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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병에 걸린 좀비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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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병에 걸린 좀비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홍성태의 '세상 읽기'] '빨갱이 병'과 '우뻘 좀비'

'좌빨'이라는 말이 있다. 내 글에도 종종 나를 '좌빨'이라고 부르는 댓글들이 달린다. 짐작하겠지만, 이런 댓글을 단 자들은 멍청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나쁜 것으로 보인다. 아니, 개념이 '탑재'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인격이라는 것을 아예 갖추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런 덜떨어진 자들이 노상 입에 물고 사는 '좌빨'이란 무슨 뜻인가? 잘 알다시피 '좌익 빨갱이'라는 말이다. 이 덜떨어진 자들은 스스로를 '보수 우익'이라고 부르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모조리 '좌빨'이라고 부른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자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이 세상에 '좌빨'은 전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로지 '우뻘'이 있을 뿐이다. '우뻘'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익 뻘짓꾼'이라는 뜻이다.

사실 '좌빨'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자들은 한심할 뿐더러 불쌍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빨갱이 병'이라는 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병에 걸리면 세상을 옳게 보지 못하고, 사람을 똑바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파란 하늘도 빨갛게 보이고, 하얀 얼굴도 빨갛게 보인다. 온통 빨간색일 뿐이다. 그래서 이 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시커먼 밤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시뻘건 십자가들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공동묘지나 드라큐라 왕국을 떠올리는 것을 보고 이 자들은 자기들을 구원하기 위한 신의 징표라며 시끄럽게 외쳐댄다. 이 자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좀비의 그것이다. 좀비란 무엇인가? 부두교 마술사가 만든 움직이는 시체이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좌빨'밖에 없고, 쓸 줄 아는 말이라고는 '좌빨'밖에 없으니,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라도 '우뻘'을 보면 좀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뻘 좀비'들을 양산한 '빨갱이 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한국 사회에 횡행하는 이 고약한 사회적 질병이 아무런 역사적 내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는 없다. 짐작하다시피 여기에는 깊은 역사적 내력이 있다. 쉽게 말해서 '빨갱이 병'은 식민과 독재의 저열한 유산이다. 문제는 해방이 제대로 된 해방이 아니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일제에 붙어서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일제 부역 세력은 냉전을 적극 이용해서 다시금 독재 지배 세력이 되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무려 42년에 걸친 독재시대는 이 사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들은 노골적인 폭력으로 독재를 유지했다. 그리고 독재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렇게 해서 '빨갱이 병'이 만들어지고 만연하게 되었다.

