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결특위의 계수조정 소위가 1일부터 본격 가동된다. 정부가 제출한 283조8000억 원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본격적인 '칼질'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감세와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기진작 구상을 뒷받침할 '실탄의 규모'가 결정되는 만큼 '예산 전쟁'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국회가 새해 예산안을 하루라도 빨리 처리해주면 특단의 방안을 강구해서라도 최대한 신속하게 예산 집행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호소한 것도 이런 까닭. 하지만 사정이 녹록치는 않아 보인다. 계수조정소위의 활동 결과가 곧 향후 정국의 향배와 직결돼 있어 여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법정시한(2일) 내 예산안 처리는 물리적으로 난망하다. 여권은 예산안과 부수법안을 먼저 통과시키고 2단계로 연말에 임시국회를 열어 소위 'MB 법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다듬고 있다.
한나라당은 예산안 단독처리 강행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국민이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제는 한계가 있다"며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연말 예산안 심의 자체가 늦어진 만큼 9일까지 처리하자는 건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맞서 있다. 민주당이 보는 처리 시점은 일러야 성탄절 전까지다. 결국 한나라당이 수의 논리로 밀어붙일 경우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민주당은 계수조정소위 보이코트도 불사하겠다는 방침.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4%대 성장률을 기초로 작성된 정부 예산안은 재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예결위 간사인 우제창 의원은 ▲성장률 2%대 하락 ▲국가채무 급증 ▲재방재정 감소 ▲일자리 창출 등 '4대 무대책 예산'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심사 과정에서 수정해야지 소위 불참을 운운하는 것은 국정 발목잡기라고 반박하고 있다. 172석의 여당이 야당의 주장에 끌려다닐 수 없다는 강경론도 힘을 얻고 있다. 여야 13명으로 구성된 계수조정소위는 한나라당 소속 위원이 7명이다.
각 상임위에 올려진 예산부수법안도 250여 건에 이른다. 기획재정위에 계류 중인 150여 건의 감세법안 처리가 화약고다. 한나라당은 종부세법, 상속 및 증여세법, 법인세법, 소득세법 등을 당력을 집중해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이를 '부자감세' 법안이라며 결사저지를 선언해 놓은 상황이다.
물론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 MB 법안 등의 '패키지 딜'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 한나라당은 예산부수법안을 비롯해 연말 께 처리를 목표로 잡은 사이버모욕죄, 통신비밀보호법 등 소위 'MB 법안'에 대한 일정한 포기를 감수해야 한다. 또한 일괄타결 방식은 여야간 채널이 원활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원내대표 간 물밑접촉도 없는 현 상황에선 쉽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예산안 격돌 국면에서 시간에 쫓기는 쪽은 여권이다.
하지만 민주당도 느긋할 수는 없다. 해마다 반복되는 예산안 처리 지연에 대한 비판을 일정부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세균 대표가 강조해 온 '대안 야당론'도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이 대통령이 예산안 처리 협조 등을 당부하기 위해 제안한 야3당 대표 오찬회동에 정 대표가 일찌감치 불참 방침을 밝히는 등 당분간 강경기조가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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