는 포즈난 국제 전시장은 분주하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정부 관계자들만 모이는 자리가 아니다. 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모인 언론은 물론 환경단체, 이익단체, 원주민 단체에 상당수 회의가 개방돼 있고, 이들은 공식 출입증을 발급받는 것은 물론 사무실, 행사장 등을 지원받는다. 따라서 이곳에서 비정부기구(NGO)는 말 그대로 협상을 진행하는 정부 관계자가 아닌 이들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올해 포즈난 기후변화협약 총회의 주요 주제는 교토의정서 이후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다. 교토의정서의 효력이 만료되는 2012년 이후 감축 대상과 방안에 대한 논의는 작년 발리회의에서 '발리 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었고, 2009년 11월말에 열리는 코펜하겐 회의를 시한으로 세계 각국은 치열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현안으로 부각되는 것은 작년 발리 로드맵에서 채택된 개도국 산림 파괴 방지 사업(Reducing Emissions from Deforestation and Forest Degradation in Developing Countries·REDD), 핵 발전과 탄소 포집 기술(CCS)에 대한 논쟁이다.
우선 REDD를 놓고는 비난의 목소리가 회의장 곳곳에서 계속 들리고 있다. 아직 화전 등의 방법을 통해 산림을 이용하는 원주민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선진국들의 이해만 좇아온 세계은행 등이 적극 참여하고 있어서 기후변화 방지를 이유로 새로운 불평등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청정개발체제(CDM)에 핵 발전과 탄소 포집 기술이 포함 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들이 교토의정서 체제의 핵심 저감 방안인 CDM에 포함될 경우, 에너지 효율성 향상과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을 중심으로 노력해온 그간의 성과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핵 산업계의 역습
국내에서는 핵 발전이 기후변화 방지에 역할이 크다는 광고가 연일 TV를 통해 나왔지만, 사실 기후변화와 핵 발전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었다. 기후변화협약에서 핵 발전을 온실가스 저감 방안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간 핵 발전이 갖고 있는 다른 환경적 문제 즉, 사고위험, 폐기물 문제 등 때문에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많은 국가들이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 산업계의 지속적인 로비는 상황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08년 전망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의 목표치를 이산화탄소 기준 450ppm으로 안정화시키는 'Blue Map'을 발표한다. 포즈난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의장의 요청으로 발표되기도 한 이 안을 보면, 핵 발전은 향후 온실가스 저감 방안에서 6%를 차지한다. 이는 에너지 효율성 강화(36%)나 탄소 포집 기술(19%)에 비해서는 적은 양이지만, 지금까지 핵 발전이 온실가스 저감 방안으로 인정되지 않던 것에 비해서는 상당한 비중이다.
이러한 진전을 위해 그간 국제원자력기구(IAEA), 세계원자력협회(WNA), 유럽원자력학회(ENS)는 많은 노력을 해왔다. 포즈난 회의에서도 이들의 전시 부스와 행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들은 핵 발전이 CDM 등에 적극적으로 포함되어야 함을 계속 역설하고 있다.