'빨갱이 병'에 걸린 '우뻘 좀비'는 문근영처럼 어여쁜 아가씨도 '빨갱이'로 보고, 그의 고귀한 선행도 '빨갱이의 공작'으로 본다. 참으로 놀라운 병이 아닐 수 없다. 이 심각한 정신질환에 대해 아직 한 편의 연구논문도 제출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의학계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40년이 넘는 독재시대를 통해 일제부역세력에서 비롯된 독재 지배 세력이 얼마나 널리 '빨갱이 병'을 퍼트렸으며 얼마나 많은 '우뻘 좀비'들을 양산했겠는가? 이 사회가 세계적인 '돈 많은 못 사는 나라'이자 세계적인 불안사회가 된 것은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빨갱이 병'에 대한 연구와 '우뻘 좀비'에 대한 치료가 적극 행해져야 이 나라의 '진정한 선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의 의학계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보면 '빨갱이'라고 외치며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거품을 무는 '우뻘 좀비'에 대한 연구를 이제라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인류애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빨갱이 병'과 '우뻘 좀비'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관찰해서 얻은 몇가지 사항을 참고로 적는다. 아무쪼록 한국의 의학계에, 나아가 세계의 의학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빨갱이 병'에 걸린 자들을 보면 사람들은 보통 눈에 빨간 게 씌었나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다. 그러니까 문제는 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뇌에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여기에 '빨갱이 병'의 난점이 있는 것 같다. 뇌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병이 바로 '빨갱이 병'인 것이다. 그러나 물론 여기에도 치료법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병이 불치병이 아니라 난치병이라고 생각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치료에 성공한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이런 사례들에 대한 폭넓은 비교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렇듯 무서운 병을 널리 퍼트렸다니, 다시금 일제 부역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독재 지배 세력의 힘에 놀라게 된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우뻘 좀비'도 나름대로 진화한다. 독재 시대에는 완장을 차고 행세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게 되었다. 이 자들이 민주화를 그토록 혐오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민주화 때문에 자신들의 비정상성이 드러나서 더 이상 완장을 차고 행세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화는 '포위된 민주화'로서 '취약한 민주화'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래도 백주 대낮에 '우뻘 좀비'가 자신의 실체를 공공연히 드러내면 만인의 지탄을 받기 십상인 정도는 되었다. 그러자 '우뻘 좀비'들은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사실 좀비에게는 어둠 속이 집이다. 그들은 침침한 지하실에 컴퓨터를 갖다 놓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자판을 두드린다. 자기들의 글을 보도하지 않는 신문을 집어던지며 마구 욕을 해대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쓸 수 있는 글이라고는 '좌빨'이라는 것을 빼고는 없다. 다른 글을 써 본들 그저 더러운 욕설일 뿐이다. '우뻘 좀비'는 '욕설 좀비'이기도 하다.

좀비들이 그렇듯이 '우뻘 좀비'는 멀쩡한 사람들을 '우뻘 좀비'로 만들기 위해 발광하며, 또한 자기들 중에서 요행히 구원되었거나 조금 다른 언행을 보이는 자에 대해서도 '좌빨'이라는 욕설을 퍼부으며 공격한다. 최근에도 이런 사실이 아주 잘 확인되었다. 이런 행태를 통해 '우뻘 좀비'는 자신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존재인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또한 자신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우뻘 좀비'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들은 맹자가 가르친 인간의 본성 따위는 전혀 모른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우뻘 좀비'인 것이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빨갱이 병'이 무서운 것이다. '빨갱이 병'에 걸리면 이성이 마비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한테나 아무 욕설이나 마구 퍼붓게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자들은 자신이 대단한 존재여서 아무 욕설이나 퍼붓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빨갱이 병'은 이런 점에서 아주 황당한 병이다.

'우뻘 좀비'는 이명박 세력을 비롯해서 한국 보수세력의 '전위대'와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 개중에는 아예 이명박 세력의 일원으로서 정치활동을 하는 자들도 있다. 최근에 다음의 '아고라'에 툭하면 '좌빨'이라고 도배글을 쓰는 자들의 아이피를 추적한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보면 '우뻘 좀비'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정말 한시바삐 각성해야 한다. 그러나 하는 짓을 보면 이런 바람은 그저 연목구어일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부터 '빨갱이 병'에 걸린 자와 같은 언행을 얼마나 자주 하고 있는가? 정말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빨갱이 병'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근영도 '좌빨'이고 미네르바도 '좌빨'이라며 눈을 뒤집는 '우뻘 좀비'들이 언론과 학교와 정치를 장악하고 설쳐서는 나라가 망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바탕에는 독재 지배 세력이 만연시킨 '빨갱이 병'으로 말미암은 사회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빨갱이 병'을 극복하고 '우뻘 좀비'가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무엇보다 실사구시의 태도를 널리 진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빈 자루같은 주장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자루 안에 든 정책의 진실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래서 누가 진정 옳은가를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주권자인 시민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지역주의와 마찬가지로 '우뻘 좀비'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민주화는 언제나 '포위된 민주화', '취약한 민주화'에 머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라져야 할 것은 '우뻘 좀비'만이 아니다. 아마도 그보다 먼저 '국개'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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