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에도 한 대학에서 등록금 문제로 고민하던 학생이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이 학생은 학자금 대출조차 거부당하자 자살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등록금 때문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유사성매매 업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다행히(?)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은 행복할까?
대학생 중 약 40%가 학자금 대출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학자금 대출은 고금리로 악명이 높다. 학생들 중 일부는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다시 대출을 받거나, 사금융에 달려가기도 한다. 학자금 대출 연체자가 3만2000여 명에 달하고, 보증자가 67만여 명에 달한다.
'대학생 김유리씨(가명)는 "요즘 대학생들은 학자금 대출 이자 갚으라는 독촉 문자를 받고 그것을 피하려고 뼈 빠지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 학자금 때문에 학생들이 빚쟁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아시아투데이>, 2008년 7월 20일)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한 지원금이어야 할 학자금 대출이 사실상 청년신용불량자 양산의 관문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빚에 쫓기며 정상적인 학교 생활이 가능할 리도 없고, 사회에 나와서도 빚을 빨리 갚기 위해 서둘러 일자리를 잡으려다 보면 잘 사는 집 청년들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다. 등록금이 학생들을 잡고 있다.
부잣집 자식들만 여유로운 등록금 지옥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훌륭한 교육서비스에서 배제되는 것이 당연한가? 부잣집 자식들만 좋은 교육을 여유 있게 받아 엘리트가 되면 국가경쟁력이 향상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국민이 양질의 교육을 통해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것이 국가 발전 전략이다. 소수만, 그것도 부잣집 자식들만 좋은 교육을 받아서는 우리 국가 공동체의 미래가 어둡다.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건 고등교육까지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국민을 뛰어난 인재로 교육시키면 그 국민이 다시 국가를 발전시킬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 반대다. 등록금 1000만 원 시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것은 돈 없는 사람은 고등교육 받을 생각 접으라는 소리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에 내정되었다가 낙마한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은 등록금이 연간 1500만 원은 되어야 한다는 말로 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바 있다. 이대로 가면 일류사립대학, 전문대학원 모두 연간 2000만~3000만 원대의 등록금을 받는 날이 올 것으로 예측된다.
등록금 지옥이다. 사립대 등록금 상승률은 2000년대 들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의 약 두 배에 달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조직적인 대응을 전혀 하지 않는 요즘 대학생들이 유독 등록금 문제에만은 집단적인 문제제기에 나서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지옥에 빠져버린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몰라도
지난 6·25 전란 때 천막을 치고 공부하던 모습은 한국의 교육열을 상징한다. 그런 교육열이 한국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연하다. 공부하는 집단에겐 미래의 희망이 있다.
그때는 국가에 돈이 없어 그랬다. 그래서 천막 치고 공부해야 했다. 지금은 세계 중상위권 경제수준이다. 전란시기도 아니다. 국민을 교육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명박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감세규모가 연간 10조~20조 원에 달한다. 정부재정을 줄일 만큼 여유가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왜 청년들의 비명을 방치하나? 우리나라에서 대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무상으로 시키는 데 필요한 돈도 10조에서 20조 원 사이로 추정된다. 감세만 안 하면 된다는 소리다.
감세만 안 하면 학생들의 등록금 자살, 부모의 등록금 자살, 유사성매매 아르바이트 모두 막을 수 있다. 과거에 무상교육을 주장하면 '말은 좋지만 그런 재정이 어디서 나오나'라는 반론을 국민들로부터 들었다. 심지어 요즘도 그런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로 무상교육을 할 만한 재정여력이 우리 국가에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모두가 등록금 걱정을 하면서 왜 아무도 감세에 저항하지 않나? 감세의 이익은 소수 부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들은 어차피 등록금 걱정을 안 하는 계층이다. 그들은 돈이 남아돌아가 보다 더 큰 등록금을 요구한다. 그들 때문에 자사고, 국제중 등 고액등록금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다. 감세로까지 그들에게 '퍼주기'하는 건 너무하다.
나라를 당대에 말아먹으려 하나
등록금으로 인한 고통은 막대하고 광범위하다. 자식을 키우는 모든 가정이 이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즉, 무상교육은 민생정책 중에서도 민생정책이라 할 만하다. 바로 이런 부문에 재정투입이 되어야 한다.
첫째, 이것은 다수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적절하다. 경제위기로 타격받는 것은 부자들이 아니라 서민들이다. 부자의 이익을 위해 서민의 고통이 가중되는 것은 경제위기를 당한 국민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서민의 고통이 가중된다는 건 이런 의미다. 감세하면 국가가 국립대를 지원할 여력도 줄어든다. 그리하여 국립대 등록금이 인상된다. 국립대의 저렴한 등록금은 사립대 등록금의 과도한 인상을 막는 제어장치 역할을 한다. 이것이 풀리면 남는 것은 폭등의 질주다. 그런 이유로 서민의 고통이 가중된다.
둘째, 돈을 마구 뿌리는 수요진작책보다 교육지원이 훨씬 미래지향적이다. 6.25전란 때 아이들에게 초콜렛 한 상자씩 나눠주는 것과 책 한 권씩 나눠주는 것 중에 어디에 돈을 썼을 때 국가의 발전에 보탬이 됐을까?
지금 정부는 위기에 처한 경제를 살린다며 건설토건에 재정을 뿌리려 하고 있다. '삽질'한다고 미래가 밝아지진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교육에 돈을 써야 한다. 그러면 경쟁력이 강화된다. 10년 후에 다시 경제위기를 겪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 다시 사람을 키워야 한다. 우린 6.25 때도 그랬던 민족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촉발한 시초는 미국 금융위기라고 하지만, 결국 우리 경제의 허약함이 일을 키운 것 아닌가. 그 허약한 체질의 근본 원인이 부실한 인재 양성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감세를 중지하고 교육 지원으로 돌리면 이렇게 두 가지 이익이 발생한다. 당장 경제위기로 직격탄을 맞을 서민가계와 지옥에 빠진 20대를 구하고, 동시에 국가의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다. 이것을 놔두고 부자이익을 위해 감세를 추진하는 건 미친 짓이다. 나라를 당대에 말아먹으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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