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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필요하면, 극약 처방도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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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헌재 "필요하면, 극약 처방도 써야"

환란 당시 '금융계 차르'…"향후 두세달이 중요. 위기는 진행형"

'다시 1997년인가?' IMF 외환위기 직후, 뒷수습을 맡았던 이헌재 전(前) 경제부총리에게 쏠리는 관심이 심상치 않다.

투기로 낙마한 이헌재, '11년 전 공포'가 다시 불러냈다

▲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맡았던 그는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했다. 그는 부총리 재임 시절, 부동산 거품을 부추기는 정책을 썼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이런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뜨겁다. ⓒ프레시안
이 전 부총리가 28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회의실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사와 교훈"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 2005년 3월, 이 전 부총리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했던 사실을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한국 경제가 다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3년 전의 기억'은 '11년 전 겪은 공포' 앞에서 설 자리가 없었다.

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이 이 대학 국제대학원 소천국제회의실에서 주최한 이날 강연에서 이 전 부총리는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장 실패가 있을 때 개입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가 꼽은 이유다.

그는 정부의 개입이 신속하고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 1기 내각에서,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았던 그의 경험이 담긴 발언이다.

"금융위와 금감원 통합 운영해야"

그는 이날 "필요하면 극약처방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 논란이 두려워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시간을 끌다보면 사태는 더 악화 된다"며, "사전적 예방비용보다 사후적 수습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고도 했다. 강력한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던 금감위장 시절, 외신을 그를 '금융계의 차르'라고 불렀다.

11년 만에 터져 나온 '차르'의 발언은 속사포 같았다. 그는 이날 "정책은 개별적으로 내놓지 말고 패키지로 쏟아 붓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그처럼 집중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기고 시장을 안정시키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통합해서 운영하라는 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이어 그는 기획재정부, 금융위, 한국은행 등에 흩어져 있는 국제 금융 업무와 국내 금융 업무 역시 통합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발 금융위기 없었어도, 한국 경제 위기 닥쳤을 것"
- 이헌재 강연 요약

현재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책의 실패라고 본다. 시작도 끝도 정책이 잘못된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IT 버블이 꺼진 이후 경제를 살려보고자 해서 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썼고 그 과정에서 금융공학도 낄 여지가 있었다. 또 한계 채무자와 한계 기업들에 대한 금융서비스가 무제한 확대된 측면이 있다.

소위 진단적 평가를 해야한다. 현실 판단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바탕으 차분하게 단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때로는 빨리, 그리고 과감하게 처리해야 할 필요도 있다.

미국, 문제 방치하다 리만 파산 이후 태도 바꿨다

미국의 경우, 불안한 상황을 1년 6개월 동안 방치했다. 이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월스트리트의 주요 은행들의 요구에 따라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나 싶다.

미국이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명분 축적을 위해 오래 끌지 않았나 할 정도로 미국은 오랫동안 방치했다. 어찌 보면, 요즘 유행하는 음모론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리만브러더스 파산 이후 태도를 바꿨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고 본다. 그래서 '문제를 미국 식으로 풀기 시작했구나,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조만간 해결되겠다'하는 생각도 해 봤다.

미국 시장 회복 더딜 것…자동차 3사 살리기에 발목 잡혀

그러나 미국 시장의 회복은 상당히 더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첫 번째로 시도한 게 미국 자동차 빅3의 구제금융이다.

자동차 3사를 살리려는 과정에서 구조조정 노력이 지연되고, 그래서 기업 전반의 거품을 걷어 내는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국제적 공조도 별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논의만 무성했지 뾰족한 결론이 없었다.

11년 전 위기 때도 규제 강화 외쳤지만, 결국 무산…"국제 공조, 어렵다"

아시아에 외환 위기가 왔을 때를 돌아보자. 전부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전세계 선진국이 모여 논의했다. 하지만, 3년쯤 지나니깐 결국 논의 자체가 없어졌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규제 강화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어떤 형태로든 규제가 강화될 수도 있겠지만 쉽게 결론내기 힘들것이다.

보호 무역을 억제해서 빨리 살리자고 하는데, 서로가 경제가 발전하고 성장할 때나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지 다같이 쪼그라 들었을 때는 실효성이 없다.

금융시장의 새로운 경향…"쓰레기 처리 시장이 뜬다"

금융시장이 다 부서져서 파국인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징후들이 있다.

우선, NPL(무수익여신)들이 쏟아져 나오고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시장에 출하되고 있다. 사모펀드, 블랙스톤 등이 그런 시장을 표적으로 삼는 듯 하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업무 영역을 조정할 조짐이 보인다. IB(투자은행) 스스로도 새로운 시장을 찾아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아이러컬하지만 NPL이나 금융위기 처리과정에서 나온 쓰레기는 예전과 달리 금융공학 상품들의 잔재들이다. 그것을 만든 전문가들이 더 후속 처리도 잘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일자리 잃겠지만 다시 처리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이번에 미국이나 각국이 국채도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인수한 엄청난 규모의 부실자산들이 있다. 언젠가는 출하될 것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시장을 만들 것이다.

아울러 규제가 강화되면 기존의 금융상품도 새로운 규제를 바탕으로 상품의 가치를 새로 평가할 필요성 있어서 금융시장이 새롭게 태동할 것이다.

금융시장의 규제가 강화되겠지만, 결국 새로운 형태의 금융시장이 다시 나타날 것으로 본다. 규제가 강화된 시장보다는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 강화된 시장으로 움직일 것이라 본다.

정책 실기가 한국 경제 위기 가속화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글로벌 위기의 초기 상황판단의 안이함과 정책의 신뢰상실과 실기에 따라 문제가 가중돼면서 생겨났다. 한국 경제는 '위기 가중 진행형'이라고 본다.

