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고전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오해다. 모호하기만 한 글은 아무리 심오한 뜻을 담고 있어도, 큰 울림을 내기 힘들다. 깊은 통찰이 매끄러운 논리를 타고 흐를 때, 좋은 글이 된다. 이는 동양이건 서양이건 마찬가지로 통하는 사실이다. 동양 철학은 논리와 동떨어져 있다는 오해를 깨는 방법 중 하나가 <맹자>를 읽는 것이다. 격조 높은 문장들이 촘촘한 논리를 따라 짜여져 있는 책이 <맹자>다.
"하필 이익을 말하는가. 오직 '仁'과 '義'가 있을 뿐"
▲ 맹자 초상화. |
맹자가 신랄하게 맞받아친다. "왕이시여, 왜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어짊과 올바름이 있을 뿐입니다.(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얼핏 보면, 실용을 쫓는 임금 앞에서 맹자가 공허한 이상론을 펴는 듯하다. 하지만 죽 읽어 내려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맹자의 설명을 간추리면 이렇다.
"왕이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하고 말하면, 대부(지배층)은 '어떻게 하면 내 집을 이롭게 할까'를 말하게 된다. 그리고, 선비와 평민(士庶人)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를 말하게 된다."
"모두가 이익에만 골몰하면, 모두가 이익을 잃는다"
이어진 설명은 "(이처럼) 위와 아래가 서로 이익을 챙기려 하면, 나라는 위태로워진다"는 것. 이유는? 다시 설명이 따른다.
"만승(萬乘)의 나라(天子國)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가문(公卿)이다. 그리고 천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가문(大夫)이다. 만(萬)에서 천(千)을 취하고, 천(千)에서 백(百)을 취한 것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만약 옳음(義)을 뒤로 미루고 이익(利)을 앞세우면 모두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못한다."
지도층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원칙보다 이익 계산을 앞세울 경우,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런 투쟁 속에서, 많이 가진 사람은 만족을 모른다. 만 개를 가진 이가 천 개를 탐내는 일이 오히려 보편적이다.
"눈앞의 이익 대신 원칙 강조하는 태도, 공허한 이상론과 다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나라가 망한다. 이렇게 되면, 만 개를 가진 사람이건 천 개를 가진 사람이건 전부를 잃는다.
노골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다, 결국 이익을 모두 잃어버리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맹자의 이야기는 공허한 이상론이 아니었다.
"왕이시여, 왜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王何必曰利)"라고 되묻는 맹자의 목소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더 깊은 울림을 낳는다.
"시장 경제는 '무법천지'와 다르다"…실용만 앞세우는 MB노믹스는 위험
▲ G20 세계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기자들 앞에 선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세계 경제의 흐름에도 아랑곳 없이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다. 그는 교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IMF 때 한국 주식, 부동산을 사서 부자가 된 사람을 봤다"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연합뉴스 |
심지어 이 대통령은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법과 원칙'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법과 질서만 제대로 지켜주면 GDP 성장률이 1% 올라간다"고 말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법과 원칙'은 GDP 성장률을 올리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이처럼 지독하리만치 경제적 이익만 내세운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의 경제적 미래는 더 어두워졌다.
오래 전 맹자가 이야기했듯, 모두가 이익에만 골몰하면 결국 모두의 이익이 날아간다. 적어도 지도층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원칙을 이익 계산보다 앞에 놓는 게 순리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안심하고 이익을 쫓을 수 있다. 시장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눈앞의 이익보다 옳은 원칙을 쫓는 태도가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윤리가 곧 경쟁력이다"
<맹자>에 대해 잘 모르는 북유럽 사람들이 의외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만난 피아 루돌프손 고예르(Pia Rudolfsson Goyer) 씨는 "윤리가 곧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 정부의 연기금 투자에 관한 윤리 문제를 심사하는 기구(Norwegian Government Pension Fund Global Council on ethics)에서 선임 자문관(Senior advisor)으로 일한다.
노르웨이는 룩셈부르크에서 이어 1인당 GDP가 세계 2위다. 북해에서 나는 석유 때문이다. 그래서 노르웨이 정부 연금은 국제금융 시장에서 큰 손으로 통한다. 그런데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정부가 연금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윤리위원회를 거치도록 돼 있다.
