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딱 한 장 밖에 남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다는 의례적 표현이 정말이지 멋쩍었던 '초난감 리얼 버라이어티 2008년'이었다. 너무 강렬한 인상이 남아서일까, 아니면 낙담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2008년을 채 정리하기 전이지만 2009년 이야기가 벌써 부쩍 많다.
우선, 눈에 띄는 건 내년엔 휴일이 적단다. 주5일제 근무자를 기준으로 내년 쉬는 날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해 모두 110일이란다. 올해(115일)보다 5일이나 줄어든 숫자이다. 가슴이 미어져온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헤어짐이 있었으면 만남도 있는 법, 작년과 올해가 연예인 입대의 해였다면, 내년부턴 제대의 러시인가 보다. GOD의 김태우(2월), 배우 이켠(3월), 서지석, 여현수(5월), 가수 싸이(11월), 배우 천정명(11월), 배우 공유, 가수 김종민, 에릭(12월) 등이 각각 제대 혹은 소집해제 된단다. 이럴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시간 참 빠르다.
그리고 이 분들도 납셨다. 전망과 예측에서 둘째간다면 서러워할, 16년 넘게 예측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 외치는 증권사들도 2009년 주가 전망을 내놓았다. 어제 오늘을 기점으로 거의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일제히 2009년 주가 예측치를 내놓았다.
가장 재밌는 예측을 내놓은 곳은 전통의 강자 삼성증권이다. 3개의 시나리오를 내놨는데, 코스피가 1240~1540에 갈 확률이 15%, 990~1320에 갈 확률이 50%, 720~870에 갈 확률이 35%란다. 현재 코스피는 겨우겨우 1000선을 사수하기도 힘든 모양새다.
그 밖에는 대략 엇비슷하다. 나 뿐은 아닐 것이다. 소문난 예측에 건질 것 없다고 느낀 이는 이렇게들 둔탁하다. 이들이 얼마나 둔한지는 작년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이맘때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예측했던 올해 코스피지수의 최저점은 1500선, 최고점은 2550선이었다. 올해 실제 저점(10월24일 938.75)과는 561포인트, 고점(5월16일 1888.88)과는 661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는 가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한 마디로 무릎팍 도사만도 못했다. 완전 엉터리였다.
그리고 주가 예측하면 빠질 수 없는 또 한 분도 납시셨다. 얼마 전 예측을 내놓으셨다. 올해 안에 주가지수가 3000을 돌파하고 임기 안에 5000까지 간단다. 주가 예측의 달인, 후라이 이명박 선생이시다. 기꺼이 노스트라다무스 행렬에 가세하셨다.
그 분 왈, 지금 주식사면 1년 안에 부자 될 수 있단다. 복음과 같은 말씀이다. 불과 1년 전, 최고 2550까지 간다는 증권사 리포트 믿었다가 반 토막, 삼 토막, 최근에 유행하는 표현으로는 '갈치' 토막 난(통상 시장에서 갈치를 사면 5토막 정도 쳐준다) 메마른 주머니들에겐 그야말로 멈추지 않는 샘물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말씀이시다.
믿거나 말거나 우연찮게도 올 해 증권사들 중에 최고점의 예측을 낸 삼성증권과 이 분의 말씀을 버무려보자. 삼성증권은 15% 확률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1540까지 갈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의 말씀과 삼성증권의 숫자를 버무리면, 내년 수익률이 50% 정도 될 거라는 얘기다. 만원 넣으면 만 오천원 된다는 산수이다.
옳거니, 이쯤 되면 정치와 경제는 혼연 일체 완연한 하나라고 봐야 한다. 10년을 잃어버리기 전에 가장 큰 사회악 중의 하나가 '정경유착'이었는데, 그 10년을 되찾자는 구호가 요란하더니 제일 먼저 찾아진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정경유착'의 풍경이다. 대통령이 희망의 '선무당'이 되고,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권사가 여지없이 '작두'를 오르는 기묘한 굿판이다.
국내 증권사들, 뭐랄까. 한 마디로 양치기 소년이다. 이는 기관, 개인 가릴 것 없는 일치되는 견해이다. 최근 들어 외국계 증권사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면, 곧바로 관련 회사의 주식이 급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굴지의 국내 기업들인 LG전자, 기아차를 비롯한 자동차 업종 전체, GS건설, 미래에셋증권 등이 외국계 증권사의 유탄을 맞고 휘청했었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국내 기업의 현황을 국내 증권사보다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지만,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같은 현상은 반복되고 있다. 왜 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국내 증권사들의 전망이 언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장밋빛이기 때문이다. 마치, 그 분처럼. MBC 보도에 따르면 국내 증권회사들은 지난 9월 이후 주가가 폭락하는 중에도 단 한 건의 매도 의견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매도 의견의 한 단계 약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비중 축소 의견을 낸 곳도 4곳밖에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80% 넘게 주식을 사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었단다. 그 분을 볼 때처럼, 아, 진짜 "성질이 뻗쳐서 정말, '씨∼ㅂ'"
우리들의 일그러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주식 부자 발언이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대통령의 '희망 메시지' 전달을 언론이 왜곡하고 있다는 브리핑을 냈다. 이동관 대변인이 역정을 냈다. 올해 안에 주가가 3000을 갈 거라는 지난 예측이 현실에서 어떻게 박살이 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투다. 주식을 사라는 그 분의 말씀이 실은 다시 한 번 '경제는 대통령이 다 챙길 테니 걱정 말라'는 격려였단다.(아직 2008년이 한 달이나 남아서 이들은 이토록 천하태평인가 보다.) 이에 대해 <미디어스> 윤희상 기자는 "MB를 '불량 가부장' 만든 정부·여당"이란 기사를 통해 "아버지를 무조건 믿고,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학교 등록금을 내 놓으라"고 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 나의 불량 아버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정치와 경제는 정녕 둘인가. 정부의 대북강경책에 '삐라'가 토핑 되면서 경의선이 멈춰 섰다. 개성공단이 곧 사라질 위기이다. 개성공단이 멈추면 눈 뜨고 코 베이는 돈 2조5000억 원이 당장 사라질 수 있다는 예상이 있지만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왈, "그것이 옳은 방향이란다." 정치와 경제는 다른 것인가?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을 리먼 브라더스 '덤&더머'가 입을 열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비웃는다. 정치와 경제는 진짜 둘인가? 이번 주의 열쇳말은 다시 돌아 온 '정경유착'이다. 시골의사라는 '소박한 저명함'을 갖고 있는 박경철씨는 말했다. 개인이여, 주식을 팔라고.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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