위기의 시발점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전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내 경제로 전이돼 내재된 불안 요인과 결합해서 더 악화됐다. 내년의 경제상황은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2003년 신용불량자 사태나 카드사태처럼 조만간 경제 위기가 현실문제로 대두되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다고 생각한다.

은행의 자산운용이 대출에서 유가증권 투자 쪽으로 바뀌면서 시장의 가격변동성에대한 불안정성이 굉장히 커졌다.

외국인 주식 투자자금 유입에 따른 원화절상을 막기 위해 해외투자 확대하고 장기차입을 억제한 것은 결과적으로 자금시장의 미스매칭(Mis matching, 잘못된 연결)을 초래했다.

1997년에는 붕괴, 지금은 작동 중지…"차라리 붕괴가 대응하기 쉽다"

금융시장의 상황을 봤을 때 1997년에는 금융시스템이 붕괴됐다면 지금은 붕괴되지 않고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표현하겠다.

붕괴되면 그걸 전제로 처리 방안을 마련한다. 그런데 붕괴되기 직전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어 대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가 실종되면서 가격지표마저 없어졌다. 부동산 정책을 통해 건설시장을 정상화하는 것이 간단치 않다.

내년 상반기까지 과감한 위기관리 정책을 신속하게 적절하게 집행하면서 중장기 경제회복 계획을 잘 추진한다면 재도약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다.

"미봉책으로 대충 넘기면, 일본식 장기 침체 올 것"

하지만 소극적 미봉책으로 대충 넘기려 한다면 결국은 일본이 겪었던 장기적인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책을 실기하고 잘못된 정책을 쓰면 바로 경제파국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앞으로 두세달이 중요하다. 진행형 위기라는 표현은 이런 것이다. 위기 자체가 엄중하지는 않지만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생기면서, 나홀로 처리해야 할 문제를 같이 처리할 기회를 갖게 됐다.

나홀로 했으면 대외적인 간섭이 많았을 텐데 같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책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따라서 국제적 위기속에서 국내 문제 해결하기 때문에 합의도출과 협의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본다.

"한국은 미국보다 정책 수단이 많다"

앞으로의 규제가 강화된 국제 금융시장은 국내 금융서비스업이 따라가기 상대적으로 쉬운 측면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동안 국내외 금융서비스업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제조업이 생산성을 향상시킬 여지가 있고 서비스업 생산성은 미국의 반밖에 안되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시킬 여지가 특히 많다고 본다.

에너지 절약산업만 가지고도 경제를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을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도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책금융기관들이 많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할 여지가 선진국보다 유리하다.

미국의 경우, 답답하기 짝이 없다. 쓸래도 쓸수 없어 연방준비제도위원회가 염치불구하고 뛰어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간에 거칠 수 있는 도구들이 있다. 이런 면은 좋은 점이라 생각한다.

"시장 실패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라"

작은 파도는 뛰어 넘어라. 큰 파도는 소위 서퍼들이 말하듯이 거스르지 말고 타라. 작은 희생은 감수하고 웬만한 걸림돌이나 반대는 무릅쓸 수 있는 정책당국의 의지가 필요하다. 이념이나 명분에 편향되지 말고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한창 바빠 죽겠는데 한가한 제도나 정책에 매달리지 말고 보다 과감한 정책을 써야만 한다.

정부의 판단보다는 시장의 반응이나 평가가 더욱 중요하다. 시장의 평가를 중요시해야 한다. 다만 도덕적 해이는 피해야 한다.

시장 실패가 있을때 머뭇거리면 안된다.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시장 실패했을 때 적극 개입하는 것이다.

"사전 예방 비용보다 사후 수습 비용이 더 크다"

사회적 논란이 두려워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시간 끌다 보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 사전적 예방비용보다 사후적 수습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우리만 동떨어진 정책을 쓰는 것은 위험하다.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돈 풀 때 우리는 유동성을 억제한다든지 하는 등 엇박자는 좋지 않다.

정책기관 간 특히 정부와 중앙은행 간, 그리고 정부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나오면 시장과 국민은 더 불안해진다. 관련 당국이 같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시장을 안정시켜주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독이다"…"정부는 분명한 메시지 전해야"

위기관리 정책과 평상시의 장기정책을 명확히 구분해서 시행해야 하고 정책 의지나 의도를 명확히 해야한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상황에서 애매한 정책은 불확실성을 더 확대한다.

내용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체제가 있어야 하고 시장과 대화해야 한다. 상황을 압도할 정도의 정책이 필요하고, 필요하면 극약처방도 필요하다.

가능하면 정책은 패키지로 쏟아붓는 것이 중요하다. 입법사항이 있으면 모든 걸 몰아서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좋다.

집중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고 시장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서민 생활 안정 정책부터 시작해야"

위기일수록 국민적 통합이 필요하다. 서민생활 안정 정책부터 해야한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단호히 제거해야 한다. 유동성 부족에는 유동성 확대 공급으로, 건전성 문제는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해결해야 한다.

시장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만 시장친화적 정책 수단을 써야한다. 정부는 기본적인 정책을 쓰고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실시간 통합대책 기구를 한시적으로 운영하자"

금융위원장과 금감위원장을 한 명이 맡아야 한다. 부처의 업무 영역을 떠나 국내외 금융업무를 통합해야 하고 한은과 정부간의 정책 공조 채널을 구축해 가동해야 한다.

정부 내에 실시간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방안을 구축할 수 있는 통합대책기구를 한시적으로 즉시 설치 운영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때 사용하던 말이지만, 기동성과 집중력이 뛰어난 소수 정예의 몽골기병과 이를 이끈 칭기스칸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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