이 위원회는 엔지니어, 농학자, 경제학자, 회계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엔지니어는 연기금을 투자할 회사의 제조공정을 살펴 유해 물질 배출 가능성을 확인한다. 다른 방식으로 공정을 설계하면 유해 물질 배출을 줄일 수 있는데 눈앞의 이익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혐의가 드러나면 '투자 부적격 기업'이 될 수 있다. 회계사, 변호사 등 이 위원회에 속한 다른 전문가들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한화', 비인도적 무기 생산해서 '투자 부적격 기업' 판정
▲ 피아 루돌프손 고예르(Pia Rudolfsson Goyer) 씨. 그는 노르웨이 정부의 연기금 투자에 관한 윤리 위원회에서 일한다. ⓒ프레시안 |
한국 기업 중에도 '투자 부적격 기업' 판정을 받은 곳이 있다. '한화'가 대표적이다. 집속탄(하나의 폭탄 속에 여러 개의 소형폭탄이 들어 있는 폭탄. 표적이 좁은 무기와 달리, 민간인을 대량 살상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등 비인도적인 무기생산에 가담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윤리적인 기업이 오래 살아남는다"
노르웨이 정부가 유난히 착해서 '윤리'를 강조하는 게 아니다. 연기금 투자 윤리 위원회에서 일하는 고예르 씨는 "윤리적인 기업이 오래 살아남는다"라고 말했다. 장기 투자의 원칙은 장수(長壽)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단명(短命)하는 기업은 단기 투자자들에게는 이익을 줄지언정, 길게 투자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벤처 거품이 한창이던 무렵, 많은 투자자들이 확인했던 사실이다.
고예르 씨는 "윤리 기준을 강화한 투자가 수익률이 더 낮다는 근거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투자에 엄격한 윤리 기준을 적용했더니, 오히려 손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그래도 윤리적 원칙은 지켜야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악착을 떨어야 했던 이들이라면, 씁쓸하게 들릴 대답이다. '너희는 바다에서 석유가 솟아나니까, 쉽게 부자가 돼서 그럴 수 있는 게지. 우리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달라'하는 마음이 스멀거린다. 하긴, "쌀독에서 인심 나고, 의식이 족해야 범절을 안다"는 속담도 있다.
"'지속가능성' 고려 없는 경제 성장은 위험하다"
하지만, 윤리적 원칙을 배부른 소리쯤으로 취급하는 태도는 오히려 우리 전통과 거리가 멀다. 이익을 원하는 군주 앞에서 "왜 하필 이익을 말하는가,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이라고 반문했던 철학자와 가까웠던 게 한국 전통이다. '부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부자 대통령'은 한국 역사에서 매우 이질적인 존재다.
북유럽 정부 관료들을 만나는 내내, 끊임없이 돈과 이익을 이야기하는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서 만난 관료들은 늘 '원칙'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그들도 속으로는 이익 계산에 분주할 게다. 하지만, 적어도 기자와 있는 자리에서만큼은 '원칙 없는 성장'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런 태도를 확인할 기회는 많았다.
금융과 산업, 기술을 다루는 관료는 어느 나라에서나 조금씩 보수적인 색채를 띠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 관료 역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를 늘 곁들였다. 특히, 생태적 영향에 대한 고려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빠뜨릴 수 없는 원칙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우리 세대만 잘 살자는 경제는 병든 경제다"
▲ 폴 엔버그 페더슨(Poul Engberg Pedersen) 씨. 노르웨이 재무부에서 연기금 투자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프레시안 |
그는 "경제 성장이 우리 세대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 세대가 잘 살기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한 자산을 갉아먹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자산으로 대표적인 게 자연 환경이다. 45억 년 역사를 갖고 있는 지구 환경을, 고작 100년도 넘기지 못할 우리 세대가 함부로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이미 원칙으로 자리 잡은 듯했다.
"탄소 배출량 '0'"이라는 목표
노르웨이 환경부에서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마리 새더(Mari.Sather) 씨의 입장은 더 분명했다. 그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떨어뜨리는 게 노르웨이 정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당초 2050년까지가 목표였으나, 에릭 솔하임(Erik Solheim) 노르웨이 환경부 장관이 목표를 앞당겼다. 생명체가 숨 쉬면서 내뱉는 탄소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산업 활동을 통해 배출되는 탄소량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 부처와 갈등이 없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 "그렇지 않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데 드는 비용을 낭비라고 여기는 경제 관료는 없다. 오히려 경제부처는 환경부처의 입장을 존중하는 편이다."
