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저런 지면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고 어느새 15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15년이면 갓난아기가 중학생이 될 시간이니 상당히 긴 시간이다. 15년이 두 번 지나면 서른 청년이 환갑 노인이 된다. 얼추 따져 보아도 15년 동안 쓴 칼럼이 200자 원고지로 2만 매를 훌쩍 넘는 것 같다. 2003년부터 5년여 동안 참여연대에 쓴 칼럼만 해도 280여 편에 5000매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그 중에는 10매 내외의 분량으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칼럼보다는 더 긴 20~30매의 분량으로 몇 가지 주제에 대해 학술적인 논의를 하는 글들도 적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이런 글들도 대체로 칼럼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내 딴에는 열심히 재미있게 쓴다고 쓰는데 책을 내자고 하는 출판사는 한 곳도 없다. 기록을 위해서도 출판을 하고 싶어서 몇몇 출판사에 출판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는 그냥 내기 어렵다고 알려왔고, 일부에서는 내 글이 옳기는 하지만 너무 강해서 출판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용이 대체로 옳기는 해도 별로 재미는 없기 때문에 출판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은 재미의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대에 별 재미는 없이 혈압을 높이는 칼럼을 쓰고 있으니 출판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빨갱이 병 환자들이 내 글에 대해 상당히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나로서는 나름대로 큰 보람을 느낀다.
지난주에 쓴 '빨갱이 병과 우뻘 좀비'라는 글에 대해 빨갱이 병에 걸린 우뻘 좀비들의 비난이 빗발친 것을 보았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내 진단과 주장이 맞았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그 내용은 대부분 '명예 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하는 것이다. 자기들이야말로 이런 잘못을 밥 먹듯이 저지르면서 이런 잘못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자고 주장하는 그 속내는 대체 무엇일까? 자기들은 밥 먹듯이 '명예 훼손'이나 '모욕'을 저지르더라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사실 우뻘 좀비들은 '명예 훼손'이나 '모욕'의 차원을 훌쩍 넘어서 '살인 미수'나 '살인 공모'에 해당하는 잘못마저 저지르고 있다. 벌써 몇 년 전에 이른바 '좌익 살생부'라는 것을 만들어서 널리 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뻘 좀비들의 증세는 심각하다. 빨갱이 병은 사람들을 정상적으로 보지 못하는 지독한 정신병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빨갛게 보인다. 심지어 돌과 나무조차도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빨갛게 보인다. 이런 증세를 갖고 있으니 우뻘 좀비들은 '좌익 살생부'라는 것을 만들어서 널리 유포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 '살생부'에 적혀 있는 교수들은 대부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라는 교수단체의 회원들이다. 우뻘 좀비들의 눈에는 민주화를 위해 애쓰는 교수들이 모두 빨갱이로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빨갱이 병에 걸린 우뻘 좀비들의 실체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반민주 세력이다.
우뻘 좀비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적극 추진하고 있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역사 바로 눕히기'이다. 아마도 '진정한 보수 우익'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적극 대처해야 할 것이다.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규정하거나 '좌익 살생부'라는 것을 만들어서 유포하는 것도 대단히 심각한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끝없는 희생과 복종을 강요한 식민과 독재의 역사를 찬양하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더욱 더 심각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정부 차원에서 추진된 것은 바로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이다. 이명박 정부는 우뻘 좀비들을 내세워서 김영삼의 '문민정부'를 부정하는 것인가?
돌이켜 보면 우리의 근·현대사는 거의 대부분 고통의 역사였다. 자생적인 근대화의 노력은 일제의 폭력에 의해 제압되었으며,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서 오랫동안 통치했다.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일제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서 엄청난 이익을 거두었다. 반면에 우리는 가축처럼, 노예처럼 살아야 했다. 물론 일부 친일파는 예외였다. 그들에게 식민지 시절은 영광과 번영의 시절이었다. 문제는 해방 뒤에도 그들이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기나긴 독재의 기간 동안 친일파는 승승장구했고,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빨갱이 병을 널리 퍼트렸다.
빨갱이 병에 걸리면 세상을 올바로 볼 수 없다.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이 많다면 당연히 나라가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 일찍이 존 스튜어트 밀이 설파했듯이, 모든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빨갱이 병 환자들도 마땅히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좌익 살생부'같은 것을 보면서 우리는 빨갱이 병에 걸린 우뻘 좀비들이 얼마나 큰 문제를 안고 있는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표현의 자유는 사회의 발전을 위해 귀중하다. 만일 우뻘 좀비들이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런 자들이 이 사회에 많다는 것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쳐서는 곤란하다. 빨갱이 병에 걸린 자들은 사회를 파행상태로 몰아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적극 대처해야 한다.
빨갱이 병과 관련해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그 환자들이 늘 자유를 내세워서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공격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은 그의 <자유론>이라는 책에 실린 것이다. <자유론>은 자유주의의 고전으로서 이를테면 '진정한 빨갱이'도 대단히 싫어하는 책이다. 만일 빨갱이 병에 걸린 자들이 정말 자유를 위한다면, <자유론>을 정말 열심히 학습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자유론>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자유를 외치는 것은 거짓일 뿐이다. <자유론>은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공격하는 것은 자유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자유론>을 잘 읽으면 빨갱이 병은 치유될 수도 있다.
이명박 세력이 강행하는 '역사 바로 눕히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식민과 독재의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또 다시 빨갱이 병을 널리 퍼트리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일찍이 공자가 가르쳤듯이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사람의 참됨을 판단해야 한다. 이명박 세력은 '좌편향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뻘 좀비들이 보여주고 있는 그 실체는 무엇인가? 식민의 역사를 발전의 역사로 미화하고, 안중근 의사와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왜곡하고, 정신대 여성들을 '자발적 창녀'로 모욕하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를 극구 찬양하고, 이에 맞서서 민주화와 고성장을 이룩한 시민의 힘을 깡그리 부정하는 것이다.
이명박 세력은 식민과 독재의 세력인가? 그래서 후진적인 빨갱이 병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널리 퍼뜨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가?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망국적 작태를 만연시키는 것이 이명박 세력이 추구하는 '선진화'인가?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식민사관'과 찬연한 민주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자학사관'이야말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후진사관'이다. 권력을 이용해서 이런 '후진사관'을 강요함으로써, 이명박 세력은 식민과 독재의 문제를, 그리고 빨갱이 병의 문제를 다시금 확인해주고 있다. 사실상 정권 차원에서 '후진사관'을 강요하고 있으니, 정말 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선진화'의 길은 참으로 멀고 험한 것 같다.
경제위기, 문화위기, 그리고 생태위기 등, 지금 우리는 여러 중첩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부자들은 자기들을 위한 종합부동산세 무력화에나 힘을 쏟고 있다. 그 자신 엄청난 부자로서 종부세 무력화의 유력한 수혜자인 유인촌 장관은 종부세 무력화가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이 나라를 흔히 '천민 자본주의'라고 하거니와 이 나라의 부자들은 대체로 '천민 부자'들인 것 같다. 여기서 천민은 그 행태가 천한 자들을 뜻한다. 한국의 '천민 부자'들은 대체로 식민과 독재의 기득권세력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의 개혁, 빨갱이 병의 치유, 그리고 '역사 바로 세우기'는 모두 깊이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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