각종 세미나에서 이들은 핵 발전 없이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다소 공격적인 내용으로 안전성 논란에 대해서는 화력, 수력발전의 사고율을 보여주면서 어느 에너지나 항상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있다. 또 핵폐기물 처리 방안을 놓고는 아직 완전한 해결은 안 되었지만, 이는 인류가 함께 풀어나가야 문제라며 열린(!) 답변을 하는 등 자신감 있는 입장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 등 대형 사고로 인한 핵 산업계 위축, 핵폐기물 논란 등으로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겪었던 핵 산업계가 기후변화 문제를 계기로 '원자력 르네상스'를 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 12월 4일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 온실가스를 450ppm으로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2050년까지 탄소 포집 기술을 통해 19%, 원자력 발전을 통해 6%의 온실가스를 줄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 ⓒ프레시안 |
기후변화 방지의 발목을 잡는 핵 발전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린피스, 지구의벗를 비롯해 핵 문제에 전문적으로 대응해 온 WISE(World Information Service on Energy), NIRS(Nuclear Information & Resource Service) 등은 탄소 감축의 걸림돌(obstacle), 기후변화 방지를 훼손하는 핵 발전(Undermining Climate Protection), 에너지 효율성과 재생 가능 에너지에 투자될 돈과 시간을 훔치는(Steals time and money) 핵 발전과 같은 원색적인 비난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제기된 안전성과 핵폐기물 처분 문제는 물론이고 핵 발전으로 인해 그간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꾸준히 투자해 온 재생 가능 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사업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핵 발전은 기획 단계에서 완공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릴뿐더러 매우 비싼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반면 풍력 등 재생 가능 에너지원은 1기의 발전량은 많지 않지만, 개별 발전소의 단가가 낮고 건설 기간이 짧아서 같은 비용을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에 쏟아 붓는다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들은 최근 핀란드가 건설을 결정하여 '원자력 르네상스'의 예로 많이 언급되는 올킬루오토(Olkiluoto) 3호기의 예를 들며, 2001년 발전소 건설을 결정하던 당시부터 2008년까지 15억 유로(2조8000억 원)를 쏟아 부었는데, 만약 당시 풍력발전 프로젝트를 같은 비용으로 했다면 핵발전소 건설과 같은 용량의 발전소가 지금 가동되고 있을 텐데, 아직도 핵발전소는 완공되려면 3~4년이나 남았으며, 그만큼 재생에너지 산업이 육성되지 못했다며 잘못된 선택을 비판한다.
한정된 자원과 시간을 갖고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는 정책 판단의 특징을 생각할 때 핵 발전의 융통성 없음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프랑스, 러시아 등 주요 4개회사만 갖고 있는 주요 기기 설계 기술, 5개국 주요 생산국에 한정된 우라늄 채광, 4개 회사로 국한된 우라늄 농축기술 등은 핵 확산 문제와 함께 핵발전이 전 세계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사로 나설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이다.
▲ 그린피스와 유럽재생에너지회의(EREC)가 공동으로 발표한 'Energy [R]evolution' 중 세계 1차 에너지 소비 시나리오.(기준안/제시안). ⓒ프레시안 |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한 선택, 기후변화협약
핵 발전을 둘러싼 논쟁은 탄소 포집 기술(CCS) 논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제철소나 화력발전소 등 대규모 탄소 발생 공장에 탄소 포집 시설을 건설하여 지층에 보관하는 탄소 포집 기술은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 희망으로 선전되곤 한다.
하지만 이 기술은 높은 비용과 기술적 검토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화석연료 사용 저감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오고 있다. 아직 관련 기술이 완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에너지부에서만 2009년 연구개발(R&D) 예산으로 6억2000만 달러(약 9040억 원)이 편성되어 있고, 현재 예상 가격이 탄소 포집, 운송, 지층 저장, 모니터링을 합해 이산화탄소 1톤당 16.6달러에서 최대 91.3달러까지 예상되는 고비용 기술이다. 반면 탄소 포집 기술은 기본적으로 석탄 등 화석연료의 소비를 전재로 하기 때문에 화석연료 사용은 줄지 않고 이후 지층을 통해 온실가스가 유출될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에 더 큰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는 기후변화문제를 위한 국제기구인 IPCC가 설립된 지 20년이 되었고,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지 11년이 되는 해이다. 온실가스 문제는 인류의 계속된 화석연료 사용으로부터 지구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활동으로 시작되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의 핵심인 온실가스 감축은 계속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애초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토의정서에 직접적인 감축 수단이 아닌 CDM, 배출권 거래와 같은 간접적 감축 수단이 포함되어 많은 비난을 받았고, 이는 이후 온실가스 감축까지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제 교토의정서가 효력을 다하고 새로운 협약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계속 추진하려는 시점에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본질과는 거리가 먼 핵 산업의 부활이나 새로운 온실가스 감축 회피 수단인 탄소 저감 기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온실가스 문제로 위기에 처한 인류가 이 문제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까? 기존의 대용량, 과소비,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바꾸지 못해 지금 겪고 있는 혼란보다 더 큰 혼란을 겪는 파국을 맞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으나, 그 선택에는 많은 유혹과 잘못된 희망(False Hope)이 도사리고 있다. 평소 기후변화 문제에 무관심 했더라도 매년 기후변화협약이 열리는 12월초 단 2주라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우려야 하는 것은 이 선택이 인류 전체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위한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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