"석유 나는 나라에서, 휘발유 값이 한국보다 비싸다"
'카본 제로'(Carbon Zero,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떨어뜨린다는 목표)를 위한 노르웨이 정부의 계획은 정교하다.
첫 번째 수단은 세금이다. 노르웨이는 석유가 나는 나라임에도, 휘발유 값이 한국보다 비싸다. 자동차 이용을 줄이기 위해 탄소세(석유 등 화석연료의 탄소함량에 따라 매기는 세금)를 높게 책정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지난 1991년부터 탄소세를 적용했다. 핀란드가 1990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한데 이어 스웨덴은 1991년, 덴마크는 1992년 도입했다. 이들 국가들은 탄소세를 계속 인상할 방침이다.
▲ 노르웨이 오슬로 시내 풍경. 석유로 부자가 된 나라에서, 소형차가 많이 눈에 띈다. 석유를 전량 수입하면서도, 너도나도 중대형차를 몰려고 하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프레시안 |
두 번째 수단은 기술이다. 여기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와 관계없는 에너지원에 관한 것이다.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다. 노르웨이는 현재 1차 에너지공급의 40%를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하고 있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다른 한 가지는 탄소를 덜 배출하는 기술이다. 탄소포집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CCS) 기술이 대표적이다. 화석연료를 연소,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를 대기 중에 방출하지 않고 모으는 기술이다. 노르웨이는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두 가지 수단을 통해 노르웨이는 오는 2030년까지 인위적 탄소 배출량을 70%가량 줄일 계획이다. 나머지 30%는? 외국에서 탄소배출권을 사들여 노르웨이가 배출한 탄소를 상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CDM)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CDM은 선진국이 후진국에 탄소배출 감축 관련 기술투자를 진행하고, 탄소배출량 감축권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노르웨이 정부가 실제로 감축하는 탄소 배출량은 100%가 아니라 70%인 셈이다. 물론, 이나마도 대단한 일이다.
"언제는 '소비가 미덕'이라더니…"
그런데 여기까지 설명을 듣고 나니, 삐딱한 마음이 들었다.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 아닌가' 싶은 마음이다.
서구 국가들은 다른 지역 국가보다 먼저 산업화를 거쳤다. 그래서 산업화 선발 주자로서의 이점을 실컷 누렸다. 그런데 후발 산업화 국가들이 추격해오자, 환경 관련 기준을 강화해서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지붕 위에 올라온 선진국이 후진국의 추격을 막기 위해 사다리를 치워버렸다는 이야기다. 환경 관련 기준이 엄격해지면, 이들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가진 유럽 국가들이 다시 기득권을 누리게 된다.
사실, 지구 환경을 망가뜨린 주범은 산업혁명을 일찍 거친 국가들이다. 또, 청빈한 삶을 미덕으로 여기던 아시아 문화권에 "소비가 미덕"이라는 생각을 불어넣은 것 역시 서구 국가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서구 국가들이 환경을 챙기는 모양새를 취한다?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산업화 역사가 긴 나라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생태계를 교란하고 파괴하는 물질에 대한 지표는 '총량'이 중요하다. 자연스레 분해되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화 역사가 긴 나라들이 오염 물질을 더 이상 배출하지 않아도, 이들은 책임을 벗을 수 없다. 다른 나라들이 오염 물질을 지금 배출하고 있어도, 총량 기준으로 따지면 산업화 선발 국가들이 쏟아낸 오염 물질의 양이 더 많기 때문이다.
"생태적 고려가 '배부른 고민'이라고?"
▲ 마리 새더 노르웨이 환경부 대외협력 담당관. ⓒ프레시안 |
탄소 배출을 줄이는 문제는 이렇게 복잡하게 따질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금 당장 얼마나 많은 양을 줄이느냐가 문제일 뿐, 과거 저지른 잘못이 적으니 지금은 환경 기준을 좀 느슨하게 적용해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했다. 모든 나라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정답이라고 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한 이들에게는 환경 문제가 사치스런 걱정으로 비칠 텐데"라고 되물었다.
