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90년대 중반 이후 나는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어 있었다. 학교 사회를 잘 이해하지 못해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하는 경험을 하였다. 선생님에게 필요 이상 혼나고 오고 잘못을 지적받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마도 봉투 문화를 이해 못해서 생긴 일 같았다. 아이를 가르쳤던 네 선생님 중에 두 선생님은 진실하고 교사라는 직업을 즐기는 것 같았다. 참 재미나게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도하였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학부모인 나는 함께 행복해하고 즐거웠던 기억을 갖고 있다. 이제 지금 대학생의 학부모가 되었다. 대학교에 얽힌 사회문제에 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진 적이 별로 없었다. 지금 학부모 입장에서 비정규직 교수님들 문제에 관련한 글을 써 달라니까 이런 저런 내가 아는 교육문제에 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 한국에서 교육 문제는 모든 국민의 문제이자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그리고 대학 시간강사 문제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현안 가운데 하나이다. ⓒ이광수 |
10여 년 전부터 빈곤층의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삶을 살다보니 교육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부모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 사는 곳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는 의사 아들을 두고 판사는 판사 아들을 둔다. 교사는 교사 아들을 둔다. 막일하는 사람은 막일하는 아들을 둔다. 가난한 집 자녀는 대개는 또 가난의 대물림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가난의 대물림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교육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도 가난한 집 자녀로서 어릴 때부터 유치원 교육을 비롯해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고 성장하였다. 학교 갔다 와서는 책가방 집어 던지고 거의 자유롭게 생활을 했다. 나는 늘 화학비료로 아이들을 키우지 않고 퇴비로 아이들을 키운다고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자녀들은 영어 공부를 힘들어 했다. 나는 현실을 잘 모르고 왜 영어 성적이 오르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원어민어학원에 다닌 아이들과, 방학 때마다 외국에서 살다온 아이들의 층이 너무 두터워 뛰어넘기 힘들다고 했다. 심지어는 '왜 엄마는 우리를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 두어 지금 수능 공부하는데 지장을 주느냐 조금 더 미리 영어 공부를 시켰더라면 아마 다른 공부 하는데 조금은 쉬웠을 것이라'고 원망을 하였다. 난 그럴듯한 좋은 말로 변명을 하였다. '얘들아, 서울 강남 사는 애들은 의과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학원에서 공부한단다. 그렇게 의존적으로 공부해서 어떻게 스스로 의사를 할 수 있겠니? 너희들은 화학비료도 안주고 농약도 안주고 그냥 자연으로 유기농법으로 키운 아이들이라 지금 때깔은 나지 않지만 아마 튼튼하여 정말 너희들이 원할 때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말해 주었다. 이것은 나 자신을 향한 자위의 말이었다.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고 원망을 들을 때마다 아쉬워한다. 유기농법으로 키우더라도 조금 더 일찍 제 때 물을 주고 퇴비를 줄 수 있을 텐데. 다시 한 번 초. 중고등학교 학부모를 한다면 잘할 수 있을 텐데. 조금 더 일찍 영어 공부를 시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부모로서 숨은 욕심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차피 부모는 아이가 필요한 사랑과 돌봄을 공급해 주고 아이 스스로 물먹고 공기 먹고 햇볕을 쏘이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유기농으로 아이를 키운 어머니라고 말하는 나는 어느덧 대학생 아들을 두게 되었다. 지난 1학기 말 갑자기 반수를 하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자기가 수강 신청한 '북한 바로알기'란 교양과목이 C+가 나와서 반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2~3일이 지나자 자신이 전공하는 경제학 관련 과목 점수가 그런대로 잘 나와서 반수를 안 하겠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잘잘못을 떠나 자신이 C+점수를 받은데 대한 불만과 변명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점수 받는 것을 포기하면 다시 수강할 기회를 준다는데 아마도 그 과목은 소위 말하는 '강사'가 가르친 과목이라 다시 번복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다음 학기를 기약할 수 없는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내 아이를 가르치는 교수님이 비정규직 교수님이기보다 잘못 받은 점수를 포기하고 다시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정규직 교수님으로부터 공부하기를 바란다. 나는 내 아이가 경제학을 전공하되 곱셈의 경제학보다 나눔의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으면 하고 막연하게 바라고 있다. 50년마다 한 번씩 다시 땅을 골고루 나눠 갖고 다시 시작하는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희년을 실천하는 경제학을 공부했으면 하고 터무니없는 희망을 가져본다. 누구든 다시 기회를 주어 동등한 출발선에서 다시 경기를 시작하는 것을 꿈꾸어 본다.
