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정부는 저축은행들의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채권 매입에 1조3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후 관련 내용이 보도된 뒤 금융위원회는 각 언론사에 전화를 하느라 바빴다. 이날 발표된 내용이 '공적자금 투입'이 아니라는 해명을 하기 위해서다.
유사 공적자금 투입이 더 문제다
엄밀히 따지면 정부가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저축은행에 투입하는 돈은 '공적자금'이 아니다. 공적자금은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따라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서 지원이 결정된다. 공적자금 투입 이후 정부가 공적자금 운용과 관련된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국회의 감시를 받는다. 또 공적자금 투입은 지원대상 금융기관의 자체 구조조정 노력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부실금융기관의 경영책임과 감독책임을 부담할 자가 있을 때에는 손해배상 청구 등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즉 공적자금은 투입, 관리, 회수,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 추궁 등을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저축은행 지원이 '공적자금 투입'이 아니라는 금융위원회의 주장은 맞다. 하지만 '공적자금 투입'이 아니라서 더 문제다.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 저축은행을 지원한다는 본질은 달라지는 게 없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은 관련법에 따라 사회적 감시가 가능하고 부실경영에 대한 일부 책임 추궁이 강제되기라도 하는데, 3일 정부가 발표한 1조3000억 원의 부실채권 매입 방침은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정부가 극구 '공적자금'이 아니라고 부인하는데도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 저축은행을 모두 살리겠다는 것이냐"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저축은행 PF 부실 채권 매입은 건설사 부실과도 연관된 것이다. '대주단협약'과 '은행에 대한 대출 압박'에 이어 이명박 정부의 부실 건설사를 살리기 위한 눈물 겨운 노력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4일 논평을 내고 "PF 사업장(시행사)의 부실은 곧 이에 지급보증을 선 시공 건설사의 부실로 이어지게 될 것이므로, 결국 정부는 부실 건설사를 부도내지 않기 위해 부실 PF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막무가내식 지원
경제개혁연대는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막무가내식 지원도 문제"라면서 "금융위는 업계 스스로의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전제로 캠코를 통한 지원 등이 이뤄질 것이라고 하고 있으나, 저축은행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강제하는 정부의 의지는 전혀 확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BIS비율이 5%미만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저축은행은 대주주의 증자 등 자본확충계획을 제출하도록 하고, BIS비율이 5-7%인 저축은행은 배당 제한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는 "BIS비율이 5% 미만으로 하락할 것으로 우려되는 등 부실 위험이 큰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자구노력을 강조하는 차원을 넘어 법에 규정된 적기시정조치가 발동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기시정조치는 BIS비율 및 경영실태평가에 따른 부실의 정도를 기준으로 경영개선권고, 경영개선요구, 경영개선명령 등의 3단계로 발동된다. 첫 단계인 경영개선권고는 은행의 경우 BIS비율이 8% 미만일 때, 저축은행은 5% 미만일 때 발동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의 부실 확대는 단순히 외적 환경 악화에 의한 게 아니라 PF 대출을 무리하게 확장한 금융기관에 상당 부분 그 책임이 있다"며 "이번 정부 지원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건설사의 부실을 은폐해 위기의 근본적 타개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기업을 살리는 식의 10년 전 외환위기 직후 시행착오만 되풀이될 것"이라며 "경제위기 시 모두를 살리고자 하면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등 '옥석 가리기'가 우선되지 않으면 부실기업이 경제 전체의 발목을 잡는 우를 되풀이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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