마리 새더 씨는 올해 7월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노르웨이 환경부와 '환경보호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을 예로 들며, "한국 역시 탄소 배출량 감소에 적극적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쯤 되는 나라에서 온 기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영 어색하다는 투다.
"경제 침체기에도, 친환경 투자는 과감하게"
그러면서 그는 북유럽 국가들 역시 경제가 어려울 때 오히려 환경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랬다. 북유럽 국가들이 일제히 탄소세를 도입했던 1990년대 초는 금융 위기가 이들 국가들을 강타했던 무렵이다. 한국의 IMF 외환 위기와 닮은 상황이었다. 또, 덴마크가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에 대대적으로 투자했을 때 역시 오일 쇼크로 인해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이다. 스웨덴이 국민 투표를 통해 원자력 발전소 폐쇄를 결정한 1980년, 스웨덴 경제는 하락세였다.
경제 침체를 이유로 환경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설득력 없는 핑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우파라면, '깨끗한 국토' 지키려 애쓰는 게 당연한데…"
하지만, 이런 입장은 정권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노르웨이는 좌파 연정이 집권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파 정당의 인기가 올라가는 추세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다음 노르웨이 총리는 우파 정당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정권이 바뀌어도 친환경 정책 기조가 유지될까."
"우파 역시 노르웨이의 깨끗한 자연에 대한 자부심이 강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파 정서의 원천인 국가에 대한 자부심은 환경 보호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설령 경제에 부담이 되더라도, 친환경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좌파와 우파의 구별이 없다는 설명 역시 뒤따랐다.
"'골프장 우파'는 '삼천리금수강산'에 관심 없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최근 들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한국 우파 인사들 중에서 국토에 대한 자부심을 이야기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삼천리금수강산'을 예찬하는 것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끝난다.
사실, 우파라면 민족의 터전인 국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게 정상이다. 그런데 산을 파헤쳐서 골프장을 짓는데 찬성하는 우파는 흔해도, '삼천리금수강산'을 아끼자고 말하는 우파는 찾기 힘들다.
물론, 보수 인사들 중에도 환경에 대해 강조하는 이들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 성장'이라는 구호를 내건 배경에도 이런 이들의 노력이 있다.
"생태적 가치는 경제 성장 위한 수단이 아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녹색 성장'에는 불안한 대목이 많다. 환경 선진국으로 꼽히는 북유럽 국가들이 이른바 '녹색 산업'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성취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성취는 처음부터 경제적 측면만 고려해서 이뤄진 게 아니다. 성장 강박증에 시달리는 듯 비치는 이 대통령의 모습과는 다른 대목이다.
적어도 정치·사회적 공론 장에서는 생태적 가치에 대한 고려가 앞섰다. 경제적 성취는 그 결과로 뒤따른 것일 뿐이다.
'녹색 성장', 눈앞의 이익 대신 '생태적 원칙' 택해 얻은 '역설적 이익'
처음부터 이익을 노리고 친환경 산업에 진출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생태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 먼저 마련됐고, 여기에 산업적 요구가 절충되면서 이뤄진 게 지금 북유럽 국가들이 누리고 있는 '녹색 성장'이다.
맹자가 양나라 혜왕에게 "왜 하필 이익(利)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어짊(仁)과 올바름(義)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도층이 처음부터 이익(利)를 내세웠다면 친환경 산업 성장에 따른 이익도 기대할 수 없었다.
북유럽 국가의 '녹색 성장'은 지도층이 눈앞의 이익(利)을 내치고 '생태적 원칙'을 택했기에 거둘 수 있었던 '역설적 이익'이었다.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
▲ 고(故) 김남주 시인. |
말 없는 동물의 몫까지 배려하는 생태적 태도는 우리에게는 아주 오래된 버릇이다. 시인 김남주는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며 이렇게 노래했다.
"찬 서리 /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 조선의 마음이여." ('옛 마을을 지나며')
(한동안 중단됐던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가 다시 이어집니다. '생태'에 관한 세 번째 이야기는 오는 29일 실립니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 연재를 시작하며 :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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