나는 내 자식이 공부하는 대학사회가 깨끗한 사회이기를 바란다. 교수가 되기 위해 많은 돈을 갖다 바치는 그런 부패와 비리가 행해지는 학교에서 공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 자식이 공부하는 학교의 교수님들은 돈으로 정규교수직을 팔고 사는 관계가 아닌 분들이기를 바란다. 정규직 교수님에게 줄을 대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많은 시간강사들이 10년, 20년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꿈을 갖고 학위를 따서 돌아오고 난 뒤에는 아부하고 줄을 대고 돈을 내야 교수자리를 얻는 현실을 비관하여 유서를 써 놓고 자살한다고 한다. 연구 성과가 탁월한 사람이라도 전임교수에게 아부하지 않고 대접하지 않으면 채용기회를 놓친다고 한다.
돈이 아닌 실력으로 아부가 연구실적으로 인정받은 교수에게서 공부하기를 바란다. 보통 한국대학들은 60% 이상 시간강사에 의존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간강사들이 시간당 2만5000원~5만 원 강사비를 받고 3학점짜리 3과목 이상을 강의를 하면 거의 기초수급자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것도 방학에는 그 적은 임금마저도 받을 수 없다고 들었다. 비정규직 교수님들인 시간강사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할 것이고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가 공부하는 대학교의 교수님들이 비정규직에서 고통과 한숨 속에서 몸부림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충분한 물질적 대우가 뒤따라서 강의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되기를 원한다. 내 자식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은 먹고 사는데 걱정 근심이 없어 밝은 얼굴로 자신의 소신을 학생들에게 피력하는 분들이었으면 한다.
▲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엄연한 교수가 교원이 아닌 일용잡급직이라면 앞으로 누가 대학원을 갈 것이며, 대학 교육은 어떻게 정상화 될 것인가? ⓒ이광수 |
남북이 정전 협정이 아닌 평화협정을 맺으면 4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무기를 사오는 돈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내 자식들이 대학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꿈꾸어 본다. 무기를 사는 돈으로 비정규직 교수님들을 정부에서 책임지고 교원의 지위를 주고 정규직 교수님으로 채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종합부동산세가 없어지거나 허울만 있는 법으로 바뀐다는 소문이 있는데 종합부동산세는 더 많이 거두어서 백년대계인 우리 자식들의 교육을 무상으로 하고 비싼 돈 들여 10년, 20년 이상 학자로 키워 놓은 비정규직 교수님들도 그 실력에 따라 정규직 교수님들로 채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 자식들은 그분들의 전인적인 인격을 받아들여 흔들림 없는 인간으로 자라날 것이다.
어떤 강의는 200~300명의 학생들을 무더기로 놓고 강의를 한다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인격을 배울 수 있겠는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처음 창립되었을 때 노태우 대통령은 선생님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해직된 2000여명의 선생님들이 전국에서 운동의 중추역할을 하여 얼마나 사회의 반응이 컸는지 기억이 새롭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사회 곳곳에서 참으로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특히 아이들의 입장에서 교육개혁을 주장하고 참교육을 주창하였다. 오늘 한국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비정규직 노동자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학강사가 노동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교수는 말이 좋아 '교수'이지 완전한 비정규직 일용노동자다. 4대 보험은 물론 가입할 수 없고 일정한 교원의 지위가 없어 그저 '일용직'으로 정규직 교수들이 받는 월급의 십분의 일 정도의 수입이라고 한다.
▲ 400 일이 훌쩍 넘어 버린 국회 앞 천막 농성에도 봄은 올 것인가? ⓒ이광수 |
대학 강사의 노동조합인 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한지 400일이 지났다고 한다. 비정규교수노동조합 운동이 부디 성공하여 깨끗한 대학사회를 형성하도록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모든 비정규교수들이 참여하여 건강한 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스스로 권리를 찾는 노동조합이 되기를 바란다. 부디 교원으로서의 지위를 합법화하여 시간강사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해 본다. 비정규직교수님들의 문제 상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그룹은 역시나도 정규직 교수님들이다. 정규직 교수님들이 비정규직인 시간강사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삶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 비록 함께 농성장에 참석하진 못해도 크게 외쳐본다. 비정규직 철폐!
* 이 연재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의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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