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형이 대통령과 무관한 개인일 수 있을까? 상상 가능한 '가정'이기는 하다. 다만,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특히나, 한국적 상황에서는 말이다. 다소 마초적인 은유를 사용하자면, 한국사회에서 남자로 살아봤으면 안다. 그건 불가능하다. 자연인 노무현이 솔직한 언어, 동생의 화법으로 대변해줬다. '동생 된 도리로서 형에 대해 사과할 수는 없다'고. 이해한다, 그 심정. 형은 없지만, 나도.
대통령까지 지낸 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하면, 상상 가능한 출세의 끝까지 가본 그이다. 하지만, 형 앞에선 별 도리가 없다. 하찮은 동생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형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무엇을 상상하던 늘 나보다 앞서는.
노건평 씨가 아직 죄인은 아니다. 혐의에 대한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어 구속수사의 필요성이 인정된 단계이다. 그의 신분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에 대한 이상 과잉 열기는 노건평의 비리보다 더 심층적으로 해석해 볼 여지가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속된 말로 까놓고 말해보자면, 좀 가소로운 무엇이기도 하다. 노건평 씨에 대한 과잉 열기는 여전히 노무현이 우리사회의 미디어 프레임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조중동의 정파성, 그 빈곤한 장사의 수준을 보여준다.
수년 전부터 노건평 씨를 '봉하대군'이라고 부르던 조중동이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애초엔 수백억의 시세차익 운운하면서, 권력형 가족비리의 종합판이라고 할 전경환 씨의 경우와 비교하던 조중동이었다. 그 호들갑에 비하면, 나뿐인지는 모르겠으나 검찰이 현재 입증해낸 그의 수수액은 좀 약소하지 싶은 수준이 아닌가 싶다. 대략 4억 원 정도라고 한다. 추가로 밝혀질 금액이 있을 것이고, 4억 원 만으로도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다. 그 죄값만으로도 노건평씨는 충분히 몰염치하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노건평 씨의 비리가 이토록 나라를 뒤집을 만큼 충격적인 모럴해저드인가는 좀 우습다는 말이다. 온갖 연고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의 삶이 초라해서일까, 난 별로 놀랍지가 않다. 그런데 조중동은 한 번도 상상 안 해봤지 싶다. '봉하대군'이라 조롱하던 대통령의 형이 그 정도 해먹었을 줄은. 조중동이 갖고 있는 보편의 도덕론에서 이번 사건이 전혀 낯선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중동의 수준이 곧 청와대의 수준이기도 할 텐데. 그렇단다.
쓰다 보니, 글의 전개가 다소 거칠다.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3개의 신문이 지닌 도덕적 수준과 기대를 너무 폄훼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불편하신 분도 있겠다. 통 크게 사과드린다. 좋다. 나의 오해와 편견 때문이 세상을 어둡게 해석하는 것이라면, 전적으로 개인의 협량문제이다. 인정한다. 조중동이 세상에 기대하는 도덕의 수준이 결코 낫지 않다는 것을 과감히 인정한다. 그런게 민주주의 진전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번 노건평 씨 사건을 통해서라면 말이다.
노건평 씨 사건의 뉴스 가치는 충분하다. 그는 동생의 권력을 이용해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운 민주사회의 하늘을 같이 두고 살 수 없는 파렴치범이다. 그 사건을 파헤치는데 최선을 다했던 조중동의 철저한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잘했다. 조중동.
조중동의 도덕적 수준이 이토록 높다는데 감읍하며, 다시 한 번 그들을 같잖게 봤던 나의 과오를 반성하며, 그들의 수준 높은 도덕론에 고개 숙인다. 앞으로 한국 사회의 전망은 매우 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중동이 지닌 힘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죽은 권력을 까는 그 열정과 에너지를 산 권력을 해부하는데 동원한다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밝고 또 영롱할 것이다.
조중동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은 천지에 널렸다. 내가 잘 아는 동생이 쓰는 속된 표현으로 '천지빼갈'이다. 당장, 이 한 장의 사진에 대한 조중동의 활약이 기대된다. 조중동이 견지하고 있는 도덕론에 비춰 보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안경률 사무총장이 지난 5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개혁입법추진 난항 실태:정무위원회의 경우'라고 적힌 서류를 보고 있다. ⓒ뉴시스 |
지난 7일,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개혁입법 추진 난항 실태-정무위원회의 경우'라는 문건을 보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러저러한 말 돌리기를 하고 있지만,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야권의 표현을 빌자면, '상왕정치'이다. 미디어의 표현으로는 '만사형통'이다. 오죽하면, 홍준표 원내대표마저 '여당 됐어도, 감시 받는다'며 불쾌해 하고 있다. 이런, 노건평 씨만큼 나쁜.
정황은 충분하다. 이 사건을 노건평 씨를 '조진' 조중동의 문법으로 추적하면, 천인공노할 일이다. 앞으로 훨씬 더 충격적인 상황이 드러날 개연성은 차고 또 넘친다. 대통령의 형이 이런 식으로 나설 정도라면 '이권'이 개입될 여지는 너무 다분하다.
덧붙여, 현재 대통령의 고향이자 형님의 지역구인 '포항'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정부 예산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상황이 오죽 특이하면, 포항시의회 의장(최영만)마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예산이 쭉쭉 내려온다"고 할 정도이다. 조중동이 김해를 일컬어 '노방궁'이라고 했었는데, 이쯤 되면 포항은 이미 불로초를 구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시절이 하도 하수상하다보니 나도 점점 조중동을 믿게 되는 걸까, 아니면 형 없이 살아온 나도 사회에 적응이란 걸 해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 발등 찍는 줄도 모르고 날뛰는 조중동을 세상에 셋뿐인 천치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이번 주, 무엇보다도 조중동의 활약이 기대된다. 힘내라, 조중동. 멋져라, 조중동! 이번 주의 열쇳말은 '형'이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시골 사는 형은 그런대로 해 드셨고, 의원하는 형은 잘난 대로 해 드신다나, 아니 드신다나 뭐라나. 각설하고, 나도 형이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형은 당신의 미래일까, 한 번 점검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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