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인도 |
하지만 <미인도>는 이상하게도 성이 차지 않는다. 뭔가 두터운 병풍 같은 것에 가리워져 있거나(그렇게 노출이 많은데도) 아니면 그 안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갇혀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뭔가의 억압과 억눌림에서 끝내 자유롭지 못한 느낌을 준다.
그건 아마도 신윤복에 대한 묘사때문일 것이다. 김홍도와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이었건만 늘 비주류, 반체제의 인물로 대우받았던 사람. 뛰어난 화풍을 지녔지만 시대는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신윤복은 너무 앞서 산 사람이었고 당연히 세상의 변화와 개혁을 마음 속에 담고 살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요즘 와서 특히 신윤복과 김홍도에 열광하는 건 그 같은 정치적 복심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만약 지금 집권당의 정치인이라면 사람들이 신윤복에 매료되는 것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 간송미술관에서 김홍도 신윤복 그림을 뺏어 올 것이며, 이정명의 소설 <바람의 화원>은 판금조치를 내리고, 동명의 TV드라마는 편성에서 빼버릴 것이다. <미인도>? 미인도 같은 소리하고 있네,라면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내릴 것이다.(하지만 얼마 전 헌법재판소가 이 등급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권은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들도 좋다고 드라마보고 영화보고 신나하고 있다. 무식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정치가 영화를 알아보고, TV드라마를 제대로 알아보고, 그 내용이 뭘 추구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아채는 식견이 생기는 것은 과연 언제나 되서일까? 한 2050년쯤?
어쨌든 <미인도>도 신윤복이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정치성을 은근슬쩍 드러내게 하는데는 조금 부족한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윤수 감독은 조금 더 생각을 전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건 흥행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보다는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조선시대 핍쇼' 같은 장면이 흥행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눈먼자들의 도시 |
한국영화가 이러고 있을 때 다른 나라 감독들은 보다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며 살아간다. 한국 영화감독 가운데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같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하는 사람은 왜 없을까? 저작권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어서? 브라질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그게 가능한데 우리라고 안될 게 뭐가 있겠는가. 토마스 알프레드손은 소설 <렛 더 라이트 온 인>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던 40번째 감독이었다. 그만큼 원작자를 영화감독들이 들들들들 볶았다는 얘긴데, 적어도 스웨덴 영화계에는 세상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는 감독들이 40명은 있다는 얘기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조금 짜증이 나려고 한다. 요즘 한국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러는 것처럼.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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